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공간 혁명이 시작됐다
동서양의 대표적 게임 가운데 하나가 바둑과 체스다. 바둑은 공간으로 이뤄진 집을 짓는 게임이다. 반면 체스는 상대편 말들을 없애고 왕을 죽여야 이기는 게임이다. 바둑은 공간을 만들어 나가는 상대적 게임인 반면 체스는 상대편을 죽이는 절대적 게임이다. 이는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에서 기인하며, 건축 양식에도 반영된다. 피라미드, 콜로세움, 성당 등 서양 건축물은 주변 공간을 아우르기보다 압도한다. 반면에 동양 건축물은 건물과 담장·마당 같은 공간을 만들어서 주변과 조화를 이룬다. 초연결·초지능·초융합 시대에 진입한 우리나라의 미래가 밝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 경제는 공간 혁명을 이루며 G7 반열에 올랐다. 경제가 본격적으로 성장한 1960~1970년대에 정부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2~1966)을 추진했다. 국토와 교통, 도시·주택·환경이 밀접하게 연결된 계획이었다. 수도권과 남동 임해권 중심으로 산업단지를 건설하고, 철도·도로와 교통·항만을 구축해서 공간을 연결했다. 그 결과 경부고속도로는 '한강의 기적'을 일궜다. 뒤이어 1990~2000년대 정부는 초고속 인터넷망을 구축해서 대한민국을 IT 강국으로 위상을 끌어올리고 전국 도시를 최첨단 도시로 거듭나게 했다. 도로·철도, 인터넷 통신망 등을 통해 공간을 효율적으로 연결했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공간 혁명 시대다.
100년 전 조선시대 사람은 평생 마을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현재 대한민국 국민은 더 넓은 공간을 경험하며 산다. 우리가 사는 집은 최소한의 규모지만 다양한 카페 공간을 소비하고, 해외여행도 다닌다. 이러한 공간 소비는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바뀌었다.
디지털 가상공간에 눈을 뜬 것이다.
현실과 똑같이 구현된 가상공간은 페이스북·인스타그램과 달리 시간적 한계도 넘는다. 실시간 소통이 가능하며 아바타를 통해 현실과 똑같은 일상생활을 함으로써 새로운 공간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디지털 신대륙을 발견한 이들은 메타(페이스북 전신), 아마존, 구글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가상공간은 아직 공공재 성격이 강하다. 정부의 광케이블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거 정부가 경부고속도로, 초고속 인터넷망과 같은 유형의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에 주력해서 산업화·첨단화를 이룬 것처럼 이제는 무형의 SOC인 공간정보산업 육성에 가속 페달을 밟아야 할 때다. 디지털 SOC로서 공간정보는 성장 잠재력이 이미 높은 단계에 있다. 공간정보는 데이터의 80%와 연계되어 있으며, 자율주행·도심항공교통(UAM)·스마트시티 등 신산업의 핵심 인프라로 대두되고 있다.
LX한국국토정보공사는 국토교통부와 국토·도시공간을 입체 공간정보로 새롭게 설계하고 있다. '디지털 트윈국토'가 대표적인 예다. 현실과 실시간 연동되는 가상국토를 구축해서 데이터의 시각화, 모의실험, 분석을 통해 국토·도시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더욱이 중대형 SOC의 노후화와 기후 위기로 운영상 어려움이 생기면서 공간정보 기반의 스마트 관리체계가 요구되고 있다. 과거 정부가 교통시설특별회계법을 제정해서 SOC의 확충·운영·관리를 한 것처럼 이제는 공간정보에 대한 적극적 투자와 관심이 뒤따라야 한다. 이를 토대로 LX공사는 교통의 지하화, 국토의 입체화, 도로정보의 통합·연계, K-공간정보기술이 결합된 원팀 코리아로 해외시장 확대를 적극 지원하고자 한다.
바둑은 '신의 한수'로 승부를 결정한다. 자신이 쥔 돌을 어디에 먼저 두느냐가 중요하다. 바둑의 고수는 중요한 적재적소에 정확한 순서대로 돌을 둔다. 그게 승리하는 법칙이다.
복합 위기가 가중되고 있는 지금 디지털트윈, 메타버스 등 미래 전략기술에 대한 선제적 투자와 과감한 규제 개혁이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 디지털 SOC인 공간정보산업을 육성하고 디지털트윈·메타버스를 활용한 가상영토에 선제 투자·개발하는 일이야말로 국토·도시공간의 혁명적 변화를 일으키는 '신의 한 수'가 될 것이다. 이를 토대로 LX공사는 공공 서비스 혁신과 디지털 플랫폼 정부 완성을 위한 교두보 역할에 총력을 기울일 방침이다.
김정렬 LX한국국토정보공사 사장 bestself@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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