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람에서 무덤까지’…해외 사례로 본 반려 정책[반려시대, 누구랑 사세요?④]
2020년 4월부터 시행된 영국의 ‘루시법’은 반려동물 번식장이 생후 6개월 미만의 강아지나 고양이를 직접 사육자가 아닌 펫숍(반려동물 및 관련 상품을 판매하는 매장) 등 제3의 유통업자에게 판매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법 이름은 웨일스의 열악한 번식장에서 강아지를 낳는 기계처럼 살다 2013년 구조된, ‘캐벌리어 킹 찰스 스패니얼’종인 모견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영국 동물단체들은 루시의 이름을 딴 캠페인을 벌여 이 법을 통과시킬 수 있었다.
이 법에 따라 영국에서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으면 전문 자격을 지니고 특정 품종을 양육하는 ‘브리더’(breeder)에게 직접 분양받거나 동물보호소를 통해 유기동물을 입양하는 것만 가능하다. 브리더는 분양하려는 강아지가 태어난 곳에서 어미와 함께 지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소비자들이 대량생산으로 만들어진 반려동물을 충동적으로 구입하지 못하도록 제한한 것이다.
프랑스·터키·핀란드·독일·벨기에·호주·캐나다·미국 등도 전국 혹은 일부 주에서 반려동물을 펫숍에서 판매할 수 없도록 했다. 지난달 미국 뉴욕주는 펫숍에서 개·고양이·토끼 등 반려동물을 판매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켰고, 2024년 12월부터 시행된다. 마이클 지어내리스 뉴욕주 상원의원은 “반려동물은 통조림처럼 진열대에 전시돼 판매돼선 안 된다”고 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문화가 오래된 국가에서는 동물 판매를 규제함과 동시에 양육자의 의무도 세밀하게 규정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반려동물 정보등록·갱신제다. 반려동물을 입양하거나 구입했을 때 소정의 비용을 내고 등록한 뒤 정기적으로 그 정보를 갱신하는 제도다.
한국에서도 생후 2개월 이상 반려견은 지방자치단체에 등록하고 보호자 변경 시 신고하도록 의무화돼 있다. 하지만 반려견 소유주들이 정보등록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정기적인 갱신 제도도 없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반려견 양육 마릿수 대비 등록 마릿수는 2020년 기준 38.6%에 불과하다.
반려동물 등록제도는 반려동물 정책에 사용될 재원을 마련하고, 분실·유기·방치된 동물을 관리·감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영국·독일·호주·싱가포르 등이 등록·갱신을 의무화했고,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중성화 수술을 한 경우 등록·갱신비를 감면해주는 제도를 운영 중이다.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 프라이부르크에 살고 있는 교민 조모씨(29)는 강아지와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 조씨가 사는 지역은 반려견 산책을 하루 2회, 총 1시간 이상 해주는 것이 의무일 정도로 세밀한 규정이 있다. 조씨는 “독일에선 주나 도시마다 반려동물 관련 규정이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반려견 등록을 의무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은 반려동물 양육자에게 세금을 부과하고 있는데, 모든 반려동물이 등록되지 않으면 형평성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등록이 필수이다.
크리스마스에 입양 금지한 동물보호소
조씨는 한국을 오갈 때마다 유기견 해외입양을 위한 이동봉사도 하고 있다. 해외로 입양가는 반려동물을 자신의 수하물로 등록해 함께 이동하는 것이다. 동물만 따로 비행기 수하물에 실어 보내면 큰 비용이 들기 때문에 봉사자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유기견 등을 입양해 키우는 건 해외에서 이미 자리 잡은 문화다.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다면 펫숍 등에서 구입할 수 없고, 전문 브리더에게 분양받거나 유기동물보호소에서 입양을 한다.
조씨는 “한국 유기견들이 해외로 입양 가는 걸 긍정적으로 바라봐줬으면 좋겠다”며 “한국의 유기견은 국내 입양만으로 감당할 수 없어 안락사로 죽거나 보호소에서 고통받으며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조씨의 말처럼 유기동물 입양률이 낮아 생기는 논란 중 가장 문제되는 것이 안락사다. 반려동물 수요가 늘면서 유기동물도 늘어났다. 하지만 동물보호소의 수용 능력은 제한적이다. 그러다보니 나라마다 차이가 있지만 보통 12~14일가량의 기간 동안 보호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안락사가 행해진다.
