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할 계속할 에너지 탱크가 없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 전격 사임

김서영 기자 2023. 1. 19.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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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 대표로 5년 반 2연임
10월 총선에도 불출마 선언
“딸아이의 엄마 되고 싶어”
사임 발표 후 약혼자와 포옹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오른쪽)가 19일 네이피어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전격 사임을 발표한 뒤 약혼자와 포옹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특권을 가진 역할에는 책임이 뒤따릅니다. 자신이 그 직을 수행하기에 적합한 사람인지 아닌지 알아야 하는 책임입니다. 저는 떠날 때가 됐습니다.”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42)가 19일 전격 사의를 표명하고 오는 10월 총선에도 불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아던 총리는 이날 집권 노동당 연례회의를 마친 후 기자회견에서 “다음 4년을 위한 에너지가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고 dpa·블룸버그통신 등이 전했다.

아던 총리는 총리직을 이어가기 위한 에너지와 열망을 연료와 탱크에 비유해 “총리직은 탱크가 가득 차 있지 않는 한 수행할 수 없고, 수행해서도 안 된다. 또한 여유분도 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여름 휴가기간 동안 (나 자신을) 돌아본 결과 내게 더 이상 총리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한 탱크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올해 3연임에 도전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되던 차에 나온 아던 총리의 사의 표명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노동당은 아던 총리의 사임에 따라 오는 22일 차기 당대표 선출에 나선다. 아던 총리는 보궐선거를 피하기 위해 올 4월까지는 의회 의원으로 남는다. 그는 “총리로 지낸 것은 내 인생의 가장 큰 영광이었다. 내게 지난 5년 반 동안 이 나라를 이끌 특권을 준 뉴질랜드 국민들에게 감사하다”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아던 총리는 2017년 뉴질랜드 역대 최연소인 37세 나이로 총리직에 오르며 세계에서 가장 젊은 정부 수반으로 꼽혔다. 총리에 오른 뒤 2018년 6월 동거하던 연인 클라크 게이포드와 함께 딸 ‘니브 테이 아로하’를 낳고 6주간 출산휴가를 다녀왔으며, 모유 수유를 이유로 3개월 된 딸을 데리고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 참석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2018년 타임 선정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오른 그는 젊은층과 여성, 진보 진영에서 큰 인기를 얻으며 ‘저신다 마니아’ 현상을 낳기도 했다. 특히 위기상황에서 ‘공감’의 정치가 가진 힘을 보여줬다. 2019년 남섬 크라이스트처치에서 무슬림을 상대로 총기 테러가 일어났을 때 머리에 스카프를 두르고 유족을 만난 것이 대표적이다. 코로나19 초기에 과단력으로 발빠르게 봉쇄 조치를 취해 지역사회 전파를 막은 것도 평가를 받았다. 이를 발판으로 2020년 총선에서 노동당은 비례대표제가 도입된 1996년 이래 처음으로 의회에서 압도적 다수 지위를 확보했다.

그러나 최근 노동당 지지율은 생활비 상승과 경제적 전망 악화로 인해 부침을 겪고 있다. 지난달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노동당 지지율(33%)은 국민당(38%)에 뒤졌고, 국민당과 연합한 ACP당의 지지율(11%)까지 더하면 여당 자리를 내려놓을 위기에 처했다. 그는 지지율과 사임은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우리(정치인)도 인간이니 영향은 있겠지만, 내 결정의 근간은 아니다”라면서 “이기지 못할 것 같아서 떠나는 게 아니다. 우리(노동당)는 이길 것이고 이길 수 있다. 그러한 도전을 위해 신선한 책임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던 총리는 앞으로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 외에 다른 계획은 없다고 했다. 그는 “딸 니브가 올해 학교에 들어갈 때 함께 그곳에 가는 엄마가 되고 싶다”며 현장에 있던 사실혼 관계의 배우자에게 웃으며 “드디어, 우리도 결혼식을 올리자”고 말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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