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세계 최고 혁신 허브' 구호만으론 어림없다
노동 개혁·규제 혁파 성공해야 가능
윤석열 대통령이 그제 한국을 ‘세계 최고 혁신 허브’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 행사장에서 국내외 기업·금융인들과 만나 한국 투자를 당부하는 자리에서다. 윤 대통령은 “시장 중심으로 개혁을 해나가겠다” “한국 제도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으면 얘기해달라”고 요청했다. 해외 투자 유치로 역성장 경고까지 나오는 현실을 타파해 보겠다는 절박한 ‘세일즈 외교’ 행보가 주목된다.
‘혁신 허브’ 구상이 꿈 같은 주장만은 아니다. 윤 대통령 말대로, 한국은 그런 충분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반도체 휴대폰 자동차 석유화학 철강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각각 세계 5위권의 제조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인력과 자유무역협정(FTA) 네트워크도 세계 최강 수준을 자랑한다. 지난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조사에서는 디지털 경쟁력(64개국 중 8위)과 인공지능(AI) 경쟁력(7위) 등 첨단 분야에서 탄탄한 입지를 증명했다. 여기에 BTS와 블랙핑크, 기생충, 오징어 게임 등으로 이어지는 ‘K소프트웨어’ 경쟁력까지 연계될 경우 그 혁신 폭발력이 어느 정도에 이를지 가늠하기 힘들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그러나 그 가능성이 현실로 이어지기엔 나라 안팎 상황에 어려움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가장 우려되는 게 전통적 질서에서의 탈세계화,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다. 향후 50년, 100년을 바라보는 미·중 간 패권 경쟁 속에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 분야 생산시설이 일제히 ‘미국 라인’으로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가고 있다. 첨단 제조 기반의 약화는 혁신과 기술 개발, 제조와 유통, 인력 양성이 한 묶음으로 움직이는 혁신 생태계의 급작스러운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런 변화가 안보 불안으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물론 이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새로운 글로벌 질서 재편 과정에서 우리 힘으로 대응하기 힘든 측면도 있다. 그렇다고 손 놓고 방관할 수도 없다. 첨단 산업의 탈(脫)한반도화를 최소화하고, 해외 기업 유치로 그 빈 공간을 메꿀 대책이 시급한 이유다.
한국이 대응해야 할 과제 중 가장 시급한 게 노동개혁이라는 데는 이의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법 위의 권력’ 민주노총이 지난 좌파 정권에서 민생과 국가 경제를 볼모로 잡고 어떤 패악을 끼쳤는지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IMD 국가경쟁력 조사에서도 경직된 고용시장과 전투적 노조 투쟁행위 등으로 노동시장 분야에서는 42위에 머물렀다. 한국의 전체 순위(27위)를 까먹는, 과락 수준의 평가 결과다. 새 정부가 회계 투명성 확보, 종북행위 척결 등으로 방향을 잡고 노조와의 전쟁을 밀어붙이는 것은 당연하다. 예상대로 반발이 만만찮지만 정부가 물러서서는 안 된다. ‘꺾이지 않는 의지’로 개혁 성과를 낸다면 해외 투자자 평가도 달라질 것이다.
노동개혁만큼 중요한 게 한국 고유의 ‘갈라파고스 규제’를 걷어내는 일이다. 시행 1년 만에 ‘기업 최대 재앙법’으로 판명 난 중대재해처벌법을 필두로 주 52시간제, 대형마트 영업규제, 출자제한제도 등 그런 사례는 일일이 헤아리기도 힘들다. 완화 정도가 아니라,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규제 정책을 바꾸지 않고는 바닥 수준(25개국 중 21위, 컨설팅업체 AT커니 조사)인 한국의 투자매력도를 끌어올리기 힘들 것이다. ‘혁신의 요체’인 우수 인력 확보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현안이다. 정부 조사 결과 2010년 이후 10년간 매년 이공계 인력 4000명이 들어올 때 4만 명이 빠져나간 것은 무엇을 말하나. 반도체 배터리 인공지능 등 미래 산업 분야에서 매년 수만 명이 부족한 인력난도 규제 현실과 무관치 않다. 경제를 비롯해 사회 각 분야에 걸쳐 환골탈태 수준의 개혁이 없다면 ‘혁신 허브’는 고사하고 당장 나라의 존망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정부도, 국민도 이 사실을 외면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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