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유능한 안전관리자, 형사처벌 두려워 현장 떠나"
1년새 2.9조→5.4조로 늘어
기업들 "안전에 수백억 써도
현장근로자 안전불감증 여전"
지난 1년간 중대재해처벌법을 경험한 국내 기업들은 입법 취지가 무색하게 안전·보건 사고는 오히려 늘었다며 하소연을 쏟아냈다. 기업들이 부랴부랴 최고안전책임자(CSO) 직책까지 신설하며 준비에 만전을 기했지만 근본적 개선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들은 최고경영자(CEO)가 수사·기소 대상이 되면서 경영 부담만 가중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19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내놓은 'K-기업 ESG(환경·책임·투명경영) 보고서'에 따르면 매출액 상위 100대 기업의 환경·안전 분야 투자액은 2021년 기준으로 5조4400억원이다. 2조9000억원이던 2020년과 비교하면 1년 만에 87.6% 증가한 셈이다.
특히 재계는 CEO를 겨냥한 수사가 여전히 부담이 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보고서를 통해 "법 시행 이후 발생한 중대산업재해 211건 중 163건이 수사 중이며 기소된 것이 31건"이라면서 "사례를 분석해보니 적용 대상이 CEO라는 점이 명확해졌다"고 했다. 유일호 대한상의 고용노동정책팀장은 "오히려 중대재해가 늘고 있다"며 "CSO가 선임된 경우에는 CEO 처벌을 면제하고, 모호한 의무 규정도 손봐야 한다"고 주문했다. A그룹 CSO는 매일경제와의 통화에서 "안전·보건에 수백억 원을 투자하고 관리감독을 강화했지만 현장 근로자가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기업뿐 아니라 근로자에게도 의무를 명확히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건설업계에선 안전관리의 질이 떨어지는 역효과까지 낳고 있다. 처벌이 강화되자 유능한 관리자들이 현장소장직을 기피하고 있는 것이다. B건설사 관계자는 "현장소장의 부담이 커지다 보니 기피 직무가 됐다"며 "인센티브를 늘려도 지원자가 없어 경험이 부족한 관리자가 증가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해 건설노조와 화물연대 등의 잇따른 파업이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주장도 나온다. C건설사 관계자는 "지난해 화물연대 파업으로 자재 수급이 늦어지고 건설노조 파업까지 겹쳐 공사가 중단된 현장이 많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현장 특성을 반영해 중대재해법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권혁면 연세대 산업협력단 교수는 "하루하루 부도를 막기 어려운 상황에서 중견·중소기업과 영세 사업장에 안전·보건관리 조직과 체계를 갖추라고 요구하기는 쉽지 않다"며 이들을 대상으로 법 제도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성승훈 기자 / 김유신 기자 / 이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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