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말'로 덜컹거리는 한-이란 관계, 수습 바쁜 정부

2023. 1. 19.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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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주한국 이란대사 초치해 정부 입장 설명 "심각한 정도는 아냐"

[이재호 기자(jh1128@pressian.com)]
"아랍에미리트(UAE)의 적은 이란"이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이 양국 간 외교적 마찰로 번지면서 정부가 사태 수습에 애를 먹고 있다. 이란이 주이란 한국대사를 초치한 데 대해 정부도 주한국 이란대사를 초치해 1시간 가까이 정부 입장을 설명했다.

19일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조현동 외교부 1차관은 오늘 샤베스타리 주한 이란 대사를 초치해서 우리 정부의 입장을 다시 한 번 설명했다"며 윤 대통령의 발언이 "UAE에서 임무 수행 중인 우리 장병들에 대한 격려 차원의 말씀이었고 한-이란 관계 등 이란의 국제관계와는 전혀 무관하다"는 입장을 전했다고 밝혔다.

임 대변인은 "이란과 관계 발전에 대한 우리 정부의 의지는 변함이 없다"며 "앞으로도 이란 측과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해 명확한 사실에 기초하여 우호 관계 형성 노력을 지속해 나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이 19일 외교부 브리핑실에서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기자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앞서 18일(현지 시각) 이란 외무부는 성명을 통해 윤강현 주이란한국대사가 레자 나자피 법무·국제기구 담당 차관에 의해 소환됐다며, 이 자리에서 "한국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이란의 강력한 항의가 제기됐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란 측은 윤강현 대사에게 윤 대통령의 발언을 넘어서 기존 한-이란 간 관계 현안에 대해서도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나자피 차관은 한국 내 동결돼있는 이란의 자금을 거론하며 "분쟁 해결을 위해 유효한 조처를 하지 않을 경우 양국 관계를 재검토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뿐만 아니라 윤 대통령의 지난 11일 외교‧국방부 업무보고에서 핵 보유 가능성에 대해 언급한 것을 두고 핵확산금지조약(NPT)에 어긋나는 것이라며 이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임수석 대변인은 "핵확산금지조약 관련 언급에 대해 이란 정부의 문제 제기는 전혀 근거 없는 것"이라며 윤 대통령의 발언이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확장 억제의 실효성을 강화해 나가는 취지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 대변인은 조 차관이 이란 대사에게 "우리나라는 핵확산금지조약의 비확산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고 있고 이러한 의무 이행 의지에 변함이 없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고 전했다.

이란이 이처럼 양국 간 민감한 현안을 제기하면서 당장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고 있는 선박들에 대한 안전 문제도 제기됐다. 앞서 2021년 이란 혁명수비대는 해양 환경 규제를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UAE로 향하던 한국 국적의 케미컬 운반선(석유 화학제품 운반선)을 나포한 바 있다.

이와 관련 정부는 아직 각별한 주의를 기울일 단계는 아니지만 관련 부처 간 협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상황에 따라 조치의 필요성이 제기된다면 그에 따라 실행하겠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가 19일 주한 이란대사를 불러 '아랍에미리트(UAE)의 적은 이란'이라는 윤석열 대통령 발언에 대한 정부 입장을 거듭 설명했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조현동 외교부 1차관이 이날 사이드 바담치 샤베스타리 주한이란대사를 초치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사진은 이날 용산구 주한이란대사관 모습. ⓒ연합뉴스

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비외교적인 언사"라는 수준의 항의를 하던 이란이 주이란 한국대사 초치를 기점으로 한-이란 간 민감한 현안을 제기하며 전선을 넓히고 있다. 이를 두고 이란이 처한 현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란은 지난해 한 20대 여성이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구금됐다가 의문사하는 사건이 발생한 이후 반정부 시위가 한동안 이어졌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시위에 참여한 남성을 공개 교수형에 처하게 하는 등 강경한 대응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국내외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현 이란 정부가 국민들의 시선을 돌리면서 상황을 수습할 수 있는 이슈가 필요했고, 이를 위해 윤 대통령의 발언을 활용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란이 동결자금의 해제를 중요한 목표로 가지고 있다는 점도 전선을 넓히는 원인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실제 지난 2021년 이란의 혁명수비대가 한국 국적의 선박을 피랍했을 때 이란 측은 환경 문제를 명분으로 내세웠으나 실질적인 목표는 한국에 묶여있는 동결자금을 풀기 위함이었다.

이처럼 이란이 윤 대통령의 발언과 직접적 상관이 없는 양국 현안을 제기하며 한국에 대해 압박을 가하고 있는 것도 문제지만, 현안이 이렇게 복잡하고 민감한데도 대통령이 경솔하게 이란과 다른 국가의 관계를 언급하며 압박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지적도 부인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다만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당국자는 한-이란 관계에서 "현안이 있는 하지만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다.2021년 이후에도 어느 정도 관리는 되는 상황이었다"며 이란의 반응이 다소 과도하다는 듯한 뉘앙스를 보였다.

또 정부는 상호 상대방의 대사를 초치한 것은 외교적 소통에 있어 심각한 단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이란이 윤 대통령의 핵 보유 발언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어 그 부분을 명확하게 설명하기 위한 자리였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재호 기자(jh1128@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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