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 하나에 세상을 담은 허진권 작가 “삶이 곧 예술”
‘점’은 아름답고 따뜻한 공동체의 출발로 인식
갈등과 분열의 치유 ‘PEACE’쓰기 전국 순회전도
“삶이 곧 예술이고, 자연 역시 예술 그 자체입니다”
미술가 허진권 작가(67·목원대 명예교수)는 “예술가의 모든 행위, 즉 먹고 말하고 이야기하고 놀이하고 그들이 하는 모든 것이 예술활동”이라며 “그들이 머문 시선과 발걸음, 그들이 보고 만나고 생각한 모든 것이 예술 창작품의 근원이 된다”고 말한다.
허 작가가 추구하는 이 같은 가치는 50년에 가까운 그의 작품활동에서도 고스란이 묻어난다. 1981년 허진권 작가의 첫 개인전 역시 캔버스를 벗어나 전국을 투어하며 온몸으로 현장전을 보여줬다. 그의 작업은 서대전역을 출발해 목포를 거쳐 배로 제주에 닿았다가 부산을 돌아 다시 대전으로 돌아오는 여정이었다. 현장 작업은 쌀자루에 구멍을 뚫어서 한쪽은 ‘삶이 곧 예술이다’, 또 다른 한쪽은 ‘자연이 곧 예술이다’라고 한 것을 푸대자루를 뒤집어 쓰고 ‘행함의 자연’를 표현했다. 1982년 공주 금강 백사장에서 펼쳐진 현장전 역시 허진권 부부의 결혼 이벤트로 결혼이라는 의미를 하나의 스토리로 연출했다. 이는 그 당시 보수성을 뛰어넘은 전위적 행위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현장작업 이후 작품활동은 처음에 다섯명이 ‘오오전(五悟展)’ , 그 당시로는 파격적인 전시회를 가졌다. 이어 ‘야투’라고 하는 전시를 창립했다. ‘야투’, 즉 ‘오오전’이라고 했던 다섯명이 중심이 되서 맨 처음 공주 금강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허 작가는 “오직 내 몸 하나 가지고 거기에서 ‘내 어떤 표현을 해보자’하는 취지로 시작했다. 결국 우리들이 추구한 것은 ‘우리 삶 자체를 좀 자연스럽게 하자’라며 주어진 재료나 방법으로부터도 해방되어 그냥 자연에서 숨쉬고 움직이는 상태로 작품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순수미술이 진정한 예술의 정수이며 그 나라의 문화수준을 보여준다는 허진권 작가의 생각은 ‘자연이 곧 예술’이라는 주장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는 “우리나라는 사실상 순수 미술시장이 없다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아요. 순수미술작가는 시작해 얼마되지 않아 절반이 그만두고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즈음에 거의 모두 때려치운다. 이후 40~50대가 되어 다시 순수미술을 할려고 하면 이미 고정관념에 사로 잡혀 실험정신을 갖기 어렵다”라고 지적한다. 허 작가는 “XY 함수를 그렸을 때 X축을 변하지 않는 민족성, Y축을 시대성이라고 본다면 작가의 개성은 어디엔가 찍힌 곳이다”라며 “작가의 개성이 시대성이 강하든, 민족성이 강하든 비난의 대상이 아니며 그것을 가장 자기답게 표현하는 게 대가”라고 말했다.
허진권 작가는 지금도 세상에 질문을 던진다. 그는 “고정관념에 문제를 제기하고 그것이 과연 옳은가에 대해 끝없이 질문을 던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는 학원을 다닌 적이 없고 중·고등학교 때 제대로 미술을 배운 게 없어서 혼자 그림을 그렸고 유화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입학한 대학미술대 역시 불모지였던 기독교 미술과여서 비교적 하고 싶은대로 할 수있었다. 그래서 허 작가의 실험정신은 자생적으로 길러졌다. 허 작가는 “예술이 갖고 있는 기능은 세상이 그대로 가고 있는 아주 권태로움 속에 하나의 돌맹이를 던져서 파문을 일으켜주는 것”이라며 “그 파문이 결국 좋은 쪽으로 바뀌어지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그는 정년 퇴임후에도 교수시절부터 관심을 가졌던 ‘평화(PEACE)’를 주제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대화만 되면 그 다음부터는 제 아무리 원수든 뭐든 그때부터는 뭐가 될 것 같고, 나와 너의 관계 속에 파생되는 사랑의 에너지로 인간은 다욱 인간다워질 수 있다는 게 허 작가의 생각이다. 그는 “서로 다름을 인정할 때 갈등과 다른 분열이 가라앉는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베풀면 그 관심이 파도처럼 흘러간다. 처음에는 미미한 운동에너지로 시작하지만 눈사태처럼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는 힘을 지니게 된다”고 설명한다.
