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강국?" 인슐린 펌프 활용한 당뇨병 최첨단 치료도 못하는 나라

정심교 기자 2023. 1. 19.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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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당뇨병학회, 19일 기자간담회서 '중증난치질환' 시급한 지정 호소
19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대한당뇨병학회가 개최한 '2023년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진상만(대한당뇨병학회 환자관리간사) 삼성서울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가 1형 당뇨병을 중증난치질환으로 지정해야 하는 필요성을 호소하고 있다. /사진=정심교 기자


사람이 음식을 먹으면 세포 안에 포도당이 들어온다. 그 양에 따라 췌장에선 인슐린을 적당량 생성해 혈당을 조절한다. 그런데 췌장 속 인슐린 생성 세포가 파괴되면 인슐린 자체를 만들어내지 못하는데, 이로 인해 혈당이 조절되지 못하는 질환이 '1형 당뇨병'이다. 당뇨병 중에서도 1형 당뇨병은 국가가 '중증난치질환'으로 시급히 인정해야 한다는 학계의 의견이 제기됐다.

19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2023년 대한당뇨병학회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진상만(대한당뇨병학회 환자관리간사) 삼성서울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는 "1형 당뇨병 환자는 인슐린을 반나절만 투여하지 못해도 케톤산증(당뇨병의 급성 합병증)으로 인한 사망위험이 높은 데다 생명을 위협하는 저혈당, 심각한 장애를 초래하는 합병증이 다수 발생한다"며 "이는 '경증'으로 분류된 다른 당뇨병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지적했다.

진 교수에 따르면 1형 당뇨병은 현재 중증난치질환으로 지정된 다른 질환들보다 중증도가 약하지 않다. 중증난치질환이란 ▶치료법은 있으나 완치가 어렵고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하며 ▶치료를 중단하면 사망 또는 심각한 장애를 초래하는 수준의 증상을 보이며 ▶진단·치료에 드는 사회·경제적 부담이 상당한 질환으로 정의된다. 중증난치질환에 선정되면 환자에겐 적정한 치료를 받을 기회가 보장되며, 환자의 본인 부담금도 크게 줄어든다.

진 교수는 "1형 당뇨병은 인슐린 가격만 포함하는 '의료비'가 낮다는 이유로 중증난치질환으로 지정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예컨대 1형 당뇨병 환자의 치료에 필수적인 연속혈당측정기, 인슐린 펌프(자동인슐린주입기기)는 '의료비'가 아닌 '요양비'로 분류돼있다. 이로 인해 인슐린 약값만 포함된 '의료비' 자체는 연간 100만원도 채 되지 않아 중증난치질환의 자격요건(진단·치료에 드는 사회·경제적 부담이 상당한 질환)에 부합하지 않는다.

이날 원규장 대한당뇨병학회 이사장은 "1형 당뇨병 관리의 활성화를 위해 중증난치질환 지정뿐 아니라 이 질환의 재택의료 시범사업을 연장·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정심교 기자
최첨단 인슐린 펌프 쓰려면 5년에 2000만원 내야

IT 기술이 진화할수록 1형 당뇨병을 관리하는 게 수월해지는 한편, 1형 당뇨병 환자가 부담해야 할 금액도 치솟고 있다. 인슐린 펌프가 인슐린을 자동으로 주입해주는 알고리즘이 적용된 기기가 개발·출시되면서 기기값은 비싸졌고, 그 부담이 고스란히 환자의 몫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예컨대 연속혈당측정기와 연동돼 인슐린 주입 속도를 자동으로 조절하는 인슐린 펌프의 경우 가장 단순한 형태의 기기여도 환자는 매달 약 33만원씩 5년이면 2000만원가량을 부담해야 하는 실정이다.

그뿐 아니라 1형 당뇨병이 중증난치질환으로 지정되지 않아 이들 환자는 상급종합병원에서 환영받지 못한 존재가 됐다. 진 교수는 "상급종합병원은 전체 환자수 대비 중증난치질환 환자의 비율을 의무적으로 높여야 해, 중증난치질환이 아닌 1형 당뇨병에 대한 치료는 사실상 제한하고 있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게다가 최신 기기에 대한 교육 시스템도 턱없이 부족하다. 인슐린 펌프 치료를 제대로 시작하려면 통상적인 진료와 당뇨병 교육의 수준을 현저히 넘어서는 수준의 지식이 뒷받침돼야 해 의사, 영양사, 당뇨병 전문간호사 등으로 구성된 전문 교육팀이 꾸려져야 하지만 인슐린 펌프를 교육과 함께 처방하는 제도가 없어 환자·의료진이 인슐린 펌프 사용법을 잘 모른다는 것. 진 교수는 "연속혈당측정기, 인슐림 펌프 등 당뇨병 관련 기기가 고도화할수록 의료진·환자 모두 장시간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1차 의료에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데다, 3차 병원에선 의료진 본인이 '열정페이'로 감당한다 해도 병원에 적자를 안기게 되는 구조"라고 분석했다.

이 같은 과제가 쌓이면 환자를 보면 볼수록 병원에선 적자를 우려할 수밖에 없다. 진 교수는 "실제로 다수 상급종합병원에선 1형 당뇨병을 전혀 보지 않으려 한다"고 밝혔다.

이런 우리나라와 달리, 1형 당뇨병 치료에 최첨단 IT 기술을 도입하는 방법은 세계적 추세로 자리 잡고 있다. 미국당뇨병학회는 모든 1형 당뇨병 및 그에 준하는 인슐린 분비 결핍이 있는 당뇨병에서 인슐린 펌프를 활용한 자동인슐린주입을 표준치료로 추천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IT 강국으로 꼽히지만 자동인슐린주입의 최빈국이 됐다"며 "게다가 눈앞에 자율주행차가 있지만 운전 방법도 몰라 타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게 진 교수의 토로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대한당뇨병학회는 연내 인슐린 펌프를 활용한 1형 당뇨병의 치료법을 담은 새로운 진료 지침을 발표할 예정이다. 진 교수는 "인슐림 펌프 같은 최첨단 기기를 활용해 1형 당뇨병을 치료할 때 예상되는 치료 효과와 치료 대상군 등을 가이드하는 진료 지침을 오는 5월 개최하는 대한당뇨병학회 춘계 학술대회에서 공개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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