[세상읽기] 계란 수입과 천원짜리 농민

기자 2023. 1. 20.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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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 속에서 맞는 명절이 달갑지 않아도 대목장 구경은 재밌다. 무엇을 사고파는지 보자니 누구나 계란 한 판은 들여간다. 평소에도 쟁여놓고 먹지만 명절엔 전도 부치고, 떡국 고명으로 얹으려면 계란은 필수. 평소엔 떡국 국물에 계란을 풀어도 명절 티를 내자면 특별히 지단을 부쳐 떡국에 올리면 비로소 명절 같다. 밥상이 너무 헐하다 싶어 계란 한 알 부치면 그럭저럭 밥상도 들어차는 고마운 계란. 2021년 농촌진흥청이 낸 <축산물소비트렌드>에서 보면 소고기는 소득 300만원 이하의 가구와 600만원 이상 고소득 가구의 취식빈도 차이가 크다. 하지만 계란만큼은 형편에 따라 너무 크게 벌어지지 않고 골고루 먹을 수 있는 평등한 단백질이자 민중의 먹거리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하루에 계란 소비량 4500만개. 안 먹는 사람들 빼고 전 국민이 하루에 한 알 정도 먹는다. 특히 외식업과 식품가공산업은 계란이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다. 조류인플루엔자(AI) 같은 전염병이 돌아 닭들이 죽어 나가면 계란값이 오르고 비상이 걸리는 이유다. 안 먹으면 그만이라 할 수 없는 식품을 ‘민감성 품목’ 혹은 ‘필수 식량’이라 하고 쌀과 계란이 그렇다. 사회가 혼란에 빠지기 때문에 정부도 계란을 민감품목에 넣고 값을 예의주시한다. 지금 미국과 유럽이 계란값이 너무 올라 혼란한 상황이지만 다행히 우리나라 계란 수급 상황은 안정적이다. 농촌경제연구원의 2022년 12월 계란수급 상황을 보면 현재 7552만마리의 산란닭이 길러지고, 하루에 4530만개의 알을 낳는다. 이는 전년 및 평년 대비 늘어난 수치이고, 2월에는 더 늘어나 매일 4543만개의 계란 생산을 예측하고 있다. 2월이면 매일 13만개의 계란이 남을 듯하다.

AI가 변수라 하지만 제도개선으로 살처분 비율도 50% 정도 줄어들었고, 농가도 방역 노하우가 쌓여 잘 막아낼 수 있을 것이라 방역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외려 계란값 폭락에 대비하자며 15% 정도 자율 감산을 해야 한다는 결의를 하는 중이다. 방학인 데다 명절 지나 계란 수요는 급격히 떨어지는데 생산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12월 들어 비싼 가격대인 특란의 경우 한 판당 116원 정도 내려가 생산자들은 애를 먹고 있다. 내 봉급 빼고 다 올랐으니 계란값도 올랐다 여기지만 계란값은 1년 동안 변동이 거의 없다. 외려 사료값이 25% 이상 오른 데다, 유가 상승으로 물류비가 올라 생산자들의 수익률이 매우 떨어져 있다. 농민들 속이야 타거나 말거나, 먹는 나는 일단 좋지만 일단 계란은 현재 넘쳐난다.

양계농민들 이렇게 속을 끓이는 와중에 정부가 느닷없이 시범적으로 계란 수입을 강행했다. 혹시 AI가 확산해 계란 수급이 어려워질지도 모르니 예행연습 차원이라나. 급기야 스페인에서 비행기 타고 계란 121만개가 들어왔고, 홈플러스와 몇몇 업체에서 유통을 15일 시작했다. 국산 계란과 1000원에서 1500원 차이다. 미국의 계란 수급상황이 악화되어 미국에서 스페인으로 수입 국가를 바꿔서까지 들여왔다. 대체로 상품 가격이 낮은 나라에서 물건 들여와 이윤을 내는 것이 무역의 기본 원리인데, 현재 계란은 그렇지도 않은 이상한 무역상품이다. 한 알에 250원 내외인 국산 계란보다 스페인 계란이 더 싸서 수입을 하는 것이 아니다. 계란생산자 단체는 스페인에서 계란이 비행기 타고 오는 비용(탄소발생은 더 많이!), 세척 및 포장 유통 비용, 판매업체의 수익 보장까지 계산하면 스페인 계란은 한 알에 500원에 들여오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세금으로 수입 계란값을 떠받쳐 국산 계란보다 1000원 더 싸게 값을 억지로 만든 셈이다. 하루에 계란 4500만개를 먹는 나라에서 121만개 들여와 뭘 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물가 상승에 명절 민심 싸늘해질까 싶어 뭐라도 하고 있다는 퍼포먼스일 뿐. 농민들이야 원래부터 ‘천 원짜리’였으니 울거나 말거나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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