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발 수위 높인 이란, 원유대금·인권문제 등 ‘불편함’ 폭발
트럼프의 이란 제재 재가동 때
국내 묶인 원유대금 미해결에
‘히잡 시위 제재’ 규탄도 영향
UAE와 방산협력으로 ‘기름’
윤석열 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방문 중이던 지난 15일 아크부대를 찾아 “UAE의 적은 이란”이라고 발언한 것에 대한 파문이 커지고 있다. 이란 정부가 윤 대통령 발언을 비판하면서 주이란 한국대사를 초치하자 외교부는 19일 주한 이란대사를 초치해 입장을 설명했다. 당초 정부가 윤 대통령 발언에 대해 해명하고 이란도 이를 이해했다는 정부 설명과는 달리 파장이 진정되지 않은 채 양국 관계에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이란은 작심한 듯 한국에 대한 비판을 내놓고 있다. 이란 입장에서는 UAE와 조심스럽게 외교관계를 관리해 나가고 있는데 뜬금없이 제3국 대통령이 ‘이란과 UAE는 적대적 관계’라고 규정한 비상식적 발언을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상황이다. 한·이란 간에는 최근 몇 년 동안 악재가 쌓여 있는 상태여서 파장은 빠르게 번져나가고 있다.
이란과의 불편한 관계는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핵합의(JCPOA)를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이란에 대한 제재를 재가동하면서 시작됐다. 이란 제재 복원으로 인해 원유대금 70억달러가 이란으로부터 상당한 양의 원유를 수입해온 한국 국내 계좌에 동결됐고 지금까지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 돈은 이란의 해외 동결 자산 중 가장 큰 규모다. 2021년 1월 이란 혁명수비대가 호르무즈 해협에서 한국 국적 선박 ‘한국케미호’를 나포해 선원들을 억류한 것도 동결 자산 때문이었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JCPOA를 복원하려고 시도했지만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로 이란과의 협상이 진전을 보지 못해 이란 원유대금 문제 해결은 요원해진 상태다.
지난해 이란이 ‘히잡 시위’를 강경 진압한 후 국제사회가 이란을 규탄하고 제재를 가하는 것에 한국이 동참한 것도 이란과의 관계를 어렵게 만든 요인으로 보인다. 유엔 경제사회이사회(ECOSOC)는 지난해 이란을 ECOSOC 산하 여성지위위원회(CSW)에서 제명하는 결의안을 찬성 29개국, 반대 8개국으로 채택했다. 당시 한국은 이 결의안에 찬성했다. 한국이 UAE와 사우디아라비아에 무기를 수출하고 방산협력을 한 것도 이란을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2014년 발발한 예멘 내전은 정부군을 지원하는 사우디·UAE·바레인 등과 후티 반군을 지원하는 이란의 대리전이다. 한국이 사우디·UAE 등에 판매한 대전차 미사일 등의 무기가 예멘 내전에서 사용되고 있다. 윤 대통령의 UAE 방문을 계기로 한국은 UAE와 ‘전략적 방위산업 협력에 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등 국방 협력을 가속화하고 있다.
윤 대통령 발언은 이란이 갖고 있던 한국에 대한 이 같은 불만을 터뜨릴 수 있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이란이 한국과의 관계를 단절하는 등 파국을 원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국제적으로 고립된 이란이 한국과 관계를 파탄내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란은 한국의 ‘명백한 실수’를 빌미로 이란에 대한 정책을 바꾸도록 압력을 가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UAE 방문이 이란과 살얼음판을 걷는 상황에서 이뤄진 것이라는 점에서 윤 대통령은 대외 메시지 관리에 더욱 신중했어야 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정부는 이란을 상대로 각급 외교채널을 가동해 조기에 문제를 봉합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앞으로도 이란 측과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해 명확한 사실에 기초하여 우호관계 형성 노력을 지속해 나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sim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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