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친·쪽팔리다···북한 ‘남한말 통제’ 법까지 제정
예년처럼 김정은 국무위원장 불참
예산 1.7% 증가···농업·방역 강조
“사투리·외래어 배격” 남한말 경계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에 ‘대남통’
북한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불참한 가운데 최고인민회의를 열어 올해 국가 예산의 60%를 경제·국방 발전에 쓰겠다고 밝혔다. ‘평양문화어보호법’을 채택하는 등 체제 수호를 위한 내부 통제를 더욱 강화했다.
노동신문 등 북한 공식매체들은 지난 17~18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8차 회의가 열렸다고 19일 밝혔다. 최고인민회의는 남한의 국회 격이자 북한 헌법상 최고 주권기관이다. 북한 최고지도부인 김덕훈·리병철·최룡해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 등 당·정·군 주요 간부들이 참석했다.
김 위원장은 회의에 나타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이 지난해 9월 최고인민회의에서 ‘핵무력 법제화’를 선언한 것처럼 이번 회의에서도 대남·대미 메시지를 낼지 주목돼왔다. 지난 1일 신년사 성격의 노동당 전원회의 보고에서 이미 새해 대외전략을 밝혔고, 다음달 8일 북한군 창건일을 앞둔 만큼 불참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통상적인 업무 범위의 의안이 다뤄진 점을 감안할 때 김 위원장이 참석하지 않은 건 이례적이라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2020~2022년에도 그해 첫 최고인민회의에는 불참했다.
올해 국가예산 지출 계획과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내각의 사업 방향이 중점적으로 논의됐다. 고정범 내각 재정상은 회의에서 “올해 국가예산은 나라의 전쟁억제력을 비상히 강화하면서 국가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인민경제 중요부문들에 투자를 집중”하는 목표로 편성했다고 보고했다.
올해 북한 국가예산 총액은 지난해보다 1.7% 늘었다. 전체 예산의 45%를 경제개발과 민생 개선에 쓴다. 김 위원장이 올해 3년 차를 맞는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의 “결정적 담보를 구축”할 것을 강조한 데 따른 것이다.
국방비는 전체 예산의 15.9%로 편성됐다. 비중은 지난해와 같다. 김 위원장이 새해 목표로 공언한 전술핵 다량생산과 고체연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군사정찰위성 발사 등 각종 핵무력 고도화 작업에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 지출 비중이 세계 최고수준으로 평가된다.
전체 예산의 60% 남짓을 경제·국방부문 지출로 채우며 올해 주요 과업을 강조한 셈이다. 농촌 건설과 농업 현대화 예산을 지난해보다 14.7% 늘려 식량난 개선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방역 예산은 계획보다 21.3% 증가한 지난해 수준을 “최우선 보장”한다는 방침이 제시됐다. 지난해 8월 종식을 선언한 코로나19 확산을 여전히 경계하는 상황과 맞물린다.
북한은 지난달 당 전원회의에서 논의된 올해 경제개발 목표를 이번 회의에서 부문별로 일일이 나열했다. 김 위원장의 당 전원회의 보고에서 경제 관련 언급이 전년보다 축소돼 올해 경제 성장도 어려울 것이라는 다수의 관측을 의식한 행보로 해석된다. 통일부 당국자는 “당 전원회의 결정사항 관철을 법적·제도적으로 뒷받침했다”고 회의 내용을 평가했다.
북한 주민들의 언어 생활과 준법 활동에 대한 통제·감시를 강화하는 조치도 취해졌다. 평양문화어보호법은 이번 회의에 참석한 대의원들의 만장일치로 채택(제정)됐다. 노동신문은 “우리의 사상과 제도, 문화를 굳건히 수호하기 위한 강력한 법적 담보를 마련하는 실천적 의의”라고 설명했다. 2020년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만든 연장선상으로 해석된다.
주민들 사이에 남한 말투와 문화가 확산되지 않도록 강력히 단속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신문은 “일상생활에서 사투리와 외래어를 배격”하라며 평양말 사용을 강조했다. 북한 당국이 남편을 ‘오빠’로 부르거나 ‘남친(남자친구)’ ‘쪽팔리다’ 등 남한 언어를 사용하는 청년들을 강하게 단속하고 있다고 국가정보원이 2021년 국회 정보위원회에 보고한 바 있다.
남한의 검찰 격인 중앙검찰소의 올해 업무계획도 다뤄졌다. 신문은 “국가사업 전반에 혁명적 준법 기풍을 확립하기 위한 법적 감시와 통제의 도수를 높여나가는 데서 나서는 실천적 문제들”이 논의됐다고 전했다.
2021년부터 공석이던 최고인민회의 의장에 박인철 조선직업총동맹 중앙위원장이, 부의장엔 맹경일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의장이 보선(선출)됐다. 맹 부의장은 노무현 정부 당시인 2005~2007년 남북 장관급회담 북측 대표였다. 2018년 2월 평창동계올림픽 때 방한하고 그해 4월 남북 정상회담에 수행원으로 참석하는 등 ‘대남통’으로 평가된다.
2018~2019년 대미 회담을 주도한 뒤 주요 당직에서 물러난 것으로 알려진 김영철 전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이 회의 주석단에 앉아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김 전 부장이 국무위원회 위원직은 유지한 것일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박광연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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