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문재인 정부 블랙리스트’ 기소, 법정에서 진실 가리길
문재인 정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수사한 검찰이 19일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유영민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조명균 전 통일부 장관, 조현옥 전 청와대 인사수석 등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백 전 장관과 조 전 수석은 문재인 정부 초기 산업부 산하 기관장들에게 사직서 제출을 강요하고 후임자 임명 과정에서 특정인에게 특혜를 줬다고 의심하고 있다. 조 전 장관과 유 전 장관도 산하 기관장에게 사직을 요구하는 등 인사권을 남용했다고 보고 있다.
정부 교체기에 공공기관 인사들의 사퇴를 압박하는 일이 종종 벌어지지만 합법과 불법의 경계가 모호한 측면이 있다. 앞서 검찰이 기소한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관련자들에게는 유죄가 선고됐다.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과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은 박근혜 정부 때 임명된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들에게 사표를 받고 청와대나 환경부가 점찍은 인물들을 후임으로 앉힌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김 전 장관은 대법원에서 징역 2년6개월, 신 전 비서관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이 확정됐다. 그러나 전임 정권에서 임명된 기관장에게 핍박을 가하는 것은 현 정부도 마찬가지다. 윤석열 대통령은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과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의 업무보고도 받지 않았다. 한덕수 총리는 국책연구원장들의 퇴진을 압박해 홍장표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과 황덕순 한국노동연구원장이 결국 중도에 사퇴했다.
검찰은 이번 기소에 정치적 의도가 없다고 했다. 검찰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의 법리와 판례, 사건 관련자들의 지위와 역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새 정부 들어 검찰 칼날이 야당과 전임 정부만을 향하고 있다. 백 전 장관 등에 대한 기소도 의혹이 제기된 지 4년 만에 이뤄졌다. 정권이 바뀌지 않았어도 검찰이 수사했을지 의문이고, 윤석열 정부에서 진행된 기관장 사퇴 압박에 대해서도 검찰이 향후수사에 나설지 궁금하다.
검찰 기소로 공은 법원으로 넘어갔다. 백 전 장관 등은 재판에 성실히 임하고, 법원은 정치적 고려 없이 법과 원칙에 따라 사안을 판단해야 한다. 차제에 공공기관의 역할과 기관장의 임기를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법으로는 공공기관장의 임기를 정해놓고 국정 철학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퇴를 종용하거나 감사를 통해 압박하는 행위는 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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