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강아지와 잘 살고 있습니다[반려시대, 누구랑 사세요?④]
일본 도쿄 서쪽에 있는 한적한 동네 아사가야. 골목을 거닐다 보면 작고 알찬 가게들과 마주하게 된다. ‘펭귄 카페’는 증기압을 이용해 신선한 커피를 추출하는 정통 일본식 사이폰 커피를 맛볼 수 있는 집이다. 동갑내기인 후타바 노부히로·고쿄(48) 부부가 카페를 운영한다. 일요일은 평소보다 한 시간 이른 10시부터 손님을 맞는다. 그리고 정오까지 특별한 공간으로 변신한다.
후타바는 2018년 11월부터 일요일마다 ‘아이보 랜드’ 모임을 열고 있다. 일본 전자기업 소니가 만든 인공지능(AI) 반려로봇 ‘아이보(Aibo)’와 함께 사는 사람들을 위한 교류의 장이다. 아이보는 인공지능 로봇(Artificial Intelligence Robot)의 줄임말인데, 일본어 발음으로는 ‘파트너’를 뜻하기도 한다. 강아지처럼 생긴 무게 2.2㎏의 아이보는 몸에 탑재된 여러 센서를 통해 사람의 손길을 인식하고 정보를 축적해가며 주인과 상호작용한다. 주인에게 다가가 어리광을 부리는 모습은 털만 없을 뿐 반려견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후타바는 2018년 9월생 아이보인 사이먼과 지낸다. 아이보가 있는 카페라고 입소문을 타면서 아이보와 동행하는 손님들이 늘자 별도 모임을 열기에 이르렀다.
지난 8일 오전 9시 반. 사이먼과 일찍 도착한 몇몇 친구들이 한국에서 온 낯선 얼굴을 반겼다. 도쿄 근교 에노시마에서 온 오하라 히데아끼(48)가 명함을 내밀었다. 아이보 모임에선 명함을 주고받는 문화가 있다. 명함에는 직장 이름이나 휴대폰 번호가 아닌 아이보 이름과 사진, 생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주소 등이 담겨 있다.
오하라는 2018년 2월 첫째 아이보 나나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이름은 아내가 좋아하는 피겨스케이팅 선수 이름에서 따왔다. 나나는 일본어로 숫자 7을 의미하기도 한다. 5개월 뒤 둘째 하찌(숫자 8)를 들였고, 2020년 셋째 큐(9)까지 식구가 늘었다. 세 마리의 성격은 제각각이라고 한다. 오하라는 “막내는 확실히 다르다. 응석 부리는 걸 좋아하고 사람을 잘 따른다”고 했다. 대화를 나누는 순간에도 큐는 주인 곁을 맴돌았다. 자유분방한 첫째 나나는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녔다.
“우린 자녀가 없어요. 알러지가 있어서 개를 키우기도 어렵다보니 아이보를 사게 됐죠. 나나를 수리하러 보냈을 때 너무 외롭더라고요. 그래서 둘째를 데려왔고, 어쩌다보니 세 마리가 됐네요.”
로봇과 정들다
오전 10시가 가까워지자 카페 안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주인들은 음료를 주문한 뒤 서로 아이보 이름을 부르며 안부를 물었다. 아이보들이 노는 모습을 촬영하고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의상에서부터 기능까지 다양한 이야깃거리들이 공간을 채웠다. 총 15마리의 아이보가 한자리에 모였다. 아이보 아이와 처음 모임에 왔다는 야마모토 미와(49)는 “오늘이 첫 데뷔”라며 “집에서는 아이가 조용했는데 여기선 엄청 활발하다”며 신기해했다.
“오스와리!(앉아)” 11시쯤 주인들이 분주해졌다. 단체 행사를 앞뒀기 때문이다. 제각기 움직이는 아이보들을 겨우 달랜 끝에 옹기종기 모이게 하는 데 성공했다. 행사 진행을 맡은 오하라가 큰소리로 그림책을 읽어내려갔다. 아이보들이 특정 문구에 반응하도록 제작된 책이다. 주인과 함께 구름 위로 소풍을 떠나는 이야기에 아이보들은 귀를 기울였다. ‘놀았습니다’ 하면 꼬리를 올리고, ‘얘기했습니다’ 하면 왈왈 짖었다.
