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석 칼럼] 조선 예송논쟁이 현대 정치에 주는 교훈
조선 역사에서 가장 안타까운 부분은 당쟁사이고 특히 예송논쟁으로 일컬어지는 17세기 당쟁에서는 분노를 참기 어려워진다. 국가 안보나 민생 문제도 아닌 장례의식에 불과한 의례 문제로 당파에 소속된 관료와 학자가 온통 달려들어 피튀기게 싸운다는 것은 도대체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이다.
예송논쟁은 북벌을 주도했던 효종 임금의 사후에 시작되어 장장 15년을 끈 치열한 당쟁이었다. 이 싸움의 정치적 파장이 워낙 커 집권당파가 상대당 정적들을 모두 퇴출하고 심지어 죽이는 비극을 초래한 선례를 만들었다.
이 예송논쟁은 효종의 국상에서 장자에 대한 예로서 3년복을 입느냐, 또는 장자가 아닌 예로서 1년복을 입느냐는 문제로 시작되었다. 효종은 인조의 둘째 아들인데 장자 소현세자가 급사하여 세자자리를 물려받아 왕이 되었는데 이 경우 장자 지위를 승계한 것이냐, 아니면 왕위에 올랐지만 여전히 차자이니 적장자로 인정할 수는 없는 것이냐에 따라 그 유교 예법이 달라지는 것이다.
당시 집권세력인 서인은 주자학 원리원칙에 집착하여 내심 효종을 적장자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터라 '조선경국전의 기준'이라며 1년복이 적합하다고 주장했다. 즉 장자, 차자를 구분하지 않는 조선 기준을 적용하자고 주장함으로써 효종을 장자로 인정하지 않고 넘어가는 꼼수를 부린 것이고 현종은 마지못해 이를 수용해야 했다.
그런데 15년후 현종의 어머니(효종비)가 사망하자 다시 예법이 논란되었는데 이번에는 집권당인 서인들이 '중국의 고례기준'이라며 9개월복(적장자비의 경우 1년복)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야당인 남인세력이 부당하다고 문제를 제기하여 여당인 서인세력과 치열한 2차 예송논쟁을 벌였다. 현직 조정관료는 말할 것도 없고 재야의 산림학자, 성균관 학생과 유생 등 수천명씩 동원되어 자기 당파의 의견을 수호하며 상대 당파의 주장을 반박했다.
예송논쟁의 핵심 논점은 두 가지이다. 첫째, 조선 왕실의 국상에 중국과 조선의 예법 중 어떤 기준을 적용하느냐의 문제, 둘째, 기준의 일관성 문제이다. 치열한 논쟁 끝에 당시 현종이 "국가의 예법 기준을 당파의 입장에 따라 임의로 바꾸는 것은 부당하다"고 결단했다.
애초 조선의 예법 기준을 따르기로 했으면 15년 후에도 조선의 기준을 적용해야지 당파의 이해에 따라 임의로 바꿔 이번에는 중국의 기준을 따르자는 것은 일관성이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서인들이 과거 조선 기준을 적용한 것은 효종의 장자 지위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의도였다는 것이 드러나자 현종은 더욱 기준변경에 분노했다. 결국 집권당인 서인세력이 대거 쫓겨나고 남인세력이 집권당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이 와중에 현종이 급사하여 숙종이 즉위하면서도 이 논란은 계속되었다. 숙종은 서인과 남인 세력 간의 지루한 예법 논쟁을 지켜보다가 따끔하게 반박한다. "그대들은 당파의 스승만 알고 임금은 알지 못하는가?" 즉위 몇 달되지 않은 14살 숙종의 눈에도 당파의 영수 의견만 무조건 따르고 임금의 입장이나 의견은 무시하는 조정 관료와 유학자들의 행태가 매우 부당했던 것이다.
당시 서인세력들은 영수 송시열의 논리만 옹호하는데 급급하여 임금의 의견은 개의치 않는 행태를 보였고, 결국 분노한 숙종은 송시열을 비롯한 서인세력을 대거 내치고 남인세력을 등용했다.
민주제로 바뀐 지금의 정치행태도 그때와 다를바 없다. 당대표의 의견만 중시하고 국가의 정책과제나 국민의 의견은 개의하지 않는 정치인들의 행태는 물론이고, 입장이 불리해지면 전에 주장했던 기준을 갑자기 바꾸는 행태가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고 있다. 조선에서는 이런 정치행태를 현명한 임금이 적발해 집권당이 몰락하며 정권이 바뀌기도 했다.
지금은 국민이 그런 선택과 결단을 내려야 한다. 거짓말하는 정치는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된다. 미국의 언론에서는 트럼프 대통령 재임시 거짓말 체크 서비스를 계속했는데 4년 재임기간 3만573건, 하루 평균 21건의 거짓말이 기록되었다. 미국 언론인, 학자들은 이런 거짓말을 계속 체크하여 국민에게 알리는 것이 언론의 사명이라는 책임감을 갖고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한국에서도 언론과 지식인들이 정치인의 거짓말을 체크하고 이를 밝혀 거짓말을 못하는 사회를 만들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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