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수채화를 그리듯, 마음에 번지는 건반 선율

2023. 1. 19.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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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은 '자연스러움'이 우선
듣는이가 난해하면 실패한 음악
소나타 + 환상곡 다른 장르 융합
한폭의 그림, 하나의 연주로 완성
김수연은 2005년 금호영재콘서트로 데뷔했다.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에서 수학했으며, 석사 과정을 마쳤다. 2020년 잘츠부르크 모차르트 콩쿠르 준우승, 2021년 몬트리올 콩쿠르 동양인 피아니스트 최초 우승을 달성했다.
2023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 김수연

월간객석과 함께하는 문화마당 피아니스트 김수연

김수연은 2013년 모차르테움에 합격한 이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거주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와의 인연을 설명하는 김수연은 현지에서 누구를 만났고, 어느 학교에 합격했는지 이야기를 끝내자, 곧바로 자신이 눈으로 포착한 순간들에 대해서 풀어냈다. 2013년 모차르테움 입학시험에 합격한 직후 홀로 고도 2천 미터의 운터스베르크에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 날, 하얀 구름 속 한 군데 뚫린 구멍으로 내려다보이는 푸른 시내 전경은 그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지 않은 광경이었다. 인연을 시각적 장관으로 말하는 그를 보니, 음악과 그림을 연결하는 발상을 이해할 수 있었다. 김수연은 올해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로 선정되어 다섯 개의 공연 시리즈 '화음(畵音): 그림과 음악'을 선보인다.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 제도는 국내 여러 젊은 연주자에게 기획력을 요구한다. 상주음악가에게는 1년간 다섯 번의 공연이 주어지는데, 각 공연은 하나의 주제 아래 묶여야 하기 때문이다. 2021년 몬트리올 콩쿠르 우승 후 주위의 시선과 기대를 끌어 모은 김수연의 2023년 청사진을 함께 들여다보았다.

-올해의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가 된 것을 축하합니다! 소감이 궁금해요.

"참 영광이고 감사한 자리죠! 지난여름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공연을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주음악가 제안을 받았어요. 그 명칭이 여느 공연과는 다른 새로운 도전처럼 다가왔고, 많은 배움의 기회가 될 거라는 것, 그리고 동시에 국내 관객 분들을 자주 뵐 자리라는 것을 알았죠. 그게 큰 의미를 줬어요.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의 시구처럼 '오래 보는' 기쁨을 알게 되는 거죠."

-상주음악가에게는 1년에 다섯 번의 공연 기회가 주어지죠. 다섯 공연의 프로그램을 한 번에 구성하는 건 상당히 어려웠겠어요.

"방대한 가능성과 자유 앞에서 고민하다가, 결국은 제 마음이 정한 작품으로 먼저 추렸습니다. 그 중심으로 서로 어울리는 작품과 원하는 주제를 같이 모아봤어요. 결국은 저라는 사람이 주체가 되어, 저의 이야기를 주목하게 되더라고요. '김수연' 그대로의 솔직한 음악을 들려드릴 예정입니다."

-다섯 무대를 관통하는 주제는 '화음: 그림과 음악'입니다. 이에 맞추어 각 공연의 이름은 '스케치' '블렌딩' '명암' '필리아' '콜라주 파티'로 그림 기법과 연관된 단어예요. 공연의 내용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음악이 주는 영감을 제한하지 않으면서도 직관적인 전달력을 가진 게 무엇인지 찾다가 그림을 떠올렸습니다. '스케치'(1.5)에서는 말 그대로 밑그림처럼 저의 성장 과정을 받쳐준 음악을 골랐어요. '블렌딩'(4.27)에는 소나타와 환상곡을 연주하는데, 서로 다른 색채를 가진 두 장르가 만나서 섞인다는 의미가 담겨 있죠. '명암'(8.31)은 테너 김세일 선생님과 함께할 연주에서 시와 음악이 어우러져 표현될 빛과 어둠을 뜻해요. '필리아'(9.7)는 사실 그림보다는 저에게 너무나 각별한 모차르트를 위한 단어입니다. '나와 동등하게 너를 아끼고 사랑한다'라는 의미가 그의 성정에 정말 어울리지 않나요? 마지막으로 '콜라주 파티'(12.7)는 다넬 콰르텟(마크 다넬·질 밀레(바이올린), 블라드 보그다나스(비올라), 요반 마르코비치(첼로))과 만들어낼 입체감·생동감 등을 표현해요."

