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지피티
[크리틱]
[크리틱] 김영준 | 전 열린책들 편집이사
지난달에는 챗지피티(chatGPT)-3가 단연 화제였다. 미 샌프란시스코의 인공지능 스타트업 ‘오픈에이아이(AI)’가 공개한 이 프로그램은 “눈 오는 날에는 어떤 신발이 좋아?” 같은 물음에서부터 “이런 결과가 나오게 코딩해줘” “제2차 세계대전의 원인을 분석해 봐” 등의 질문에 1초 만에 답을 준다. 유명인의 추모사라든지 논문 초록을 써달라는 요구에도 꾸물대지 않고 응해주는 것은 물론이다. 화이트칼라 노동을 기계가 대신해 주는 미래가 갑자기 우리에게 맛보기로 제공된 것이다. 1초 만에 끝나는 것을 노동이라고 부르게 될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사람들의 의견은 대체로 “약간 아쉬운 부분은 있지만 이걸 기계가 썼다니 놀라울 따름”으로 수렴된다. 필자도 시험해 보았는데, 이공계 분야에 비해 문과 쪽은 약한지 엉터리 답을 내놓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건 사소한 문제로 보였다. 그 이름이 가리키듯 챗지피티는 결국 대화용 프로그램인데, 중요한 건 이미 말을 할 줄 안다는 것이다. 부족한 지식도 있겠지만 그건 나중에 더 공부하면 될 일이다. 잘 모르는 게 분명한 내용을 신중한 어조로 중언부언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회사원 같아 보여서 묘한 감회를 불러일으켰다.
우리는 인공지능의 아버지 앨런 튜링(1912~1954)이 “기계가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어려운 문제를 “사람이 이 기계를 사람으로 착각할 수 있는가?”라는 판별 가능한 테스트로 바꾸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대화하면서 기계가 기계인지 사람이 못 알아차리는 지경이 되면, 그 기계는 지능이 있다고 가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챗지피티에 대한 여러 논평이 나왔지만 이것이 튜링 테스트를 통과할지 귀추가 주목된다는 식으로 말한 사람은 별로 못 봤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이미 그 정도는 높은 허들로 보이지 않기 때문 아닐까. 체호프의 단편 <문학 교사>(1894)에는 세상 사람이 다 아는 것밖에 말할 줄 모르는 인물이 나온다. “예, 멋진 날씨로군요. 여름은 겨울과 다르지요. 겨울에는 난로를 때야 하지만, 여름에는 난로가 없어도 따뜻하답니다.” 튜링 테스트를 한다면 기계로 판정받을 것은 이쪽이지, 챗지피티가 아니다.
그럼 이 기계가 문학작품도 쓸 수 있는가? 자연스러운 질문인데, 이번에도 튜링의 모범에 따라 질문을 바꿔야 할 것 같다. “사람이 기계가 쓴 작품에 감동받을 수 있는가?”로 말이다. 기계가 작품을 쓸 수 있는가는 문제가 아니다. 이미 쓰고 있다. 방금 챗지피티는 필자의 요구에 따라 <겨울>이란 제목의 정형시를 한편 써줬다. 각운을 맞춘 5연 20행의 이 시는 이렇게 끝난다. “겨울의 아름다움은 지속되지 않을 것이나/ 우리들 마음속에선 영원하리라.” 나는 이걸 보고 웃기는 했지만 감명을 받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기계의 문학성에 깜짝 놀랄 날이 안 온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시기가 문제일 뿐이다.
얼마 전 튜링의 전기를 읽다가, 말년에 그가 개인적으로 겪은 곤란한 사건들을 단편소설로 정리하고 싶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1950년대 초반인데, 그때는 기계가 소설을 쓴다는 설정의 에스에프(SF) 소설도 나오고 있을 때다. 나는 이 불행한 인간이 죽기 전 자신의 이야기를 기계가 대신 쓰게 하는 상상을 해봤을지 궁금해졌다. 이 경우 질문은 “사람이 기계를 시켜 작품을 쓰는 데 만족할 수 있는가?”일 것이고, 이에 답하기는 비교적 쉽다고 생각된다. “만족할 수 없다.” 아마 우리는 결국 기계가 쓴 신춘문예 당선작을 보게 될 것이고, 사람이 쓰는 건 기계 수준에 못 미친다고 생각하게 될지 모른다. 그러나 그 뒤에도, 자신의 경험을 문학의 언어로 재발견하려는 욕구는 “우리들 마음속에 영원할” 가능성이 있다. 챗지피티의 시 <겨울>을 인용하자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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