이 때문에 작품에 등장하는 ‘점’은 아름다운 공동체의 출발로 인식한다. 그는 “그 점안에 따뜻한 마음이 들어가 있고 이웃에 대한 배려가 스며들어 있다. 점 하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있다”고 환하게 웃는다. 그에게 있어 점은 단순한 형태가 아니라 숭고한 정신이 깃든 사랑의 표시로 읽히는 대목이다.
허 작가는 ‘평화와 통일의 프롤레고메나-PEACE’쓰기로 전국을 순회하며 현장 작업을 하고 있다. 2020년에는 제주에서, 2021년에는 신안군 증도에서, 2022년에는 그의 고향인 서해 원산도에서 PEACE 쓰기 작업을 진행했다. 그는 “평화, 자유 쪽으로 주제가 정해지고 그러다 보니까 시각적, 장식적으로 예쁜 그림, 아름다운 그림은 자연스럽게 떠나지더라고요. 요즘에는 그 현장에서 직접 작업하고 설치하는 그런 쪽으로 집중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작가는 1980년후반 평면으로 돌아가 전통 회화를 계승 발전시키는 데 힘을 쏟기도 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이 작품을 통해 활발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랑을 낚는 어부’(1998년), ‘오병이어 역사의 현장’(1999년), ‘부활을 위한 서곡’(2004년), ‘부활을 맨처음 본여인의 놀람’(2007년), ‘영원한 생명’(2006년), ‘오병이어’(2006년), ‘천지창조’(2008년), ‘오병이어를 드리는 소년’(2008년) 등이 그의 작품이다.
허진권 작가는 1955년 충남 보령 원산도에서 태어나 광명초, 홍성중, 공주사대부고를 다녔고, 고교시절 미술실에서 혼자 그림을 그리다가 목원대 미술교육과에 입학·졸업했고 경희대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그는 1988년 목원대 미술디자인대학 기독교미술과 전임 교수에 이어 제20대 목원대 교수협의회 회장, 목원대 미술대학장 등을 역임했다. 허 작가는 2020년 정년 퇴임 후 “현대미술은 60~70대가 청년 작가”라며 온전히 작품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허 작가는 노르웨이를 비롯한 북유럽, 미국 뉴욕 등에서 자신의 작품을 전시할 계획을 갖고 있다. 이병문 기자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러에 꼭 이기세요” 장갑차 200대 우크라에 화끈하게 쏜 이 나라 - 매일경제
- 품절된 ‘김건희 여사 가방’…알고보니 대구 사회적 기업이 만들어 - 매일경제
- ‘한국의 밤’이 ‘재팬나이트’ 압도…다보스서 윤석열 효과 [르포] - 매일경제
- [팩트체크] 이재명 “성남FC 무혐의 처분된 사건”...사실일까? - 매일경제
- 中서 철강주문 밀려드니…뜨거운 포스코·현대제철 - 매일경제
- 전세 낀 집 자녀에게 주기 어렵겠네…세금 얼마나 늘길래 - 매일경제
- 설날 부모님 용돈 ‘30만원’이 대세…“세뱃돈 아빠한테 맡기지 마세요” - 매일경제
- “여보, 10월 입주 못하면 어떡해”...공사비 갈등에 재건축 삐걱 - 매일경제
- “진작 좀 낮추지”…골프족 동남아로 나가자 도민할인 꺼낸 제주 - 매일경제
- 벤투, 폴란드축구대표팀 감독 최종 2인 후보 포함 - MK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