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아, 당론을 내놓아라

한겨레 2023. 1. 1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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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국회 본회의장. <한겨레> 자료사진

[세상읽기] 서복경 | 더가능연구소 대표

내년 4월 국회의원 선거를 하려면 올해 4월10일까지 국회의원 선거구 경계를 정해야 한다. 공직선거법에 따른 일정이다. 선거구 구획을 정하려면, 그 전에 어떤 방법으로 몇명의 국회의원을 뽑을지 먼저 정해야 한다. 그래서 요즘 국회 안팎이 선거법 개정 논의로 바쁘다. 벌써 13개의 선거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돼 있고, 1월17일에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국회에 선거법 개정 의견서를 제출했다. 19일에는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주최 선거법 개정 전문가 공청회도 있었다. 18일에는 전국의 650여개 시민단체 연합 기구들이 선거제도 개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했고, 관련 전문가들은 언론 지면이나 토론회를 통해 선거법 개정 의견을 다양하게 내놓고 있다. 연초에 대통령과 국회의장도 선거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런데 정작 국회 의석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제1, 2당은 말이 없다. 결국 두 정당 소속 의원들이 다음 선거 방법을 정할 것 아닌가. 그런데 당의 공식 의견을 정하려는 어떤 움직임도 눈에 띄지 않는다. 이 안건으로 의원총회를 하지도 않고 대의원들의 회의나 당원들의 의견을 묻는 절차도 없다. 외부 전문가들이나 시민들이 참여하는 논의기구를 꾸려서 결정권을 위임한 것도 아니다. 4월10일까지 선거구를 구획하려면 2월에는 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돼야 한다. 그래야 선거구획정위원회가 한달이라도 활동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결정권을 손에 쥐고 있는 두 당은 세상 느긋해 보인다. 어떻게 하겠다는 것일까?

두 당 소속 의원들이 각각 여러개의 선거법 개정안을 냈지만, 그 어느 것도 두 당의 공식 의견으로 확정된 바 없다. 2022년 3월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는 선거법 관련 공약을 제시하지 않았다. 연초에 대통령이 언급했던 중대선거구제안이 집권당의 공식 입장인가? 그렇다면 그 중대선거구제가 대체 무슨 내용인지 밝혀야 하는데, 가타부타 말이 없다. 중선거구제와 대선거구제는 ‘중대선거구제’로 묶일 수 없는, 전혀 다른 제도다. 한 선거구에서 몇명을 어떻게 뽑겠다는 것인지 밝혀야 한다. 혹은 그건 대통령 생각이고 집권당의 당론은 다르다면, 그것을 내놓아야 한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지난 대선에서 ‘비례대표 확대, 위성정당 금지’를 공약했는데 이게 지금 더불어민주당 당론인 건가? 당론이라면 다양한 방법 가운데 어떤 방법으로 비례대표를 확대하겠다는 것인지 밝혀야 한다.

혹은 소속 의원들 입장이 모두 달라서 당의 공식 의견을 정하지 않겠다면, 그것조차 밝혀야 한다. 그리고 당론이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선거법 개정에 임할 것인지를 밝혀야 한다. ‘정개특위에서 안이 결정되면 따르겠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정개특위에서 안을 만드는 것조차 두 당 소속 의원들이기 때문이다. 두 당 소속 정개특위 위원들에게 결정의 전권을 주지 않는 한, 위원들은 자기 당 입장이 정해질 때까지 눈치를 보며 시간만 끌 수밖에 없다. 당론을 정하지 않겠다면, 정당 내부자와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한 기구를 꾸려 결정권을 위임할 수도 있고, 당내 선거 방식처럼 선거인단을 모집해서 선거법 개정안의 결정을 투표에 맡겨볼 수도 있겠다.

그게 무엇이든 두 당이 개별 의원들의 입장이 아닌 정당으로서 선거법 개정과 관련해 어떤 입장인지 공표해야 한다. 그래야 선거법 개정 논의가 출발할 수 있다. 두 당이 집단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를 밝히지 않는 한, 현재 국회를 둘러싼 모든 논의는 변죽을 울리는 것일 수밖에 없다. ‘의원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해서’ ‘선거제도가 너무 어려워서’ ‘먼저 안을 내는 당이 먼저 시민들의 항의를 받기 때문에’ 같은 변명이 통할 문제가 아니다. 집권당과 제1야당이다. 운영 경비 대부분을 국고보조금으로 충당하고 있고 선거 때는 두배로 보조금을 받는 정당이다. 시민들이 세금으로 당신들의 조직을 유지해주는 이유는, 이런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에 관해 먼저 고민해서 안을 내놓는 일을 맡겼기 때문이다.

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밝히지도 않고 그저 시간만 보내는 건 명백한 직무유기다. 시민들은 당신들이 지난 선거 때 했던 일을 알고 있다. 이번에도 뭉개고 있다가 막판에 가서 서로 핑계를 대며 ‘위성정당 창당’이라는 해괴한 짓을 또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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