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 못 떠도 홍보부터…쓰지도 못하는 SOC '현수막 예산'
깎여버린 '안전·환경 예산'만 수천억
설 연휴가 가까워지면서 국회의원이 내건 현수막들 자주 보실 겁니다. 대부분 도로나 철도 같은 SOC 예산을 따왔다고 홍보하는 내용인데, 잘 따져봐야 합니다. 일단 예산을 따와서 현수막에 홍보는 하지만, 실제로는 여건상 쓰지 못하는 예산입니다.
이른바 현수막 예산인데 뭐가 문제인지 신혜원, 구혜진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신혜원 기자]
설 연휴를 앞둔 파주의 한 인쇄공장.
의정보고서를 찍는 기계가 쉴 틈 없이 돌아갑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보고서들, 지역 곳곳에 뿌려지며 예산 확보 성과를 알립니다.
거리 위 현수막도 좋은 홍보수단입니다.
주로 나랏돈 수십억씩을 더 따왔다는 내용입니다.
경기 안양의 인덕원 사거리.
동서로 시흥과 판교를 잇는 월곶-판교선, 남쪽으로는 인덕원-동탄선이 들어설 예정입니다.
[김광수/경기 의왕시 내손동 : 플래카드 보니까 예산 확보했다고… 지하철 생긴단 얘기 한참 됐잖아요. 한 5, 6년 됐을걸요, 아마?]
인덕원역 인근의 공사 현장입니다.
지난해 두 노선엔 각각 수천억원의 예산이 주어졌지만 집행률이 한 자릿수에 불과해 대부분 쌓여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천억원 가량을 새로 배정했고 국회에선 증액까지 이뤄졌습니다.
집행률이 낮은 건 사업적정성 재검토 대상에 올랐기 때문입니다.
올해 국회가 따간 예산, 다 쓸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구혜진 기자]
대구국가산업단지역이 들어설 예정인 한 시골 마을입니다.
산과 밭이 있는 이쪽 방향으로 서대구역까지 연결하는 대구산업선 사업에 지금까지 국가 예산 2000억원이 배정됐습니다.
하지만 허허벌판에 철도가 들어설 조짐은 없습니다.
[채대영/대구 달성군 창리 : 올해 (착공을) 한다고 하면 지금부터 뭔가 할 텐데. 수용이 아직 어디 된다. 설명이 없잖아요.]
두 달 전에야 기본 설계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실시 설계까지 마치려면 빨라야 2025년에나 삽을 뜰 수 있습니다.
국회 국토위 보고서엔 "집행 가능성이 낮아 1200억원 감액을 권한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그런데도 정부와 국회는 올해 1576억을 더 얹어줬습니다.
지난해 SOC 사업 201개가 11월까지 못 쓰고 남긴 예산은 2조에 달합니다.
그런데 올해도 국회는 SOC 예산을 2800억원 증액했는데요.
지난해도 사실상 홍보에만 쓴 현수막 예산.
올해도 현수막에 이렇게 한 줄 쓰고 나면 잠들 수도 있습니다.
[신혜원 기자]
10조원 받고 2800억원 더.
국회에서만 수천억 더 늘어난 SOC 예산, 과연 타당할까요?
예산은 나라 살림살이의 근간입니다.
돈이 한 분야에 쏠리면 다른 곳에 쓸 돈이 줄고, 제대로 못 쓰면 그만큼의 기회비용을 날리는 겁니다.
지난해 SOC 예산 집행률은 얼마나 될까? 도로·철도·공항 사업 201개를 전부 살펴봤습니다.
집행률이 절반도 안되는 사업이 50개, 집행률 0%, 한 푼도 안 쓴 사업도 10개나 됩니다.
이 중 4개는 국회에서 총 100억원 넘게 증액까지 해줬는데 쓸모가 전혀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8조 6천억원 중 1조 9천억원은 여태껏 '놀고 있는 돈'입니다.
못 쓴 이유는 제각각이라도 그런 사업엔 돈을 더 얹어줘선 안되겠죠.
그렇다면 올해는 잘 따져보고 짰을까요? 2023년 국토부 SOC 예산, 국회 증-감액 리스트도 전수 분석했습니다.
국회에서 50억원 이상 증액된 사업은 30개에 달합니다.
어디에 누가 힘을 썼을까? 여당 행안위 간사, 원내수석, 야당 최고위원, 사무총장까지 이른바 실세 지역입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경우도 있죠.
정부안 0원에서 증액된 사업, 총 11건입니다.
법사위원장, 전 비대위원… 역시나 실세 지역구입니다.
이렇게 '창조'해낸 예산이 313억원에 달합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정부가 증액이 어렵다고 밝힌 사업도, 타당성 재검토가 필요한 사업도 증액됐습니다.
근거는 알 수 없습니다.
대부분 기록조차 없는, 예결위 소소위에서 결정됐습니다.
[배진교/정의당 의원 (2022년 12월 24일) : 더욱더 비공개로, 더 은밀하게 진행됐습니다. 당연히 이런 잘못된 절차로 제대로 된 예산안 내용이 만들어질 리가 없습니다.]
실세 의원과 지도부의 '셀프 심사'로 탄생한 국회발 예산.
그중 일부는 결국 작년처럼 쓰지도 못한 채 '현수막 홍보'에 그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홍보성 예산을 늘린 만큼 줄어든 곳도 있겠죠.
혹시 꼭 필요한 예산이 줄어든 건 아닐지, 구혜진 기자가 이어서 전합니다.
[구혜진 기자]
지난해 하천이 넘쳐 큰 피해를 봤던 경북 포항의 한 마을, 주민들은 비가 오는 날이면 여전히 불안합니다.
산사태로 밀려온 토사가 쌓여 하천 바닥이 1m 높아진 채 그대로기 때문입니다.
[변갑재/경북 포항시 항사리 : 하천 정비가 굉장히 중요한 게, 이 마을에서는 보시다시피 하천 강바닥이 높아져서 지금 위에 얹혀있는 거 있잖아요. 밑에 물 흐르는 것만큼 파내야 해요. ]
이렇게 위험한 하천 환경을 정비하기 위한 예산, 국회에서 500억이 깎였습니다.
이른바 '실세 예산' '현수막 예산'을 늘리느라 깎여버린 건 주로 안전, 환경 예산이었습니다.
당장 깎아도 티가 덜 나고, 지역구에 생색 내기에도 역부족이기 때문입니다.
[이상민/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집행되지도 못할 곳에 돈이 잠겨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하고 싶은 사업을 임대주택 사업이라든지 각종 복지 사업을 못 했다 (볼 수 있죠.)]
(PD : 김홍준 / 영상디자인 : 최석헌·정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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