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와 함께 커온 아이들… 무섭고, 외롭고, 미안해하며 자란 코로나19 3년

이유진·김송이 기자 2023. 1. 19.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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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들이 19일 서울 마포구 도토리 마을 방과후에서 코로나 발생 3주년 동안 ‘마스크와 코로나’가 어땠는지 이야기한 후 활동으로 자신 혹은 친구의 마스크 안 쓴 얼굴을 그린 그림을 들고 있다. 한수빈 기자

“우리 코로나19에 대해서 얘기해볼까. 우리 마스크 쓴 지 얼마나 된 지 아는 사람?”

19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성미산마을에 자리 잡은 ‘도토리 마을 방과후’ 교사 자두(48·본명 한은혜)가 질문을 던지자 19명의 아이들이 일제히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접어 남은 손가락 세 개를 들어보였다. “지금 4학년 형님들은 학교 갈 때 마스크 쓰지 않았을 때가 있었대.” 자두가 말하자 아이들이 사이에서 “아!”하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자두가 다시 물었다. “학교에서 어때? 요즘 신나게 놀아?” 아이들이 서로 답하겠다고 소리쳤다. “절대 아니에요. 시간이 너무 짧아요.” “우린 (노는 시간이) 10분이야.” “무슨 소리야. 우린 5분이야.” 소리가 겹겹이 쌓였다.

2020년 1월20일 한국에서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발생했다. 2019년 12월 중순, 중국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폐렴 증상을 보이는 환자가 발생했다는 보도가 나온 지 약 한 달 만이었다.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던’ 코로나19 팬데믹은 무수히 많은 것들을 바꿔놨다. 어린이의 세계도 다르지 않았다. 학교는 문을 닫았고, 생의 절반 가까운 시간을 마스크와 지낸 아이들은 ‘마스크 없는 친구 얼굴’을 떠올리기 어려운 세대가 됐다. 경향신문은 코로나19 국내 발생 3주년을 맞아 초등학교 1학년생 9명과 2학년생 10명 등 총 19명의 아이들과 ‘마스크와 코로나19’를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우리 아이들은 지난 3년을 어떻게 지나왔고, 훗날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코로나 팬데믹 3년, 아이들은 무엇을 겪었나
초등학생들이 19일 서울 마포구 도토리 마을 방과후에서 코로나 발생 3년 동안 ‘마스크와 코로나’가 자신에게 어땠는지 이야기한 후 자신 혹은 친구의 마스크 안 쓴 얼굴을 그려 보는 활동을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각자의 경험에 따라 코로나19에 대한 인식차는 확연했다. 이겸이(9)에게 코로나19는 여전히 무섭고 두려운 존재다. 이겸이는 코로나19를 생각하면 ‘중국’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중국에 외삼촌 가족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확산 초기 이겸이는 뉴스를 보는 엄마의 얘기를 듣고 코로나19로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중국에서 처음 코로나 생겼을 때 삼촌이 걸렸는지 걱정됐어. 외삼촌이나 외숙모가 걸려서 돌아가실까봐.” 코로나19에 확진된 이후엔 공포가 더 커졌다. 너무 아팠기 때문이다. 이겸이는 “유치원에서 마스크 썼을 때 코가 답답해서 잠깐 내리고 있었는데 왜 그랬는지 후회된다”고 했다. 아픈 경험을 또 하게 될까 무서운 이겸이는 당장은 마스크를 벗지 않을 계획이다. “엄마·아빠가 꼭 벗으라고 하지 않는 이상 꼭 쓰고 다닐 것 같아.”

