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란 듯’ 이름 박고 요란한 압색…국정원의 수상한 ‘양지’
정보기관이 인신 구속도 아닌데 공개 행보…“퍼포먼스 의심”
“노조=간첩 조직 그림 만들어” 수사 외 다른 목적 의혹 제기도
국가정보원과 경찰이 서울 중구 민주노총 본부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지난 18일 국정원 요원들은 뒷면에 ‘국가정보원’ 글자가 큼지막하게 표시된 검은색 외투를 입고 나타나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했다. 사무실 책상과 캐비닛 등에서 압수한 물품은 ‘NIS(국가정보원)’라고 적힌 플라스틱 상자에 담아 옮겼다. 이 장면은 민주노총 관계자들이 “공안탄압 중단하라”며 반발하는 모습과 함께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수사 중인 국정원의 민주노총 사무실 압수수색을 놓고 ‘과잉 대응’ ‘부풀리기’ ‘보여주기식’이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민주노총 간부 1명의 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압수수색인데도 마치 민주노총 전체를 압수수색하는 양 요란하게 집행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민주노총 조직국장 A씨의 PC·스마트폰·메모나 수첩 등을 압수수색하는 데 경력 700여명을 동원했다. 경찰이 둘러싼 민주노총 사무실 인근 도로에는 사다리차와 가로세로 폭 10m가량의 추락 방지용 에어매트가 설치됐다. 철제 펜스로 도로와 출입구를 막아 민주노총 소속이 아닌 건물 내 직원들은 신분증을 제시하거나 소속기관을 증명해야 출입을 허가했다.
이번 압수수색은 대공 수사의 특징인 ‘밀행성’과도 거리가 멀다. 장동엽 참여연대 권력감시국 선임간사는 19일 “보통 공안사건은 증거인멸이 우려된다고 판단해 (체포 영장을 발부해) 인신 구속을 먼저 한다”면서 “이번처럼 압수수색부터 하고 보는 것은 혐의를 입증하기 앞서 일종의 ‘퍼포먼스’를 하려는 것 아닌지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피의자 한 명을 대상으로 한 압수수색에 경력 700여명을 투입한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정원과 경찰은 수사관 수십명을 대동해 민주노총 사무실 앞까지 진입했지만 노조 관계자와 협의한 끝에 5~7명만 사무실에 들어가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경찰 측은 “민주노총이 조합원들을 동원해 압수수색을 막을 경우에 대비한 것”이라고 했지만 민주노총은 영장 열람 등 절차를 거친 후 압수수색을 받아들였다.
이번 압수수색을 앞두고 공안당국이 ‘언론플레이’를 했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노총 건물의 한 보안담당 직원은 “국정원 버스가 도착하기 전에 이미 기자가 와 있었다. 소속을 묻자 조선일보 기자라고 했다”고 전했다. 조선일보는 압수수색이 시작된 직후인 오전 9시쯤 이 사실을 가장 먼저 보도했다.
국정원이 수사 목적 외 다른 의도를 갖고 압수수색을 한 것 아니냐는 의심도 제기된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국가보안법 폐지 TF’ 단장을 맡은 장경욱 변호사는 “간첩 수사를 한다면서 ‘국가정보원’이라고 등에 써 붙이고 현장에서 사진까지 찍히는 건 처음 본다”면서 “국정원만큼 보안을 중시하는 곳이 없는데 굉장히 시끄럽게 수사를 펼쳐놓고 있다”고 말했다.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활동가는 “노조 사무실에서 필요 이상으로 압수수색을 펼치면서 마치 노조가 간첩 조직인 것 같은 그림이 만들어졌다”고 지적했다.
국정원이 지난 16일 수원지법에서 발부받은 압수수색 영장에는 “가능성이 높다”는 표현이 스무 차례 이상 등장한다. 혐의가 아직은 ‘가능성의 영역’에 있다는 뜻이다.
강은 기자 e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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