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소 여성 뉴질랜드 총리 전격 사임…"결혼식 올리고 딸 첫 등교 함께"
[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저신다 아던(42) 뉴질랜드 총리가 총리직 사임을 전격 발표했다. 아던 총리는 사임 이유로 개인적 소진을 들었지만 집권 노동당 지지율이 하락 중인 배경도 깔려 있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아던 총리는 향후 정치적 계획은 없으며 미뤘던 결혼식을 올리고 딸의 첫 등교에 함께하는 등 가족과 시간을 보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19일(현지시각) 아던 총리는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당 대표에서 물러남과 동시에 다음달 7일 이전에 총리직에서 사임하겠다고 밝혔다. 노동당은 오는 22일 새 대표 선출을 위한 투표를 치를 예정이다. 의원 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뉴질랜드에선 집권당 대표가 총리를 맡게 된다. 아던 총리는 새 총리가 결정될 때까지만 총리직을 유지할 것을 선언하며 노동당에 늦어도 다음달 7일까진 당대표 선출을 마무리하라고 권고했다. 이날 아던 총리는 올해 10월14일에 총선이 치러질 예정이며 자신은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올해 4월까지 의원직은 유지할 방침이다.
아던 총리는 사임 이유로 개인적 소진을 들었다. 그는 "총리가 되기 위해 내 모든 걸 바쳤지만 총리직은 내게서 많은 것 빼앗았다"며 "연료통을 꽉 채우고 피할 수 없이 수반되는 예상치 못한 도전들을 위한 여분까지 비축한 상태"에서만 직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데 "연료통에 더 이상 여분이 없다"고 자신의 상태를 설명했다. 그는 "총리를 맡은 것이 인생에서 가장 큰 명예"였다면서 "이런 특권적 역할에는 책임이 따르며 책임의 범위엔 자신이 이 일을 이끌어 나갈 적임자인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알아야 하는 것이 포함된다"고 강조했다. 아던 총리는 이날 재임 기간 동안 기후변화, 전세계적 감염병 대유행과 경제 위기 등에 대한 대응을 해 왔다고 밝히고 아동 빈곤과 복지 지원 분야에서 진전을 이룬 것이 "자랑스럽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아던 총리는 사임 이유가 정치 상황과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가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노동당이 이길 수 있고 이길 것이라 믿기 때문에 떠나는 것"이라며 "우리는 올해와 향후 3년 간의 도전을 위한 새 책임자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엄격한 코로나19 방역 조치와 높은 물가상승률 등으로 노동당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달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노동당 지지율은 33%를 기록해 국민당(38%)에 뒤처졌을 뿐 아니라 2017년 총선 승리 뒤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다만 각 당 총리 후보군 중 선호하는 총리로는 여전히 아던 총리가 1위(29%)를 기록했다.
코로나19 방역 조치에 항의하는 백신 반대 음모론자들을 중심으로 아던 총리 개인을 향한 암살·강간 위협을 담은 온라인 폭력 또한 2021~2022년 크게 늘었고 지난해 아던 총리가 탄 차량을 백신 반대 시위대가 차량으로 뒤쫓으며 위협하는 일까지 일어났다. 아던 총리는 그러나 직업에 관련한 위협이 커지는 것이 사임의 이유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정치에서 직면하는 역경이 떠나는 이유라는 인상을 남기고 싶지 않다. 사람이기 때문에 영향은 있지만 그게 내 결정의 근본 이유는 아니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날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아던 총리는 향후 정치적 계획은 세운 바 없고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겠다고 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그간 "가장 큰 희생"을 감내한 동거 중인 연인 클라크 게이포드와 재임 중 낳은 딸에게 감사를 표하며 딸을 향해 "올해 첫 등교 때 엄마가 함께 갈 것을 고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게이포드를 향해서는 "이제 결혼식을 올리자"고 말하기도 했다. 아던 총리와 게이포드는 지난해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었지만 오미크론 변이 확산 탓에 미뤄졌다.
이날 총리의 사임 발표는 너무나 전격적으로 이뤄져 기자들은 물론 대다수 노동당 의원들도 크게 당황했다고 뉴질랜드 매체 <뉴스룸>은 전했다. 매체는 "18일 오후 아던 총리에게 던질 다가올 총선에 대한 질문을 한아름 안고 회견장에 모인 기자들은 30분 뒤 아던 총리의 충격적 사임을 생중계하거나 (관련 질문을 위해) 노동당 의원들을 추격하고 있었다"며 "아던 총리의 보좌관조차 이 소식을 17일에야 들었고 많은 당 지도부도 대중에 공개되기 몇 시간 전에야 이를 알았다"고 설명했다. 아던 총리는 회견을 통해 이날 아침 데임 신디 키로 뉴질랜드 총독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사임이 전격적이었던만큼 후임을 찾기 위한 당 내 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뉴질랜드 매체 <스터프>는 그랜트 로버트슨 부총리, 켈빈 데이비스 노동당 부대표 등 주요 인사들이 당대표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새 총리는 오는 10월 총선까지 임기를 수행한다.
2017년 37살의 나이로 세계 최연소 여성 총리에 오른 아던 총리는 2020년 총선에서도 압승하며 노동당을 이끌었다. 아던 총리는 51명이 사망한 2019년 3월 크라이스트처치 이슬람 사원 총격 테러 당시 총격범이 "악명을 떨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며 공개적으로 이름을 언급하는 것을 거부하고 곧바로 반자동 무기 금지법을 내 놓는 등 단호한 대처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히잡을 쓴 채 무슬림 유족들을 위로하는 모습도 이목을 끌었다. 그러나 코로나19 대유행 뒤 엄격한 봉쇄 정책으로 피해를 줄이는 데는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이로 인한 불만이 커지고 인플레이션을 겪으며 점차 국내 지지를 잃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던 총리는 재임 중 출산하고 아이를 데리고 국제회의장에 나타나며 출산과 돌봄은 아내에게 맡기고 고강도 노동에 전념하는 남성 중심적 일 문화에 균열을 내는 모습을 보여 주목을 받기도 했다. 2017년 10월 노동당 대표로 당선되자마자 출산 계획에 대한 질문에 직면한 그는 "2017년에 직장에서 여성이 그런 질문에 답하도록 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며 일침을 놨다. 그는 총리 취임 뒤 8개월만에 출산을 하고 6주 간 출산휴가를 갖기도 했다. 2018년 9월에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UN) 총회에 모유 수유를 이유로 태어난 지 3달 된 딸을 데려와 화제가 됐다. 아이를 돌보기 위해 게이포드도 이 출장에 함께했고 아던은 게이포드의 교통비 및 체류비용은 자비로 부담했다고 밝혔다. 아던 총리는 지난해 11월엔 산나 마린(37) 핀란드 총리와의 만남이 나이대가 비슷한 여성이어서 이뤄진 것이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맞닥뜨렸다. 그는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과 존 키 뉴질랜드 전 총리가 나이가 비슷해 만났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을지 궁금하다”고 일축했다.
[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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