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세상] 친환경으로 여는 새해
설이 코앞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이런저런 선물이 택배 트럭을 타고 전국을 누빈다. 내 집 문 앞에도 배달 상자가 잔뜩 쌓였다. 풍요의 시대에 이런 선물, 솔직히 반갑지 않다. 명절에 받은 택배를 보면 한숨부터 나온다. 주방 수납장에는 이태 전에 받은 햄이 아직도 있다. 욕실에는 지난 설에 받은 샴푸와 비누가 그대로다. 당장 필요하지 않은 식용유를 선반에 쌓는 것도 일이다. 냉장고를 차지하는 멸치와 과일은 어째야 하는 건지 난감하다. 늘 설이 지나면 중고거래 장터에는 스팸과 참치, 식용유 같은 명절 선물이 반값에 올라온다. 보낸 마음을 헤아리면 두고두고 고맙지만, 격식 맞추려 쓸모없는 물건을 이리 한꺼번에 나누는 것은 사회적 낭비가 분명하다.
쓰레기가 제일 문제다. 요즘 가정 쓰레기의 상당 부분은 택배 포장물에서 나온다. 택배 상자를 집 안으로 가져가는 건 쓰레기를 들이는 셈이다. 나는 팔을 걷어붙이고 문 앞에 쌓인 상자를 하나씩 열었다. 상자 안에 부직포 가방, 그 안에 스티로폼 상자, 그 안에 진공 포장한 고깃덩이가 띠지에 묶여 있다. 손바닥만 한 내용물이 고작 여섯 개인데, 포장 상자는 성인 몸통만 하다. 보랭과 완충에 격식까지 갖추려니 포장이 과하다. 다행히 아이스팩 대신 물을 얼린 냉동보조재가 들었다. 젤로 만든 아이스팩은 아파트에서는 수거하지 않아 주민센터까지 가서 버려야 한다. 다음 택배 상자를 여니 종이 가방이 나오고, 그 안에 유색 상자가 있다. 다시 그 안에는 작은 상자 여럿에 크기대로 나눠 담은 멸치가 있다. 이번엔 다른 상자를 열고 종이 완충재를 걷어내니 면사포를 두른 유색 상자가 나오고, 그 안에는 폭신폭신 스펀지에 싸인 목욕용품이 있다.
택배 상자를 포함하면 대부분 포장을 네 번은 뜯어야 내용물을 만날 수 있었다. 환경부령 ‘제품포장규칙’은 포장횟수를 2회 이내로 제한한다. 상점에서 파는 물건이야 이렇지, 선물을 택배로 보내면 어쩔 수 없이 포장이 두어 번은 늘어난다. 상자와 포장재의 부착물을 떼고 종류대로 분류하니 배출할 재활용품이 허리까지 쌓였다. 버리는 건 한 짐인데 내용물은 고작 한쪽 팔에 전부 담긴다. 과대포장을 막는 법이 있고 한쪽에서는 친환경이 유행이라는데, 명절 쓰레기는 여전하다. 그렇다고 정말 필요한 물건이나 반가운 선물은 없다. 한동안 냉장고와 수납장을 차지하다 순서가 되어서야 소비할 테다. 아마 중고거래 장터에 헐값에 내놓겠지.
설은 새해 첫날이다. 한 해 운수를 점치고 태평과 풍년을 기원하는 귀한 날이다. 우리는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차례를 지내고 세배와 성묘를 한다. 올해는 친환경 실천으로 한 해를 시작해보자. 명절 선물은 검소하게 나누자. 음식은 먹을 만큼만 차리자. 성묘 가서 조상님께 일회용품 접시에 담은 음식 올리지 말자. 시장은 장바구니를 들고 가자. 연휴 쓰레기는 꼼꼼하게 분리배출하자. 올해도 환경규제가 더 촘촘해진다. 연말이면 지금 시행되고 있는 자원순환법 계도기간이 끝나 장소에 따라 플라스틱 제품을 쓸 수 없게 된다. 시범 도입 중인 일회용 컵 보증금제도 정책 방향이 잡힐 테다. 2026년 생활폐기물 직매립 금지도 한 걸음 가까워진다. 우리 명절도 이런 변화를 받아들여 더 검소해져야 하지 않을까.
김연식 전 그린피스 항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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