반면 코로나19 확진 당시 크게 아프지 않았던 송현이(8)는 “코로나가 무섭지 않다”고 했다. “엄마가 먼저 걸리고 내가 걸렸는데 별로 안 아팠어. 나는 혼자 있을 수가 없으니까 엄마·아빠가 마스크 쓰고 나를 돌봐줬어.” 송현이는 무서움 대신 ‘외로움’과 ‘미안함’을 많이 느꼈다고 했다. 송현이는 “엄마와 아빠가 코로나에 걸렸을 때 너무 안아주고 싶은데 (격리 때문에) 영상통화밖에 할 수 없어서 속상했다”고 했다. 특히 아빠가 코로나19에 확진됐을 때 미안함이 컸다고 했다. “내가 코로나 걸리고 아빠가 뒤에 걸렸는데 코로나 때문에 여행 못 간다고 아빠한테 화내서 미안했어. 그래서 편지 써서 아빠 있는 방문 밑으로 넣었어.” 송현이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고 했다. ‘아빠, 미안해. 아빠가 아프지만 않으면 나한테 코로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마스크 없이 작게 말해도 되는 세상 왔으면”
초등학생들이 19일 서울 마포구 도토리 마을 방과후에서 코로나 발생 3년 동안 ‘마스크와 코로나’가 자신에게 어땠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코로나19 확산과 함께 마스크 의무화도 3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이날도 아이들은 마스크를 쓴 채 대화를 나눴다. 예성이(9)는 코로나19로 마스크를 쓰게 된 순간을 또렷이 기억했다. “6살때쯤이었는데 놀고 있는데 (엄마가) 미세먼지라고 마스크를 쓰라고 했어. 근데 뉴스를 보니까 코로나라고 하는 거야. 엄마한테 코로나가 뭐냐고 물어봤어.” 로한이(8)도 “원래 미세먼지 있을 때만 마스크를 썼는데, 코로나 때문에 써야 한다고 해서 알겠다고는 했지만 조금 부담스러웠다”고 했다. 연서(8)는 마스크로 인한 불편함을 작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부끄러움 많이 타는 사람은 작게 얘기하고 싶은데, 크게 얘기해야 하니까 뭔가 (말을) 하기가 그랬어.” 상준이(9)는 대뜸 “나는 이게 습관이 돼 버렸는데? 난 집에서 잔다고 하면 마스크 쓰고 잘 수도 있어”라고 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일상의 변화를 경험한 것은 이곳 아이들만이 아니다. 세이브더칠드런과 서울대학교 사회복지연구소가 2021년 7월부터 8월까지 전국 초등학교 5학년 아동 1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지난해 3월 발표한 ‘코로나19 팬데믹과 아동 삶의 질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아이들의 삶 만족도는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발생 이전인 2019년 조사에선 ‘내 인생에 만족한다’는 문항에 10점 만점 중 8.44점이었는데, 코로나 이후 7.09점으로 떨어졌다. 조사에 참여한 아동 57.5%는 ‘코로나19 확산이 심했을 때 학교가 문을 닫았다’고 답했고, 73.9%는 ‘코로나19 때문에 집에 머물러야 하는 날이 많았다’고 했다.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가 해제되고 실내 마스크 착용 해제도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코로나19는 더는 여행, 영화관람 등 여가활동을 즐기는 데 별다른 제약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아이들의 시간은 반 박자 천천히 흘러간다. ‘코로나가 끝나면 무엇을 제일 하고 싶냐’는 질문에 아이들은 어른들이 이미 하고 있는 소소한 것들을 꼽았다. 세온이(8)는 “영화를 보고 싶어”라고 답했고, 지원이(9)는 “마스크 때문에 숨이 차서 못하던 축구를 다시 하고 싶다”고 했다.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아이들도 많았다. 곤충동아리 회원이라는 주원이(9)는 들뜬 목소리로 “동아리 애들이랑 인도네시아 가서 도마뱀을 잡고 싶다”고 했다.

아이들은 코로나19를 겪으면서도 슬픔만을 말하지는 않았다. 연구보고서 설문 참여 아동 65%는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더 오래 잘 수 있다’ 등을 코로나19 이후 나타난 긍정적 변화로 꼽았다. 연구진은 “코로나19로 인한 아동 삶의 변화는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며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아동들은 계속 성장하고 있었다”고 했다.

도토리 마을 방과후 아이들과의 대화도 리듬을 타듯 경쾌하게 요동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마스크를 오래 끼니까 귀도 아프고,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하기 어려워.” 태호(8)가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떨구는 순간 제무(9)가 외쳤다. “잠깐! 나 궁금한 게 있는데, 왜 다 슬픈 목소리로 말해?” 아이들 사이에서 터져 나온 웃음소리가 복도까지 울려 퍼졌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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