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작은도서관
미국 ‘강철왕’ 앤드루 카네기(1835~1919)는 도서관의 수호신으로 통한다. 사업가로 거부가 된 말년에 수천만달러의 재산을 기부해 무료 도서관을 2500곳 이상 건립했다. 스코틀랜드 출신 이민자의 아들로 가난했던 어린 시절, 동네 작은 도서관의 기억이 계기였다. 전보 배달원으로 밤낮없이 일하던 15세 때 이웃의 은퇴 상인이 책 400여권이 있는 자기 집 서재를 일하는 청소년을 위한 도서관으로 열었다. 카네기는 토요일마다 책을 빌려 밤새 읽으며 배움의 갈증을 풀었다고 한다. 그는 훗날 “그 작은 도서관이 지식의 빛이 흐르는 창을 열어주었다”고 말했다.
집 근처에 흔히 보이는 공립·사립 ‘작은도서관’은 공공 도서관보다 작은 규모의 도서관이다. 33㎡ 이상 규모에 장서 1000권 이상, 열람석 6석 이상이 기준이다. 현재 전국에 6000여곳의 작은도서관이 있다. 걸어다니기 편리한 생활친화적 공간이자 독서와 문화 프로그램을 통해 자연스럽게 지역 공동체가 형성되는 곳이다. 멀리 다니기 어려운 어린이, 노인, 장애인 등이 손쉽게 책을 접하는 곳이기도 하다.
서울시가 작은도서관을 지원하던 예산을 올해 전액 삭감했다. 2015년부터 350~380곳을 대상으로 한 해 총 7억~8억원대를 지원했는데 오세훈 시장 취임 후 두 해 연속 줄였다가 올해는 아예 없앤 것이다. 작은도서관 한 곳당 연간 150만~250만원의 지원을 끊으면서, 도서 구입비와 운영비 충당에 차질이 빚어지게 됐다. 지난해 마포구청이 구립 작은도서관을 스터디카페로 바꾸려다 주민 반대로 무산된 일이 있었는데, 서울시는 작은도서관을 고사 위기에 내몬 것이다. 대구시도 같은 예산 2억2000만원을 모두 삭감했다.
서울시 등은 작은도서관 이용자가 적어 예산이 낭비되는 일을 막겠다는 취지라고 하는데 납득이 안 된다. 지식과 정보에 소외된 주민들이 책을 읽고 교류하는 일을 이익과 효율로만 따지겠다는 것인가. 작은도서관을 내팽개치는 건 시민들의 교양과 복지, 미래세대의 희망을 무너뜨리는 처사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당신이 꼭 알아야 할 것은 도서관 위치뿐”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빌 게이츠는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은 동네 도서관이었다”고 말했다.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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