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 못할 줄 알아" 으름장에, 건설사 3년간 '노조원' 518명 뽑아줬다

박준석 2023. 1. 19.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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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19일 "건설 현장에 만연한 불법행위를 근절하겠다"며 양대 노총과 군소 노조 사무실 등 34곳을 동시다발적으로 압수수색했다.

경찰은 조합원 채용 강요, 금품 요구 등 건설 현장에서 이들 노조의 비리가 만연하다는 첩보를 입수해 영장을 발부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전날 국정원과 경찰은 국보법 위반 혐의로 민주노총 본부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고, 공정거래위원회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를 조사 방해 혐의로 검찰에 고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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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건설노조 34곳 동시 압수수색
조합원 채용 강요 및 금품 갈취 혐의 
노동계 "공안정국 조성 연장선" 격앙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 수사관들이 19일 영등포구 민주노총 건설노조 서울경기북부지부에서 압수수색을 마친 뒤 압수품을 들고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이 19일 “건설 현장에 만연한 불법행위를 근절하겠다”며 양대 노총과 군소 노조 사무실 등 34곳을 동시다발적으로 압수수색했다. 전날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국가정보원과 함께 민주노총 본부를 전격 압수수색한 지 하루 만이다. 경찰은 “특별단속에 따른 강제수사”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지만, 노동계는 “노조 탄압이 시작됐다”면서 격앙된 분위기다.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는 이날 민주노총 건설노조 사무실 5곳과 한국노총 전국건설산업노조(건산노조) 사무실 3곳에 수사관을 보내 노조 운영 및 회계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 한국연합 등 수도권에 기반을 둔 군소 노조 사무실 6곳 및 노조 관계자 주거지 20곳도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됐다. 경찰은 조합원 채용 강요, 금품 요구 등 건설 현장에서 이들 노조의 비리가 만연하다는 첩보를 입수해 영장을 발부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토끼몰이' '확성기 시위'... 불법 채용 민낯

장옥기(오른쪽 두 번째) 위원장 등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1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서울경기북부지부에서 경찰의 압수수색을 규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실제 이날 본보가 입수한 한국노총 건산노조 압수수색 영장에 따르면, 간부 A씨는 2021년 10월 한 건설 현장 앞에 확성기가 달린 승합차 여러 대를 세워놓고 업체를 상대로 조합원 채용을 강요했다. 며칠 뒤엔 책임자를 불러 “채용에 불응할 경우 불법체류 외국인을 전부 신고하겠다”고 협박했다. 업체 측은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이듬해 5월 조합원 8명을 뽑았다. 또 간부 B씨는 2020년 말 건설 현장에 들어가 외국인 노동자를 몰아내는 ‘토끼몰이’ 방식으로 공사를 방해해 한 달 뒤 ‘철근공’ 조합원 10명 채용을 관철시켰다.

금품 강요 정황도 포착됐다. 간부 C씨는 지난해 2월 조합원 채용을 거부하는 업체 측에 방해 집회 개최를 들먹이며 노조 전임비 5개월 치를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놨다. 계속된 협박에 업체는 개인 명의 계좌로 수백만 원을 입금해야 했다. 건산노조 간부 6명은 최근 3년간 이런 우격다짐을 통해무려 조합원 518명을 불법 채용시켰다.


대통령 서슬에 전 부처 '총력전'

윤석열(왼쪽) 대통령과 배우자 김건희 여사가 지난달 2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청년들과 만나 노동, 교육, 연금 3대 개혁 등을 주제로 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경찰은 지난달 8일 ‘건설노조 200일 특별단속’에 착수했다. 직전 윤석열 대통령이 건설노조의 채용 강요 등을 거론하며 “불법과 폭력이 판치고 있다”고 공개 불만을 표한 영향이 컸다. 경찰은 “명예를 걸겠다”는 표현까지 써가며 고강도 수사를 공언했다. 경찰청은 한 달여 수사를 통해 건설노조 불법 관련 23명을 송치(7명 구속)했다는 결과도 이날 내놨다. 압수수색은 특별단속 실시에 따른 자연스러운 수순일 뿐, 정치적 의도는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야권과 노동계에서는 ‘공안 정국’을 조성하려는 정부 차원의 노림수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1일 신년사에서 노동개혁을 화두로 던지고, 뒤이어 사실상 모든 정부부처가 노동계를 전방위 압박하는 모양새가 잘 짜인 각본이라는 것이다. 전날 국정원과 경찰은 국보법 위반 혐의로 민주노총 본부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고, 공정거래위원회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를 조사 방해 혐의로 검찰에 고발할 예정이다. 국토교통부 역시 이날 실태조사 자료를 통해 2,000여 건의 건설노조 불법행위에 대해 수사 의뢰하기로 했다.

양대 노총은 반발했다. 한국노총은 “대형 재개발ㆍ재건축 비리, 수억 원대 부정 청탁과 불법재하도급 등 토착 비리에는 정부가 눈감으면서 만만한 노동자 때리기나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도 “노조의 기본 책무인 건설노동자의 고용안정 활동을 불법으로 몰아가는 것은 공안 탄압”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건설현장의 오랜 불법 관행을 이제라도 자성해야 한다는 내부 목소리도 나온다. 건산노조 소속 한 간부는 “자격 미달 조합원을 걸러내는 차원에서 특별단속의 순기능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며 “돈을 뜯어내는 노조 간부들의 행태는 반드시 개선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최다원 기자 da1@hankookilbo.com
김도형 기자 nam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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