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강제력 없는 표준운임제, 명백한 ‘안전사회’ 역행이다
정부가 화물노동자의 최저임금제로 기능해온 ‘안전운임제’를 ‘표준운임제’로 대체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기존 안전운임제는 화물차주에 최소 운송료를 보장하고 이를 어기는 화주에게 과태료를 부과해왔는데, 표준운임제는 강제성 없는 가이드라인으로 과태료 규정도 사라진다. 화물차의 과로·과속·과적을 막고 도로를 이용하는 모든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하려 도입됐던 안전운임제를 형해화하는 명백한 개악 시도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
18일 한국교통연구원 공청회에서 발표된 ‘화물 운송시장 정상화 방안’은 노동자와 시민의 이익은 아랑곳없이 화주의 이익에 노골적으로 기울어 있다. 먼저 ‘화주→운송사→화물차주’ 물류단계에서 화주와 운송사 간 운임이 자율화된다. 화주가 ‘운임 후려치기’를 해도 처벌받지 않는 구조다. 운임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운송사에 대한 과태료 500만원 부과 조항은 유지되지만, 부과에 앞서 시정명령을 거쳐야 하는 방식으로 완화된다. 표준운임을 정하는 운임위원회에서는 화주들 목소리가 커진다. 기존에는 공익위원 외에 화주·운송사·화물차주 대표가 각각 3명씩이었지만, 화주들의 요구에 따라 앞으로는 화물차주 대표를 2명으로 줄인다고 한다. 이런 수준의 표준운임제도 시멘트·컨테이너에만 한정적으로 적용되는 데다 3년이 지나면 사라지는 일몰 방식이다.
이름부터 내용까지 죄다 바꾼 새 운임제의 반노동적 성격은 화물연대를 본보기로 삼으려는 윤석열 정부 의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지난해 12월 안전운임제 유지 및 확대 적용을 요구했던 화물연대 총파업을 정부가 업무개시명령으로 강경 탄압하면서 안전운임제 형해화는 예고된 것이었다. 표준운임제가 실제 도입될 경우 화주들은 처벌 걱정 없이 무한정 이윤을 추구할 수 있는 반면 화물차 노동자들은 소득 감소와 사고 위험 모두에 내몰릴 판이다. 파업에 대한 정부의 보복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화물연대의 사업자성을 예단해 검찰에 고발한 것도 그 일환으로 읽힌다. 정부가 부르짖는 ‘법과 원칙’은 오로지 가진 자들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가.
화물노동자의 노동조건을 더 악화시키고, 시민의 교통안전을 위협하게 될 표준운임제는 결코 ‘표준’ 역할을 할 수 없다. 정부가 도입을 강행할 경우 그 비용은 모든 시민들이 치르게 된다. 여론조사에서 안전운임제 유지에 찬성하는 응답이 과반인 이유는 이 때문이다. 정부는 안전사회에 역행하는 표준운임제 도입 계획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 정부가 기어코 이를 강행하려 한다면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국회에서 개악을 반드시 막아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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