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10월 입주 못하면 어떡해”...공사비 갈등에 재건축 삐걱

정석환 기자(hwani84@mk.co.kr), 이석희 기자(khthae@mk.co.kr) 2023. 1. 19.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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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비사업 ‘공사비 인상’ 갈등 확산
자재값 상승 등 증액 요청에
조합측 “요구액 수용 못해”
서초 신성빌라 공사 중단
[사진 = 연합뉴스]
전국 정비사업 현장 곳곳이 공사비 인상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고 있다. 관련 제도가 미비한 탓에 조합과 시공사 간 줄다리기가 길어지면 정부가 추진하는 공급 물량 확대 정책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는만큼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제시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동부건설은 서울 서초구의 신성빌라 재건축을 통해 들어서는 ‘방배센트레빌프리제’ 공사를 이달 초 중단했다. 동부건설이 2019년 수주한 이 사업지는 90가구(일반분양 23가구)가 공급될 예정이다.

입주는 올해 10월로 예정됐지만 공사비 인상 문제로 조합과 시공사가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서 공사 진행률 40% 수준에서 멈췄다.

동부건설은 최근 설계 변경을 이유로 조합에 공사비 증액을 요청했다. 동부건설 관계자는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기존에 맺은 계약은 손실이 나는 구조인 것도 맞는다”고 말했다.

조합과 시공사는 최근 진행된 2차 협상에서도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이같은 문제가 올해 다른 사업장에도 상당히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공사비 인상을 놓고 협상을 진행중인 정비사업 현장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서울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4지구 재건축사업도 조합과 시공사가 공사비를 두고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다. 시공사인 GS건설은 지난해 금리과 자재비 인상, 그리고 설계변경 등에 따른 비용 증가로 공사비 4700억원 증액을 요구했다. 이 중 약 1980억원에 대한 증액은 지난 4일 합의가 이뤄졌다. 이에 따라 공사비는 당초 약 9353억원에서 현재 1조1331억원까지 늘어났다.

GS건설 측은 나머지 약 2720억원 추가 인상을 위한 협상이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회사 관계자는 “한국부동산원으로부터 공사비 인상 검증을 받고 있다”며 “조합 측은 검증에 따른 증액에 동의한 상황이고 금리인상 등에 따른 비용 증가 역시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마포구 공덕동 공덕1구역 재건축사업 역시 공사비 협상에 난항을 겪고 있다. 이 사업의 경우 GS건설과 현대건설이 공동으로 시공을 맡았는데 2017년 3.3㎡ 공사비 약 448만원에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이주와 철거를 거쳐 지난해 6월 착공, 11월 분양을 목표로 했으나 아직까지 착공을 못하고 있다. 시공사업단은 그 사이 오른 자재비를 반영해 공사비 증액을 요구했지만 조합 측과 이견이 큰 상황이다.

삼성물산은 서초구 ‘래미안 원베일리’ 공사와 관련해 공사비 1560억원 증액을 요구하고 조합과 협상을 진행 중이다. 삼성물산은 조합 명의 통장의 사업비 인출을 막겠다는 공문을 보내고 공기 2개월 연장을 요청했다.

조합과 시공사 간 갈등이 터져나오면서 정치권에서도 나섰다.

민홍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재개발 및 재건축 사업의 공사비 검증이 필요하면 시공사가 사업시행자에게 공사비 검증에 필요한 자료를 의무적으로 제출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민 의원에 따르면 지난 2019년 공사비 검증제도 도입 이후 지난 7월까지 공사비 검증은 54차례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시공사가 최초로 요구한 공사비 증액 규모는 총 4조6814억7400만원이고, 한국부동산원 검증 후 도출된 공사비 적정액은 3조4887억2900만원으로 집계됐다.

민 의원은 “재개발·재건축 사업이 원활히 추진되려면 조합과 시공사 간 신뢰가 훼손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며 “공사비 증액에 대한 견해 차이로 시공사와 조합 간에 갈등이 발생하면서 사업이 지연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는 가운데 공사비 검증의 투명성을 높이고 이를 통해 상호간의 불필요한 피해를 최소화해야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합과 시공사간 갈등 사례가 점점 많아지는 것은 결국 고금리에 따른 시장 침체, 그리고 건설자재 가격 상승 탓이다. 김세원 내외주건 상무는 “지난 몇년간은 금리는 낮고 분양가규제는 강한 반면 시장이 호황이니 분양을 미루자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금리가 높아지면서 이주비, 사업비 대출을 일으킨 사업장들은 점점 비용 부담이 커지고 이젠 분양을 미룰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했다. 이어 “반면 시공사 입장에서는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실제 공사비가 올랐고 여기에 분양가 규제도 풀려 증액을 요구할 명분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정비업계에서는 조합과 시공사의 ‘윈-윈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일반적으로 시공사 선정 이전 단계에서는 조합이 우월한 위치에 있지만, 시공사 선정이 마무리되면 경험이 풍부한 시공사를 상대로 조합이 협상을 이어나가기 힘든만큼 ‘가이드라인’ 마련이 오히려 조합 측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백준 J&K도시정비 대표는 “공사비 인상에 대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나 공사비 검증에 대한 공공기관의 행정지도가 있지 않으면 조합만으로는 시공사를 상대하기 쉽지 않다”며 “공사비 인상의 불가피한 점을 인정하더라도 지나친 인상을 막으려면 결국 공공기관이 뒷받침해야 한다”고 발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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