-2021년 몬트리올 콩쿠르 영상에서 존 버지(1961~)의 작품을 빼어나게 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런데 이번 시리즈에는 현대작품을 선택하지 않았네요. 이유가 있을까요?

"넓은 다양성에 중점을 둘지, 아니면 하나의 주제를 집중적으로 조명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후자의 방법을 택했어요. 특히 제가 보다 가까이 듣고 배워 온 여러 오스트리아 작곡가의 음악을 무대로 전달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거든요.

18세기 고전시대부터 19세기 후기 낭만시대까지의 확고한 음악 세계를 가진 작곡가를 골랐죠. 그러나 지나친 단조로움을 피하고자 바로크 시대인 바흐와 20세기의 쇼스타코비치를 포함하기도 했습니다. 총 13명의 작곡가를 만나보실 수 있어요."

-다섯 공연 중 실내악 공연들을 특히 기대 중이라고요.

"혼자가 익숙한 피아니스트에게 다른 음악가와 연주한다는 건 정말 설레는 일이에요. 게다가 아직 한국에서는 정식으로 실내악 공연을 올린 적이 없어 이번 가곡 리사이틀과 피아노 5중주 리사이틀이 더욱 기쁘게 다가옵니다. 가곡 리사이틀에서는 가곡을 다작한 볼프와 R. 슈트라우스의 작품으로 시구와 음악의 다채로움을 느끼실 수 있을 거에요. 다넬 콰르텟과의 공연은 그들의 정신이 쇼스타코비치에 많이 담겨있다고 들어서 기대됩니다."

◇콩쿠르와 상주음악가, 그리고 이후

-2021년 몬트리올 콩쿠르 우승을 통해 주목받았던 지난 2년은 정말로 바빠 보였습니다. 작년 9월에는 콩쿠르가 온라인으로 진행돼 함께하지 못했던 몬트리올 심포니와의 데뷔 연주도 있었습니다. 오프라인으로 만난 현장은 어땠나요?

"온라인으로 이루어져 겪은 안타까움과 고생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겠지만, 그 아쉬움은 모두 날려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지휘자 오스모 벤스케와 이루어진 이틀 밤의 몬트리올 심포니 무대는 훌륭한 연주자들 덕에 귀가 즐거운 연주가 가능했어요. 콩쿠르 이후 1년을 기다려주신 많은 분의 따뜻한 환대와 축하, 응원까지 몸소 전해 받고 왔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더 이상 콩쿠르를 나가지 않겠다고 결심했는데요.

"콩쿠르는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에너지원 역할을 해줬어요. 물론 그 안에 달고 쓴 순간은 늘 교차했습니다. 그 덕에 쌓인 도전이 지금의 저를 더 굳건히 만들어줬죠. 그러나 한편으론 콩쿠르가 족쇄처럼 자리하기도 했습니다. 상당히 비음악적인 환경 속에서 경쟁하며 자유를 갈망해야 하죠. 저는 운이 좋아 콩쿠르를 그만하겠다는 결정을 내릴 수 있었고, 그 결정 이후 제 음악이 훨씬 자유로울 수 있다는 걸 체감했어요."

-캐나다와 북미 투어 일정 속에서 음반 작업도 마쳤습니다. 올해 스타인웨이 레이블로 발매될 예정인데, 어떤 작품을 녹음했나요?

"모차르트 작품들을 연주했습니다. 소나타와 변주곡 등이 담겨있어요. 녹음 작업을 버지니아에 있는 작고 오래된 교회 속 스튜디오에서 했는데, 전원적인 풍경에 울림이 좋은 높은 천장, 스타인웨이 피아노의 청명한 음색이 모차르트랑 잘 맞았어요. 아, 마지막엔 제가 큰 심혈을 기울인 아름다운 보너스 트랙이 있으니 기대해주세요."

-마지막으로 자신의 장점과 꿈에 대해서 말해주세요!

"제가 지금껏 제일 많이 들었던 수식어는 '자연스러움'이에요. 어떤 곡을 연주해도, 심지어 난해한 현대음악을 연주할 때도 그 안에 자연스러울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내게 돼요. 저는 아무리 어렵고 난해한 음악도 결국 듣는 사람에 의해 소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전달자로서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걸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오랜 꿈이었던 '무대'가 노년까지 이어져, 발전하는 저의 삶이 보이는 연주를 하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네요. 그러려면 제 인생을 잘 살아야겠죠!"

글=월간객석 이의정 기자·사진=금호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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