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효성 의문' 중대재해법 시행 1년 만에 손질…'자율'에 초첨 맞춘다
법 조항 명확화 논의 본격화…법령 개선 TF 활동도 본격화
(세종=뉴스1) 이정현 기자 = 중대재해처벌법 시행(2022.1.27.) 1년이 다되어가지만, 산업현장에서의 중대재해 사망사고는 여전히 줄지 않고 있다. 정부는 현행 '처벌' 중심에 치우친 법 규정이 사업주의 '자율 예방' 의식 함양이라는 본래 취지를 훼손하고 있다는데 정책 패러다임 전환을 추진 중이다. 여기에 중대재해법 시행 전부터 논란이 컸던 법 조문상 '모호한 규정'을 구체화하려는 법 개정 움직임도 본격화했다.
19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2년 산업재해현황 부가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중대재해 사고사망자 수는 644명으로, 전년(683명)대비 39명(5.7%)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인 상시 근로자 50인 이상(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원 이상) 사업장에서의 사고사망자 수는 지난해 256명(230건)으로, 전년(248명, 234건)대비 오히려 8명(3.2%)이 늘었다.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사망자가 증가한 것은 지난해 화재·폭발, 무너짐과 같은 대형 사고(2명 이상 사망)가 많았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대형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2021년 22명(8건)에서 지난해 39명(13건)으로 77.3%나 증가했다.
◇중대재해법 시행에도 여전한 사망사고…'처벌'→'자율 예방' 패러다임 전환
정부는 현행 중대재해법이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에 치우쳐 있어 '자율 예방' 의식 함양이라는 법 제도 취지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는데 정책 패러다임 전환을 추진 중이다.
이 같은 정부 인식은 지난해 11월30일 공개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에서 드러난다.
정부는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에도 중대재해 사망사고가 끊이질 않고 있다는 점에서, 안전보건 의식에 대한 노·사 자율 역량을 키우는 쪽에 주안점을 둔 정책대안을 내놨다. 산업안전감독당국인 고용부의 획일적인 정기감독을 지양하고, 노·사 스스로의 '위험성평가 점검'을 하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위험성평가'는 노·사가 함께 사업장 내 유해·위험요인을 스스로 파악해 개선대책을 수립·이행하는 제도다. 정부는 그동안의 안전보건감독 시스템이 공(公)적 부분에서 일률적인 방식으로 진행돼 형식적으로만 운영돼 왔다는데 이 같은 개선안을 내놨다.
'위험성평가' 의무를 지키지 않거나, 부적정하게 실시한 사업장에 대해서는 시정명령 또는 벌칙을 부과하는 관련법 조항을 신설한다.
다만 의무를 제대로 이행했음에도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자체 노력 사항을 수사 자료에 적시함으로써 재판과정 시 정상참작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 개별 기업들의 자발적인 안전보건 역량 향상을 끌어내기 일종의 당근책이다.
'위험성평가' 중심으로 전환을 꾀하면서 공적 부분의 정기감독 방향도 이를 위한 예방중심에 맞춘다. 산업안전보건당국인 고용부는 기존 정기감독을 '위험성평가 점검'으로 전환하고, 대상 선정에 있어서는 산재통계(보상) 분석 등을 통해 고위험 기업을 자동 선정한다.
◇'모호한 법조항' 중대재해법 법령 개정 움직임도 속도…개선 TF 운영
현행 중대재해법은 시행 전부터 '모호한 법 규정'으로 논란을 불러왔다. 정부는 정책 패러다임 전환과 함께 이와 관련한 법 규정 손질에도 착수한 상태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처벌의 대상이 되는 '경영책임자 등'의 의미와 범위의 확정이다.
중대재해법 2조 9호에서는 '경영책임자 등'이란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통상 기업에서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이 대표이사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논란이 되는 부분은 다음 단락이다.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의 의미가 명확하지 않다보니 법률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대표이사 등 최고 책임자와 소위 안전관리책임자와의 권한과 책임의 범위, 안전보건에 관한 의사결정 구조 등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 경우가 있어 현장에서는 여전히 혼선을 빚고 있다.
이는 중대재해법 적용 관련 수사 현황에서 고스란히 들어나는데 지난 1년 간 실제 수사를 거쳐 재판을 통해 처벌이 이뤄진 사례는 '0건'이다.
고용부가 밝힌 중대재해법 적용 사건 수사현황을 보면 법 시행 후 지난해 말까지 모두 229건의 법 적용 대상 중대산업 재해가 발생했는데, 수사로 이어진 것은 52건(22.7%)에 불과하다.
법 위반이 없는 18건의 사건은 검찰의 지휘를 받아 '내사종결'하고, 사망 32건, 직업성 질병 2건 등 34건의 사건에 대해서는 기소 의견을 달아 검찰에 송치했다. 그나마도 실제 재판을 통해 처벌이 이뤄진 사례는 아직까지 0건이다.
법 적용에 대한 해석이 명확하지 않다보니 실제 수사부터 재판에 이르기까지 더 많은 시간과 행정력이 소요되는 셈이다.
이에 정부는 본격적으로 법 제도 손질에 나선 상태다. 지난 11일 법령 개선을 집중 논의하기 위한 '중대재해처벌법령 개선 TF'가 발족했다. TF는 산업안전법령(중대재해처벌법, 산업안전보건법), 형사법, 경제법, 산업안전보건분야 학계 전문가들 위주로 구성했다.
TF에서는 향후 5개월 간 집중적으로 중대재해처벌법 개선방안을 논의한다. 구체적으로 지난해 11월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통해 제시한 중대재해처벌법령의 개선 방향인 △처벌요건 명확화 △상습·반복 다수 사망사고 형사처벌 확행 △제재방식 개선 △체계 정비 등에 대해 개선안을 마련한다.
또 지난 1년간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의 추진현황 및 한계·특성 등을 진단, 이에 대한 종합적인 개선방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류경희 산업안전보건본부장은 "지난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도 불구하고 644명의 조사대상 사망사고가 발생했고, 특히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인 50인(억) 이상 규모에서 256명의 사망사고가 발생했다"면서 "이에 정부는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통해 '처벌·규제' 중심에서 '자기규율 예방 및 엄중 처벌' 중심으로 패러다임 전환을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실상 로드맵 시행 원년인 올해에는 위험성평가를 중심으로 노사가 함께 스스로 위험요인을 점검·개선하는 자기규율 예방체계가 현장에 정착될 수 있도록 산업안전 감독체계, 산업안전 컨설팅·교육, 산업안전보건법령·기준 등을 속도감 있게 개편·정비해 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euni1219@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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