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간 돌본 뇌병변 딸 살해한 엄마에 법원 집행유예
재판부 “장애인 가족에 대한 국가 지원 부족도 영향”
난치성 뇌전증에 좌측 편마비가 있고 지적장애까지 앓는 뇌 병변 1급 중증 장애인 딸을 38년간 돌보다 살해한 어머니에게 법원이 국가 책임을 언급하며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인천지법 형사14부(부장판사 류경진)는 19일 선고 공판에서 살인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실형이 아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검찰이 구형한 징역 12년과 차이가 크다.
살인죄의 법정형은 사형·무기징역이나 5년 이상의 징역형이다. 이번 사건의 양형기준상 권고형도 징역 4∼6년이지만 재판부는 이보다 낮은 징역형을 선고하면서 법정 구속도 하지 않는 집행유예 판결을 했다.
재판부는 “장애로 인해 피고인에게 전적으로 의지했던 피해자는 한순간에 귀중한 생명을 잃었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 의사는 고려되지 않았다”면서 “아무리 어머니라고 해도 딸의 생명을 결정할 권리는 없다”고 했다. 그러나 “피고인은 범행 이전까지 38년간 피해자를 돌봤고, 피해자의 장애 정도를 고려하면 많은 희생과 노력이 뒤따랐을 것”이라며 “그동안 피해자와 함께 지내면서 최선을 다했고 앞으로도 큰 죄책감 속에서 삶을 이어 나갈 것으로 보인다”며 이같이 판시했다.
법원은 중증 장애인 가족을 제대로 지원하지 않는 국가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하며 이번 사건이 A씨의 잘못만은 아니라고 했다.
재판부는 “장애인과 그 가족에 대한 국가의 지원 부족도 이번 사건 발생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오로지 피고인 탓으로만 돌리기는 어렵다”고 했다.
A씨는 지난해 5월 23일 오후 4시30분께 인천시 연수구 한 아파트 주거지에서 딸 B씨(사망 당시 38·여)에게 수면제를 먹여 살해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A씨는 당시 B씨에게 다량의 수면제를 먹인 뒤 자신도 수면제를 복용해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A씨는 딸을 살해하기 전까지 극진히 키웠다. 의사소통이 힘든 딸의 대소변을 거의 도맡아 받아냈다. A씨 아들이자 B씨 남동생은 법정에 증인으로 나와 “어머니는 다른 엄마들처럼 항상 누나 머리도 예쁘게 땋아주고 이쁜 옷만 입혀서 키웠다”면서 “대소변 냄새가 날까 봐 깨끗하게 닦아 주는 일도 어머니가 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사건 발생 4개월 전인 지난해 1월, 딸이 대장암 3기 진단을 받으면서 38년간 이어지던 엄마의 지극정성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A씨 아들은 “어머니는 누나가 대장암 진단을 받자 많이 힘들어했지만, 항암을 희망으로 어떻게든 이겨보려고 했다”며 “혈소판 수치가 감소하면서 항암마저 중단했고 누나 몸에 멍이 들기 시작하면서 더는 돌파구가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짐작했다.
A씨 아들은 “누나도 불쌍하고 엄마도 불쌍하다”며 “저와 아내가 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이때까지 고생하고 망가진 몸을 치료해 주고 싶다”고 재판부에 선처를 부탁했다.
A씨는 지난달 8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제가 그날 딸과 같이 갔어야 했는데 딸에게 정말 미안하다”면서 “그때는 버틸 힘이 없었고, 60년 살았으면 많이 살았으니 여기서 끝내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오열했다. 지홍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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