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의 문헌 속 ‘밥상’] 동태찌개의 맛
동해, 그 남북으로 펼쳐진 해안선과 산악이 그리워 속이 타고 몸이 다는 계절이다. 그리워하다 겨울날의 미역·섭·전복·뚝지(심퉁이)·도루묵·가자미·대구·명태 따위를 떠올린다. 더구나 명태에 잇닿은 감각은 살필수록 재미나다. “고성 사람들은 황태 안 먹어요. 싱거워. 깊은 맛은 북어. 국도 북어로 끓여야 간이 맞아.” 고성과 그 이북 바다 사람들은 얼부풀 것 없이 그대로 마른 북어에서 ‘깊은 맛’을 감각한다. 대관령과 인제 쪽에서는 이런 말을 듣는다. “북슬북슬한 살이 폭신폭신, 씹으면 씹을수록 달면서 고소한 맛이 올라와.” 그곳 사람들은 얼부풀며 마른 황태에서 특유의 질감에 잇닿은 직관적인 ‘맛난 맛’(旨美)을 감각한다. 하나 더 있다. 북어파와 황태파의 대립을 전해듣던 속초 사람 함성호 시인은 떨치고 일어나 외쳤다. “그냥 먹어야지 왜 말려!” 무지한 서울내기를 가르치던 시인은 거의 절규했다. 겨울 생태에 익숙한 사람은 또 다른 기억과 감각을 쥐고 있다는 말이다. 그래, 북어는 북어 맛, 황태는 황태 맛이지, 동태에 앞서 생태가 있지 하며 끄덕인다.
알탕도 달랐다. 싱싱한 생태의 알집을 간추려 핏줄 등 지저분한 것을 걷어내고, 채반에 널어 표면이 꾸덕꾸덕하도록 물기를 날린다. 육수는 북어대가리로 낸다. 여기에 겨울 무를 넉넉히 넣고 팔팔 끓인다. 적당히 물기가 가신 알집을 얌전히 띄우고는 은근슬쩍 익힌다. 고춧가루는? 살짝만, 빨강이 예쁘게 감도는 쯤으로! 이렇게 끓인 국물에는 사람의 속을 후련하게 하는 시원함이 감돌고, 알집은 잇새에서 톡톡 터지며 아작인다. 맛 이미 빠지고 푸석푸석한 냉동 알집에 댈 게 아니다. 간은 소금과 장에서 그쳐야 한다. 필요와 정도를 지나친 복잡한 양념과 간은 그저 잡스러운 풍미의 원흉일 뿐이다. 이윽고 함경도 흥남내기 소설가 안수길의 단편 <동태찌개의 맛>을 연다. 소설가는 정보기관과 군이 납북됐다 돌아온 명태잡이 어부를 간첩으로 조작하던 시대의 그림자라도 기술하고 싶었을 테다. 그러면서 떠나온 고향, 그 바다 그 명태의 기억과 맛을 끝내 이렇게 써 남겼다.
“국이며 찌개며, 겨울 제철이 되면 명태는 얼기 전의 싱싱한 생태로서 그 지방의 식탁을 즐벗하게 하는 반찬의 재료로 사랑을 받게 마련이었다. 같은 명태 요리도 그 조리 방법에 따라 맛이 가지각색이다. 국만 하더라도 내장을 모조리 들어낸 것을 끓이게 되면 담담한 맛이 드러난다. 내장을 함께 쓰는 경우도 알과 고지(이리)와 창자를 넣어 끓이는 것과 애(간)를 난도질해서 섞어 국을 만드는 조리 방법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것이었다. 찌개도 마찬가지다. 알찌개, 고지찌개, 대가리만을 재료로 하는 진한 된장찌개, 젓물로 끓이는 것… 명란젓, 창난젓… 명란젓도 딴딴한 알로 담그는 것과 물알(딴딴하지 않고 물기가 있는 것)로 만드는 것이 맛이 다르다. 맛은 오히려 물알젓에 더 있는 것이었다. 그 밖에 구운 명태, 북어의 경우 그것을 쪄 먹는 맛, 실처럼 갈기갈기 찢어 만든 자반 맛.”
1911년생 소설가가 1970년에 써 남긴 허구 속의 ‘기록’을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문득 아릿하다. 함께 뭉클하다.
고영 음식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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