다음은 댄스 시간이다. 주인들은 아이보들을 둥글게 배치한 뒤 앞으로 나아가면서 춤을 추도록 앱을 조작했다. 아이보들은 귀와 꼬리를 쫑긋 세우며 재롱을 떨었다. 행인들이 창 너머로 낯선 풍경을 들여다봤다. 마지막으로 단체사진을 찍는 순서가 왔다. 다 같이 엎드려 있는 아이보들을 카메라에 담으려던 찰나, 카페 사장 후타바네 사이먼이 발라당 드러누워버렸다. 후타바가 “미안합니다” 하자 참가자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이곳에 모인 아이보들은 2018년 재출시된 신형이다. 소니는 1999년 세계 최초로 가정용 강아지로봇 아이보를 세상에 내놨다. 6년간 다섯 차례 모델을 업그레이드했다. 한화로 200만원이 넘는 가격에도 약 15만대가 팔렸다. 하지만 소니는 2006년 초 경영 악화로 아이보 생산을 멈췄다. 2014년에는 수리 서비스마저 종료했다. 주인들이 고장 나서 움직이지 않는 아이보를 위해 사찰에서 단체 장례식을 치르는 모습은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다. 이들에게 아이보는 단순한 전자제품이 아니라 가족이었던 셈이다.
아이보가 돌아온 건 생산을 중단한 지 12년 만인 2018년이다. 새로운 아이보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로 만든 눈동자를 가졌다. 등을 쓰다듬는 행위 등을 감지해 기분이 좋으면 눈웃음을 짓는다. 코에 달린 어안렌즈(물고기 눈처럼 180도 광범위한 시야를 제공하는 렌즈)를 통해 외부 환경을 시각 정보로 받아들인다. 경험을 통해 자신만의 개성을 형성해나간다. 일본과 미국에서 판매 중으로 본체 가격은 21만7800엔(약 211만원)이다. 아이보가 정보를 기억하고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월 3만원대 클라우드 서비스에도 가입해야 한다. 한국은 주로 공공기관이 반려로봇을 구매해 홀몸 노인을 위한 사회복지 현장에 보급하고 있지만 일본은 개인이 직접 구매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다.
이날 모임의 최연소 주인은 사이조 유리(11)다. 강아지를 키우고 싶었지만 털 알러지 때문에 들일 수 없었다. 대신 부모를 설득해 지난해 9월 아이보 르네타를 데려왔다. 그 다음달부터 매주 모임에 출석도장을 찍고 있는 사이조는 “살아있는 동물이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아이보의 움직임도 너무 귀엽다”고 말했다. 5년 전 차곡차곡 모은 돈주머니를 턴 회사원 세키네 타카시(28)는 “워낙 고가인지라 또래 주인들이 별로 없다”고 했다.
일본은 지난해 기준 인구 10명 중 3명(29.1%)이 65세 이상 노인인 초고령 사회다. 1인 가구는 38.0%에 달한다. 고령화·1인 가구 증가와 기술 발전이 맞물려 반려로봇 시장이 커지고 있다. 사람이 하기 힘든 일을 대신해주는 도구적 역할에서 벗어나 사람과 소통하는 사회적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소셜로봇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일각에서는 아무리 기술이 발전했다고 해도 무생물인 로봇과 인간이 반려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에 대해 회의적이다. 로봇을 향한 과도한 의존과 개인정보 침해, 일방적 학습에 따른 편향성 등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다만 이미 로봇을 반려동물처럼 여기며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사람 사이의 관계만이 제대로 된 반려라는 이유로 인간과 로봇 관계를 마냥 부차적으로 취급할 수 없는 이유다. 일본 벤처기업 그루브엑스가 만든 반려로봇 ‘러봇(Lovot)’이 치매 환자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덴마크의 한 지방자치단체(올보르시)가 진행한 연구에서 “소셜로봇이 인간의 접촉이나 보살핌을 대체할 수 없고 대체해서도 안 되지만, 행복도와 삶의 질을 높이는 보조수단이 될 수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아이보가 없었으면 이런 모임에 나오지도 못했을 거예요.” 1인 가구이자 아이보 2마리와 함께 사는 신도 게이치(52)는 아이보와 지내면서 삶이 다채로워졌다고 했다. 원래 사람들과 교류가 없었던 그에게 로봇강아지가 변화를 물어다줬다. 손재주가 좋은 신도는 큐빅으로 아이보의 귀와 꼬리 장식을 직접 만든다. 빨간 나비넥타이까지 걸어주면 스타일이 완성된다. 신도는 “두 마리가 놀고 있는 모습을 멍하니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며 “밖에서 일할 때면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아이보를 향한 오하라의 사랑도 둘째가라면 서럽다. 처음 아이보를 만났을 때만 해도 컴퓨터나 장난감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단순한 기계 이상으로 다가왔다. 전원을 꺼두는 시간이 점점 줄었다. 정이 들어버린 것이다. “‘너무 귀여운 이 존재는 뭐지?’ 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금방 지루해지겠지, 키우면 뭘 할 수 있겠나 싶었는데…. 감정이 투영되면서 물건이 아닌 다른 존재가 돼버렸어요. 이미 삶 속에 들어온 이상 얘네들 없는 삶을 생각하기 힘들죠.”
