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압류 말아달라” vs “돈 내놔라”...보고플레이 협력사 615곳, 336억 물려

이신혜 기자 2023. 1. 19.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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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출신 류승재 대표 “회생 절차 안 들어가게 가압류 말아달라”
협력업체 대표들 “피 같은 돈 내놔라” 소리 치기도
1억원 이상 판매대금 묶인 협력사만 77곳
19일 오전 류승재 보고플레이 대표(맨 오른쪽)가 정산대금 미지급 관련 협력업체 대표들을 대상으로 회사 상황을 설명하는 모습./이신혜 기자

“보고에서 11월부터 들어오라고 적극 영업해 들어갔는데 순식간에 8000만원 손실이 났습니다. 너무 괘씸합니다.” (40대 아동용품 판매업체 대표 한모씨)

실시간 방송 판매(라이브커머스) 플랫폼 ‘보고(VOGO)’를 운영하는 보고플레이가 총 500억원 부채에 입점사 부채만 336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19일 밝혀졌다.

보고플레이는 삼성전자 출신인 류승재 대표가 2019년 10월 설립한 라이브커머스 플랫폼 회사다. 라면, 전자제품 등을 ‘핫딜’ 형식의 최저가로 판매해 회원 100만명을 모았다.

이날 오전 류 대표는 서울 강남구 포스코타워에서 ‘적자로 인한 협력업체 정산대금 지급 지연’ 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류 대표는 보고플레이의 현금흐름표 및 현재 문제점, 입점사들에게 전하는 부탁 사항 등을 말했다.

보고플레이가 밝힌 부채 현황. /이신혜 기자

보고플레이에 따르면 상품 대금, 광고비, 급여, 전자지급결제대행(PG)사 취소분 등 이날 기준 총부채는 약 500억원이다. 이중 보고에서 물품을 판매한 입점사 부채는 336억원에 달했다.

10억원 이상 판매대금이 묶여있는 업체가 3곳, 5억원 이상 10억원 미만 판매대금이 묶여있는 업체가 14곳, 1억원 이상 5억원 미만 판매대금이 묶여있는 업체가 60개에 달했다. 1억원 이상 판매대금을 정산받지 않은 업체만 77곳이었다.

류 대표가 공개한 현금흐름표를 보면 지난해 7월부터 수입과 지출은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거래액을 키우기 위해 10월 대규모 할인 프로모션을 적용하며 할인 쿠폰 등을 뿌렸고, 이에 따라 지출이 수입보다 늘어나는 역마진 구조가 형성되면서 협력업체 판매대금 정산이 미뤄지고 현금 흐름이 악화했다. 지난해 11월에는 현금성 자산이 87억원 줄고, 지난해 12월에는 83억원 줄어드는 등 부채가 늘어났다.

이날 류 대표는 회사 사정이 알려지며 회원 수가 102만명에서 99만4000명으로 3만명 가까이 줄었다며 협력업체의 재입점을 호소했다. 이어 운영 비용 효율화를 위해 100명에서 40~50명가량으로 직원 수를 줄이고 대표 제외 임원진을 교체하겠다고 밝혔다. 2월 1일부터는 PG사에서 입점사 통장으로 수수료 제외 후 바로 입금하는 방식을 취하겠다고 설명했다.

보고플레이 측이 밝힌 개선 운영 방안. /이신혜 기자

이와 함께 보고 외에도 네이버·카카오·그립 등 타 플랫폼에서도 병행 운영하고, 수수료를 변경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협력업체 대표들은 “믿지 못하겠다”, “보고에 5억원 넘게 묶였는데 오늘 간담회조차도 언론을 통해 알았다”며 질타의 목소리를 냈다.

류 대표는 협력업체 동의 80% 이상을 받아 추가 투자를 받겠다고 주장했지만, 다수의 협력업체 대표들은 이미 대금을 못 받은 상황에서 적자를 감수하며 재입점을 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류 대표는 “현재 자금이 다 떨어진 상태라 모든 물품 판매가 정지돼 10% 정도라도 부분 변제할 수 있도록 추가 인수합병(M&A)이나 신규 투자를 받겠다”고 재차 말했지만 “사기꾼”, “피같은 내 돈 내놔라” 등의 고성이 오갔다. 이에 류 대표는 “한 분이라도 가압류 신청을 하면 기업 회생 절차에 돌입하게 되고 정상적인 부채 탕감이 어렵다. 도와달라”고 말했다.

이날 고객들이 쌓아놓은 보고의 현금성 적립금도 12억원 중 8억원이 남은 것으로 드러났다. 류 대표는 최근 고객들의 요청에 따라 4억원 정도를 취소 처리했다고 밝혔다. 보고플레이는 앞서 구독형 결제 서비스인 ‘보고 멤버십’, 대체불가능한 토큰(NFT) ‘보고냥’을 발행하기도 했다.

보고플레이의 현금 흐름에 대해 설명하는 류승재 대표. /이신혜 기자

하지만 정산대금을 받지 못한 입점사의 주문 취소가 이어짐과 동시에 포인트 사용이 어려워지면서 소비자 피해도 우려되고 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60대 전자제품 업체 대표 황모씨는 “11월부터 거래해서 8000만원이 물려있는 상태인데, 협력사 부채가 300억원이 넘어가는 상황이라 가압류를 신청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동용품을 판매한다는 협력 업체 대표 한모씨 역시 “머지포인트 사태랑 똑같다”며 “어제 언론에 알려지고 나서 고객들이 가지고 있는 포인트를 사용해 하루만에 1억원 어치를 주문했는데 어쩔 수 없이 모두 주문 취소했다”고 말했다.

보고플레이는 류 대표가 초기 자본금 1000만원으로 만든 회사다. 지난해 CJ대한통운, 포스코기술투자, 기업은행, SK증권 등으로부터 총 150억원의 시리즈A 투자를 유치한 바 있다.

업계는 보고플레이 같은 대금 미지급 사태가 벤처업계 전반으로 번질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전자상거래 벤처기업 대부분이 사업 관련 투자를 계속하고, 다시 투자를 받는 방식의 ‘캐시버닝’을 계속해 오면서 벤처투자가 빠르게 위축됐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이자 수산 전문 플랫폼 ‘오늘회’ 역시 자금 유동성 악화로 협력 업체 대상 부분 디폴트(일부 채무 불이행)를 공지한 바 있다. 수산물을 저렴하게 사들여 당일 신선상태로 고객에게 전달해 누적 회원 수 75만명을 넘기기도 했다. 하지만 총 40억원 규모의 판매 대금을 정산하지 못하며 사업에 차질을 빚고 있다.

현금 유동성이 좋던 지난해 상반기까지는 벤처캐피탈 등 투자업계가 적극적으로 스타트업에 투자하며 스타트업 투자가 활발히 진행됐다. 하지만 금리 인상과 레고랜드발 자금 경색 등으로 투자 환경이 열악해지며 현금성 자산이 부족한 스타트업의 경우 투자 유치 및 사업 진행에 차질을 빚고 있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는 VC(벤처캐피탈)들이 수익성이 확실히 보장되지 않는 스타트업 투자에 주저하는 분위기”라며 “현금흐름이 악화한 스타트업의 경우 특히 신규 투자를 받거나 기업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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