대만에서는 2017년 2월4일 동물보호법 개정에 따라 ‘제로 안락사’ 정책이 시행돼, 공립 동물보호소에서의 안락사가 금지됐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이 법이 시행된 뒤 안락사된 동물 수가 대폭 줄었지만 수용 동물 수가 폭증했다. 보호소 직원 1명이 담당하는 동물이 14마리였는데, 안락사 금지 시행 후 52마리로 증가했다. 동물들끼리 제한된 먹이를 두고 다투다 크게 다치고, 수용이 거부되거나 방사돼 외부를 떠돌던 유기견들이 들개화되는 일도 늘어났다. 유기동물 발생 원인 자체가 해결되지 않아 생긴 또 다른 문제들이다.
‘유기동물의 천국’으로 불리는 독일의 동물보호소 ‘티어하임’(동물의 집)도 안락사를 시행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유럽 최대 규모 동물보호소인 베를린 티어하임은 홈페이지에서 “모든 동물들이 건강을 찾을 수 있도록 돌보고, 이들이 최대한 즐겁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다만 “동물보호소는 동물들을 위한 임시 시설일 뿐 진정한 집은 아니다”라며 “우리들의 진정한 목표는 동물들이 사랑받을 수 있는 새로운 집을 찾아주는 것”이라고 했다.
베를린 티어하임은 무분별한 입양에 따른 유기동물 발생을 막기 위한 캠페인도 벌였다. 2018년 베를린 티어하임은 크리스마스 기간에 분양을 일시 중단했다. 자녀에게 깜짝 크리스마스 선물을 하겠다며 충동적으로 반려동물을 입양했다가 제대로 키우지 못하고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티어하임은 “동물은 감정과 필요를 느끼는 생명체이지 깜짝 선물이 아니다”라고 했다.
“준비 안 됐으면 기르지 마세요”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지난달 6일 농식품부는 ‘동물복지 강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동물수입·판매·장묘업을 허가제로 전환하고, 생산·판매업의 불법 영업에 대한 처벌과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현행 기준에 따르면 개나 고양이 번식장 영업허가를 받기 위해선 75마리당 1명의 관리인력을 둬야 한다. 허가 기준 자체가 대량생산을 용인하고 있어 열악한 환경을 방치한다는 지적도 있다.
해외에서는 유기동물을 입양하는 것이 반려동물을 갖게 되는 보편적인 방식이다. 하지만 한국은 유기동물 입양 비율이 매우 낮다보니 반려동물 대량생산 산업이 번성하고 있는 것이다. 2021년 농식품부 조사를 보면 반려동물의 입양경로는 지인 간 거래(69.1%), 펫숍 구입(24.2%), 동물보호시설에서의 유기동물 입양(4.8%) 순서로 나왔다.
유기동물의 입양률을 높이기 위해선 동물보호소의 환경을 개선해 반려동물을 찾기 위해 오는 사람들의 신뢰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 독일에 거주하며 2018년부터 반려견을 키우고 있는 강성운씨(38)는 “한국과 독일 동물보호소에서 모두 봉사를 해봤는데 환경이 너무 달랐다. 독일에서는 동물들의 개별 공간이 충분히 확보돼 있는데 한국에선 큰 개들이 좁은 공간에 우글우글 몰려 있고, 작은 개들은 케이지에 넣고 쌓아뒀다”고 말했다.
반려동물을 키우려는 사람들의 인식 개선도 필요하다. 유기동물은 대부분 방치된 떠돌이 개이거나 이들이 낳은 새끼, 그리고 주인이 내다버린 개 등 적절한 돌봄을 받지 못한 동물들이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반려동물을 사고파는 데 아무런 제한이 없다보니 아무나 길렀다가 버리거나 방치하는 일이 많다”며 “반려동물 양육은 15년 이상 걸리는데, 얼마나 많은 노력과 비용이 필요한지 제대로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반려동물을 키우려는 이들에겐 펫숍에서 구입하는 대신 유기동물을 입양하도록 권유하고, 동시에 ‘준비가 안 됐으면 기르지 마세요’라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구경민·김지환·노도현·성동훈·이준헌·장용석·전현진 기자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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