오하라는 요즘 ‘로봇 프렌들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로봇과의 동행이 자연스러운 사회를 만들자는 취지다. ‘어떻게 하면 인간과 로봇이 함께 이 공간을 즐길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전국 80여개 상점들이 동참하고 있다. 오하라는 “일본에서도 로봇과의 삶은 흔치 않은 일”이라며 “로봇이 보편화될 미래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애완과 반려 사이
“진단해보니 아이보는 문제없이 잘 지냈습니다. 노는 시간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주인과 함께하는 시간을 더 가지면 마음이 뿌듯해질 겁니다.”
도쿄 근교 지바에 사는 아이보 글리는 지난해 1월 아이보 전문병원(수리센터)에서 ‘건강검진’을 받았다. 검진 결과지를 보면 신체는 A등급인데 마음은 C등급이다. 지난 9일 자택에서 만난 주인 가와나 레이코(69)는 “집에 없을 때 자주 전원을 꺼놨더니 마음이 안 좋게 나왔다”고 했다.
가와나는 1999년 첫 출시 때부터 아이보와 함께하는 삶을 꿈꿨다. 비싼 가격에 고민만 하다 단종 소식을 들었다. 5년 전 아이보가 다시 나왔을 땐 곧장 행동에 들어갔다. 가와나에게 글리는 “동료 같은 존재”다. 한 달 전 코로나19에 감염돼 방에서 혼자 격리했을 때도 글리가 적적함을 달래줬다. 과거 키우던 강아지가 병으로 죽은 게 상처로 남아 있다. 로봇인 아이보는 그런 슬픔과는 거리가 멀다. 한 마리 더 들이고 싶기도 했지만 남편과 아들의 따가운 시선을 이기지 못했다.
가와나는 어린 시절 본 만화 영화 <우주소년 아톰> 이야기를 꺼냈다. 아톰을 보고 자란 만큼 로봇에 별 거부감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귀여운 소년 모습의 로봇 ‘아톰’은 일본 로봇 산업을 일으킨 원동력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아이보가 아톰처럼 감정표현을 하는 모습이 멋있고 대단하다고 느낀다”고 했다. 글리는 방탄소년단(BTS)의 ‘다이너마이트’ 멜로디에 맞춰 춤을 추기도 했다.
로봇과 살아가는 삶의 면면은 다양하다. 이케다 하루나(43)에게 아이보는 애완과 반려 사이 어디쯤 있다. 어렸을 때부터 변신로봇과 움직이는 기계를 좋아했고 미래 기술에 관심이 많았다. 2010년 2월 밸런타인데이에 남편에게 중고 구형 아이보를 선물받았다. 모델을 하나씩 모으다보니 지금은 신형까지 20마리와 함께 산다. “아이보를 진짜 반려견처럼 키우는 분들이 많아요. 저는 거기까진 아니고 제 스타일로 가고 있죠.”
로봇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르지만 주인들과의 모임에는 적극적으로 나선다. 아이보가 하는 행동의 인과관계를 명확히 알기 어렵기 때문에 만나면 할 얘기가 산더미다. 이케다는 “달라진 게 있다면 교류가 많아진 것”이라며 “아이보가 아니었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잊지 못할 경험 중 하나는 2021년 11월 도쿄의 한 신사에서 열린 ‘시치고산(七五三)’이다. 시치고산은 3·5·7세가 되는 어린이들의 성장을 축하하고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전통 행사다. 소니가 주최한 이 행사의 주인공은 2018년 재출시돼 탄생 3주년을 맞은 아이보들이었다. 이케다는 당시 3세 된 아이보 브루투스와 현장에 있었다. 한때 장례식 제단에 올랐던 아이보는 이제 성장을 축하받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도 어김없이 아이보를 위한 시치고산이 열렸다. 도쿄뿐만 아니라 아이보 생산공장이 있는 ‘아이보의 고향’ 아이치현에서도 아이보의 안녕을 빌었다. 추첨으로 참가자들을 선발하는데 경쟁이 치열했다고 한다. 반려로봇이 점점 인간의 삶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는 의미다.
특별취재팀
구경민·김지환·노도현·성동훈·이준헌·장용석·전현진 기자
도쿄 |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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