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살 인생은 ‘마스크 없는’ 친구 얼굴이 낯설다[코로나19 3년]
“이젠 마스크 쓰고 잘 수도”
바뀐 일상 잘 적응하고 있어
‘가족과 많은 시간’ 효과도
“우리 코로나19에 대해서 얘기해볼까. 우리 마스크 쓴 지 얼마나 되는지 아는 사람?”
19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성미산마을에 자리 잡은 ‘도토리마을 방과후’ 교사 자두(48·본명 한은혜)가 질문을 던지자 19명의 아이들이 일제히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접어 남은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였다. “지금 4학년 형님들은 학교 갈 때 마스크 쓰지 않았을 때가 있었대.” 자두가 말하자 아이들 사이에서 “아!” 하는 탄식이 터져나왔다.
2020년 1월20일 한국에서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발생했다. 2019년 12월 중순, 중국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폐렴 증상을 보이는 환자가 발생했다는 보도가 나온 지 약 한 달 만이었다.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던’ 코로나19 팬데믹은 많은 것들을 바꿔놨다. 어린이의 세계도 다르지 않았다. 학교는 문을 닫았고, 생의 절반 가까운 시간을 마스크와 지낸 아이들은 ‘마스크 없는 친구 얼굴’을 떠올리기 어려운 세대가 됐다. 경향신문은 코로나19 국내 발생 3주년을 맞아 초등학교 1학년생 9명과 2학년생 10명 등 총 19명의 아이들과 ‘마스크와 코로나19’를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우리 아이들은 지난 3년을 어떻게 지나왔고, 훗날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각자의 경험에 따라 코로나19에 대한 인식차는 확연했다. 이겸이(9)에게 코로나19는 여전히 무섭고 두려운 존재다. 이겸이는 코로나19를 생각하면 ‘중국’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중국에 외삼촌 가족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확산 초기 이겸이는 뉴스를 보는 엄마의 얘기를 듣고 코로나19로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중국에서 처음 코로나 생겼을 때 삼촌이 걸렸는지 걱정됐어. 외삼촌이나 외숙모가 걸려서 돌아가실까봐.” 코로나19에 확진된 이후엔 공포가 더 커졌다. 너무 아팠기 때문이다.
반면 코로나19 확진 당시 크게 아프지 않았던 송현이(8)는 “코로나가 무섭지 않다”고 했다. 대신 ‘외로움’과 ‘미안함’을 많이 느꼈다고 했다. 송현이는 “엄마와 아빠가 코로나에 걸렸을 때 너무 안아주고 싶은데 (격리 때문에) 영상통화밖에 할 수 없어서 속상했다”고 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일상의 변화를 경험한 것은 이곳 아이들만이 아니다. 세이브더칠드런과 서울대 사회복지연구소가 2021년 7월부터 8월까지 전국 초등학교 5학년 1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지난해 3월 발표한 ‘코로나19 팬데믹과 아동 삶의 질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아이들의 삶의 만족도는 떨어졌다. 코로나19 발생 이전인 2019년 조사에선 ‘내 인생에 만족한다’는 문항에 10점 만점 중 8.44점이었는데, 코로나 이후 7.09점으로 떨어졌다.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가 해제되고 실내 마스크 착용 해제도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코로나19는 더는 여행, 영화 관람 등 여가활동을 즐기는 데 별다른 제약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아이들의 시간은 반 박자 천천히 흘러간다. ‘코로나가 끝나면 무엇을 제일 하고 싶냐’는 질문에 아이들은 어른들이 이미 하고 있는 소소한 것들을 꼽았다. 세온이(8)는 “영화를 보고 싶어”라고 답했고, 지원이(9)는 “마스크 때문에 숨이 차서 못하던 축구를 다시 하고 싶다”고 했다. 곤충동아리 회원이라는 주원이(9)는 들뜬 목소리로 “동아리 애들이랑 인도네시아 가서 도마뱀을 잡고 싶다”고 했다.
연구보고서 설문 참여 아동 65%는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더 오래 잘 수 있다’ 등을 코로나19 이후 나타난 긍정적 변화로 꼽았다. 연구진은 “코로나19로 인한 아동 삶의 변화는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며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아동들은 계속 성장하고 있었다”고 했다.
이유진·김송이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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