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 21세기 대학에 경고장을 보내다
(지디넷코리아=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2016년 초 구글 알파고가 세상에 '던진 메시지는 강력했다. 최고 바둑기사 이세돌을 4대 1로 가볍게 꺾으면서 '인공지능(AI)의 힘'을 널리 알렸다. 데이터 분석을 통해 바둑까지 정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줬다.
그 때 이후 AI는 인간의 영역을 조금씩 잠식해들어오고 있다. 빅데이터와 고속 영상 분석 기술까지 곁들여지면서 ‘인간만의 영역’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AI와 빅데이터 파워는 순수한 운동 능력을 겨루는 스포츠 분야까지 바꿔놓고 있다. 지난 해 12월 끝난 카타르 월드컵에선 “스포츠 심판도 전자 오락 비슷한 영역으로 바뀌고 있다”는 느낌을 줄 정도다. 미국 프로야구는 이번 시즌부터 과도한 빅데이터 분석의 폐단을 제한하기 위해 ‘수비 시프트 금지’ 정책을 도입할 정도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AI는 창작과 교육 영역에선 여전히 인간의 능력을 대체하기 힘들 것이란 믿음이 강했다. AI나 빅데이터의 힘은 주어진 데이터를 분석하는 데서 나온다는 게 이런 믿음의 근거였다.
■ 외워서 쓰던 시대→창의력 요구하는 시대로…그 다음은?
하지만 최근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른 챗GPT는 이런 믿음까지 조금씩 허물고 있다. 챗GPT는 채팅하듯이 질문을 하면 바로 해답을 제시해주는 AI 프로그램이다. 빅데이터를 활용한 답변 능력이 상상을 초월한다.
심지어 난이도 높은 학술논문 뿐 아니라 시, 소설, 보고서까지 단숨에 써낸다. 그 뿐 아니다. 제법 창의적인 것처럼 보이는 아이디어를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요즘 대학들도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왠만한 과제는 챗GPT를 활용해 후딱 해치울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챗GPT가 쓴 에세이가 최고점을 받을 뻔한 사례도 있다고 한다.
뉴욕타임스는 아예 “챗GPT 때문에 대학들이 교육 방법 혁신까지 고민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알파고가 바둑계를 흔들어놨던 것처럼, 챗GPT는 교육에 대해 다시 생각할 계기를 주고 있다. 어쩌면 논문을 비롯한 학술 활동에 대해서도 새롭게 생각하는 계기가 될 지도 모른다.
물론 챗GPT가 하루 아침에 교육을 뒤흔들어놓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 동안 미뤄 왔던 ‘교육의 방법’에 대해 새롭게 생각할 계기는 제공할 수 있을 것 같다. AI 시대에 아날로그 교육 패러다임을 고수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됐다는 의미다.
■ 챗GPT 시대, 대학과 교육의 미래는 무엇일까
사실 이런 문제는 어제 오늘 제기된 건 아니다. 기자가 대학을 다니던 1980년대 이래 늘 끊이지 않았던 문제였다. 그 시절엔 교수 강의를 잘 외워야 시험을 잘 칠 수 있었다. 강의 시간엔 교수 농담까지 받아 적었다. 시험 때가 되면 필기 잘하는 학생들의 노트를 빌려 복사하기 바빴다. ’비판적 사고’는 생각할 엄두도 못냈다.
이런 교육이 전혀 근거 없는 건 아니었다. 그 땐 학생들이 최신 자료에 접하는 게 굉장히 어려웠다. 인터넷에 온갖 자료가 널려 있는 요즘과는 교육 환경이 판이하게 달랐다. 요즘처럼 원서를 주문하는 건 꿈도 꾸기 힘들었다. 첨단 자료를 접한 교수들이 불러주는 고급 이론들을 받아적는 것만으로도 많은 공부가 됐다.
그 뒤 조금씩 상황이 바뀌었다. 인터넷이 등장하고, 해외 시장의 문턱이 낮아지면서 학생들의 정보 접근 능력이 급격하게 향상됐다. 구글의 등장으로 필요한 자료는 그 때 그 때 빠르게 검색해볼 수 있게 됐다. ‘불러주고 받아적는’ 강의가 더 이상 무의미한 시대가 됐다. 요즘 1980년대처럼 교육하는 교수가 있다면, 아마 강의 평가 낙제점을 받을 지도 모른다.
챗GPT가 이 시대 교육계에 던지는 메시지도 구글 검색엔진 못지 않다. ‘짜깁기식’ 보고서나 에세이를 요구하는 교육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게 됐다.
챗GPT로 쓴 글을 가려내려 노력할 게 아니라, 새로운 패러다임의 질문을 던지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대학 강의 역시 주어진 질문에 대한 답변을 찾는 훈련이 아니라, 창의적인 질문을 던지는 훈련을 하는 시간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경고를 보내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게 챗GPT가 이 시대 교육기관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인지도 모른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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