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보복 할라"… 건설사 10곳 중 4곳 불법행위 신고 못해
정부가 불법행위를 일삼는 건설노조와의 전쟁을 선포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건설업체들은 노조의 보복이 두려워 신고를 못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조사 결과 상당수 건설업체들은 보복을 당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더라도 신고를 하지 않겠다고 응답하기도 했다. 이에 16개 건설업 관련 협회들로 구성된 대한건설단체총연합회는 '적극적인 신고로 정부의 노력에 협조할 것'이라며 결의를 다졌다.
19일 매일경제가 입수한 대한건설협회 자료에 따르면 협회는 지난 6~9일 전체 회원사들을 대상으로 건설노조 불법행위 신고 관련 긴급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 결과, 응답한 201개 종합건설업체 중 40%에 달하는 80개 업체는 신고 의향을 묻는 질문에 '신고하지 않겠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고하지 않겠다고 한 이유는 '노출로 인한 보복 두려움'이라고 응답한 업체가 58곳(41%)으로 가장 많았다. 신고해봤자 더 큰 보복을 당하기 때문에 신고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실제 신고에 따른 보복행위는 건설현장에서 예삿일처럼 이뤄지고 있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노조의 불법행위를 건설사들이 신고할 경우 공사 방해 등의 형태로 건설사들을 더욱 압박하고 있다. 수도권 한 건설업체 대표는 "신고를 하면 우리 업체가 시공을 맡고 있는 다른 공사현장에 가서 압박을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며 "현장에서 공사가 이뤄지지 못하도록 자동차 100여 대를 입구에 세워놓고 차량과 인부들의 출입을 막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건설업체 관계자는 "외국인 노동자 채용이나 사소한 안전수칙 위반 행위들을 보복 신고하는 등 공사를 방해한다"고 말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역시 이날 "민간 건설사들이 건설노조의 불법행위에 속절없이 끌려가고 보복이 두려워 경찰 신고조차 못 했다"며 "이제는 법과 원칙으로 노조의 횡포와 건설사의 자포자기, 솜방망이 처벌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끊어내겠다"고 밝혔다.
신고를 하지 않겠다고 한 또 다른 이유들로는 '실효성 있는 법규제가 없다'(54개 업체·38%), '정부·경찰 등에 대한 불신'(29개 업체·20%), 기타(2개 업체·1%) 등이 있었다. 특히 지난 문재인 정부 시기에는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해도 노조원들의 불법행위를 제지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였다고 업계는 설명한다. 지방의 한 종합건설업체 대표는 "자기 조합 타워크레인 사용을 강요하며 출입구를 봉쇄한 노조원들을 경찰에 신고했더니, '경찰은 노사관계에 개입 못 한다'며 이내 가버리기 일쑤"라고 말했다.
건설업체들은 보복에 대한 두려움으로 신고조차 못 하는 현 상황을 타개하고 정부의 노조 불법행위 척결 의지에 화답하기 위한 결의대회를 18일 가졌다. 이날 행사에 모인 200여 명의 건설업계 관계자들은 '건설노조 불법행위 뿌리뽑자'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이날 대한건설단체총연합회는 성명을 내고 신고의지를 다지기도 했다. 연합회는 "우리 건설업계는 정부의 노력과 대책이 실효성을 거둘 수 있도록 건설노조 불법행위에 대해 눈감지 않고 적극적으로 신고하고 조사에 협조할 것"이라며 "더 이상 건설노조의 횡포에 끌려다니지 않겠다"고 밝혔다.
김상수 대한건설단체총연합회 회장 겸 대한건설협회 회장은 19일 매일경제와의 통화에서 "최근 정부의 강력한 단속, 처벌 의지 등 정부 기조가 바뀌며 신고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업체들이 늘었지만, 여전히 많은 업체들이 건설노조의 폭력적 불법행위를 두려워하며 신고를 주저하고 있다"며 "건설노조 불법행위를 근절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어느 때보다 강한 만큼,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을 기약하기 어렵다. 지금이 바로 골든타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잦은 파업과 불법행위는 결국 분양가 상승, 입주지연, 안전위협 등으로 이어져 그 피해가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게 된다"며 "우리 건설업계는 더 이상 숨지 않고 적극적으로 신고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국토부가 발표한 '건설현장 불법행위 피해사례 실태조사'에 따르면 그간 건설현장에서의 노조 불법행위는 전국 총 1494곳에서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국토부가 지난해 12월 30일부터 지난 13일까지 약 2주간에 걸쳐 12개 건설 분야 유관협회를 통해 진행한 조사 결과다. 이는 국토부 조사에 응한 290개 업체에 국한된 수치로, 전국 8만여 곳 업체 중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보복에 대한 두려움으로 건설업체들이 얼마나 신고를 꺼리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피해액은 1686억원(118개 업체)에 달했다. 이마저도 업체 자체 추산액은 제외하고 계좌 지급내역 등 입증자료를 보유한 업체의 피해액만 집계한 수치다. 국토부는 1개 업체에서 적게는 600만원에서 많게는 50억원까지 피해액이 발생했다고 밝혔으나, 피해액을 제출한 건설업체 수가 극히 일부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보다 더 큰 피해를 본 업체도 상당수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노조의 불법행위로 최소 14일에서 많게는 180일 동안 공사가 진행되지 못한 현장도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원 장관은 "더 이상 공사장이 노조의 무법지대로 방치되지 않도록 민간 건설사들이 신고에 적극 나서달라"며 "익명신고 시 국토부와 건설 분야 유관협회가 수사기관에 의뢰하는 것도 지원하겠다"고 당부했다.
[연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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