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의 창] 대처 수상과 윤석열 대통령

2023. 1. 19.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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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처의 가장 위대한 유산은
상대당인 노동당을 바꾼 것
개혁 성공에 중산층 늘어나자
노동당도 안 변할 수 없었던 것
한국 민주당 지금 갈림길에
키 쥔 것은 어쩌면 尹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1일 노조의 재정 투명성 강화와 부패 척결을 선언하는 모습은 영국의 대처 전 수상을 생각나게 했다. 그녀가 광부노조가 탄광 폐쇄와 인력 감축에 반대하며 벌인 파업에서 승리한 것은 노조위원장의 조합비 횡령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대처 수상처럼 법률가이기도 하지만 등장한 정치적 배경도 닮은꼴이다. 대처가 1979년 영국 최초의 보수당 여성 당수이자 수상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노조 때문이었다. 대처 이전에 집권한 노동당은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지상 최고의 복지국가 이념을 실현하는 데 앞장섰다. 화려한 성공의 이면에는 노조가 당의 중심이 되어 정부를 운영하고 기간산업의 국유화를 추진하면서 일상화된 영국병이라는 대가를 치르고 있었다.

비효율적인 국영기업 운영으로 재정 적자가 전임 노동당 집권 기간 중 연평균 국내총생산(GDP) 대비 3.8%에 달했고, 대처 등장 전 2년간 경제는 역주행했다. 노조는 절망적인 경제 상황 속에서도 파업을 멈추지 않았다. 장례나 쓰레기 처리와 같은 일상적인 사회 기능이 마비되고 파업에 동참하지 않는 동료를 태운 택시기사를 살해하는 사건까지 일어났다. 노조 혐오증이 광범위하게 확산하면서 법의 지배를 강조하는 대처를 등장시켰다.

윤 대통령도 당시 영국만큼은 아니지만 지난 정부의 과도한 노조 편향을 정상화해달라는 기대에서 출범했다. 한국리서치의 2022년 10월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과반수가 노조의 활동과 파업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화물연대 파업에서 법과 원칙을 내세운 정부 대응이 지지를 받은 것도 노조 피로감이 만연해 있다는 증거이다.

윤 대통령이 노동·교육·연금의 3대 개혁 추진을 공식화하고 나선 것도 대처가 영국병 개혁에 매진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방법론도 야당과 대화하고 타협하기보다 대처처럼 원칙대로를 주장해서 국민의 지지를 얻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동력 삼아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고 개혁을 실현하려 할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의도가 성공하려면, 개혁 프로그램이 중장기적 관점에서 필요한 이유와 타당성이 객관적으로 입증되어야 한다. 실업률과 고용률이 완전고용 수준에 가깝고, 노동시간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상위권으로 긴 현실에서 노동 개혁이 좋은 일자리를 늘리고 국민의 복지를 높일 수 있는지 설명되어야 한다. 노동 시장의 이중구조를 해소하려는 노력이 문재인 정부의 '소주성'처럼 중소기업·자영업·소상공인을 옥죌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또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 대책과 함께 추진해야 할 것이다. 윤 대통령의 개혁 환경이 대처 수상과 다른 점은 영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를 유지하느라 힘겨워했고 과도한 평등이 문제시되는 나라였다는 점이다.

반면 우리는 개혁정책이 조금만 엇나가도 "신자유주의의 부활"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사회안전망이 완벽하지 않고 양극화도 외면하기 어렵다. 특히 개혁 추진의 원군이 되어야 할 고령 세대의 빈곤 문제도 심각하다. 영국 복지제도의 기원이 된 베버리지 보고서를 보수당 정부가 준비했다는 점을 참고하는 게 좋겠다.

대처 수상의 위대한 유산은 상대 당인 노동당을 변화시킨 점이다. 토니 블레어가 노조 집권과 국유화라는 노동당의 본질적 강령을 버리고 '제3의 길'을 역설한 것은 대처의 개혁으로 중산층이 대거 등장했기 때문이다. 노조만 바라보는 정당으로 남아 있는 한 집권할 수 없는 한계를 절감한 것이다. 한국의 더불어민주당도 전투적 계급정당이냐, 중도적 대중정당이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키는 윤 대통령이 쥐고 있다.

[최광해 우리금융경영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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