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간 중대재해법 기소 11건뿐…그나마 대기업은 쏙 빠졌다
중소기업에 기소 집중…실질적 원청은 형사책임 피하기도
정부, 기업 규제·처벌법 완화 움직임에 수사기관도 ‘소극적’
‘사고 발생 위험성 높음’ ‘작업을 지속하려면 즉시 개선이 필요한 상태’.
대한산업안전협회가 경남 양산의 한 자동차부품 제조업체에 보낸 안전점검 보고서 내용이다. 하지만 보고서가 무색하게 이 업체 공장에서는 지난해 7월 네팔에서 온 이주노동자가 기계에 끼여 사망했다. 검찰은 안전보건관리체계를 제대로 구축하지 않은 책임을 물어 업체 대표이사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오는 27일이면 중대재해법이 시행된 지 1년이 된다. 중대재해법은 노동자가 일하다 사망했을 때 사업주는 물론 원청의 경영책임자까지 처벌하는 법이다. 19일 경향신문은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지난 1년간 검찰이 기소한 중대재해법 사건 공소장 전체(11건)를 확보했다. 전수 분석 결과 검찰 기소는 중소기업에 집중됐고, 최초 공사를 하도급한 주체는 기소 대상에서 빠졌다.
검찰 공소장을 살펴보면, 기소 대상에는 공사 규모는 크지만 상시근로자 수가 18명, 20명인 업체도 있었다. 많게는 340명인 업체도 기소된 사례가 있다. 하지만 지난해 1월29일 토사 붕괴·매몰 사고로 노동자 3명이 사망해 중대재해법 적용 1호가 된 삼표산업 사건을 비롯해 현대건설,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 대기업에서 발생한 사망사고 사건은 아직 처분이 이뤄지지 않았다.
업종별로 보면 11건 중 건설업이 8건, 제조업이 3건이었다. 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4건, 기계에 협착 3건, 장비 등이 무너져 깔린 경우 3건, 화학물질 피해 1건이었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대표이사가 안전 예방을 위한 ‘시스템’을 사전에 마련하지 않은 점에 주목했다. 특히 중대재해법은 원청의 경영책임자에게 적용되는 만큼 검찰은 하도급 업체를 선정할 때 안전 능력을 확인하는 절차가 미비한 게 대표이사 책임이라고 봤다.
공소장에선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눈에 띈다. 11건 중 피해자가 원청 소속인 사례는 2건뿐이다. 하청업체 소속은 2건, 재하청업체 소속은 6건이었다. 4단계 도급단계를 거친 하청업체 소속도 1건 있었다. 검찰은 최초 공사를 하도급한 주체를 모두 기소하지는 않았다. 대체로 피해자가 소속된 업체의 바로 윗 업체를 기소했다. 실질적인 원청은 형사책임을 피한 것이다. 중대재해법은 ‘발주처’를 처벌 대상으로 명시하지 않았지만, 노동계는 중대재해법의 입법 취지상 발주처도 처벌 대상에 포함된다고 본다.
인천지검은 피해 노동자가 4번의 도급단계를 거친 하청업체 소속인 사건에서 첫 번째 도급을 받은 업체에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이행 의무가 있다고 보고 기소했다. 제주지검은 피해 노동자가 재하청업체의 실질적 운영자이면서 상위 업체로부터 공사를 하도급받은 수급인인 사건에서 해당 노동자를 ‘노무를 제공하는 종사자’로 보고 상위 업체를 기소했다.
검찰이 지난 1년간 기소한 건수는 지난해 611건의 사망사고가 발생해 644명의 노동자가 숨진 사실(고용노동부 공식 통계)에 비춰보면 상당히 적은 수치다.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인 50인 이상 사업장·공사금액 50억원 이상 사업장으로만 따져도 사망자가 256명인데 노동청이 검찰에 송치한 사건은 37건에 불과했다.
윤석열 정부가 기업 규제를 완화하고 중대재해법을 완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것이 수사기관의 소극적 태도에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원에서 나온 중대재해법 판결은 아직 없다. 법원은 첫 기소 사례인 두성산업 사건에서 중대재해법이 위헌인지 여부를 조만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중대재해법 취지를 양형에 반영한 판결은 있었다.
이종광 서울북부지법 판사는 지난해 11월 노동자 사망 책임으로 사업주가 기소된 사건에서 “우리나라 산업계의 구조적인 후진국형 현실은 강력한 처벌이나 더 큰 경제적 부담이 부과될 때에야 담보될 수 있다. 비록 피고인들이 피해자의 유족과 합의했다고 하더라도 산업안전보건법의 개정 취지나 중대재해처벌법의 입법 취지에 따라 형을 정한다”며 실형을 선고했다.
이탄희 의원은 “현장에서 노동자 안전이 위협받는 원인은 단 하나, 기업의 비용 절감”이라며 “노동자가 죽고 다치면 더 큰 비용을 치룬다는 판례들이 쌓여야 기업의 인식이 바뀌고 노동 환경이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법이 제대로 시행되기도 전에 기업이 산재 사망사고의 책임을 피할 수 있는 길만 터주기 위한 중대재해법 개정은 말 그대로 개악”이라고 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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