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사랑기부제로 지역 문제 해결을[윤형중의 정책과 딜레마](16)
10년이 넘는 논의와 입법이 된 뒤 1년이 넘는 유예기간을 거쳐 올해 1월 1일부터 시행된 제도가 있다. 지난 1월 5일 축구스타 손흥민 선수가 강원도 춘천시에 500만원을 기부해 화제를 모은 고향사랑기부제다. 이 제도로 올해부터 전국의 모든 광역·기초자치단체들은 해당 지역 내 주민이 아닌 사람에게 기부받을 수 있다. ‘고향’사랑기부제지만 고향이 아닌 곳에 기부해도 관계없다.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만 제외하면 어느 곳이든 기부할 수 있다. 기부 한도는 개인당 연간 500만원이다.
파란 일으킬 고향사랑기부제 필자는 올 한 해 파란을 일으킬 정책으로 고향사랑기부제를 꼽는다. 기부문화도 미진한 국내에서 엉뚱한 소리처럼 들릴 수 있다. 심지어 고향사랑기부제를 아는 사람조차 많지 않다. 지난해 7월 한국리서치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고향사랑기부제를 ‘들어봤거나 알고 있다’고 답한 비율이 27%에 그쳤다. 73%는 전혀 모른다고 답했다. 이마저도 꽤 올라간 수치다. 2021년 12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표한 고향사랑기부제에 대한 인식은 9.5%에 그쳤다. 그렇다면 올 한 해 추정되는 기부금액의 규모는 얼마일까. 한국지방세연구원이 발간한 ‘고향사랑기부금법 제정에 따른 지방자치단체 대응 방안’(김홍환·이주현)에 따르면 658억~3116억원(제도 인지 수준과 기부 의사 등에 따른 시나리오별 추정)이다. 중간값인 1887억원이라고 추정해 이를 243곳의 지자체로 나누면 한 지자체당 7억7654만원가량이다. 아주 적은 재원은 아니지만, 웬만한 지자체가 크게 관심을 기울일 만한 수준도 아니다. 하지만 필자는 예상을 달리한다. 고향사랑기부제는 이보다 더 큰 관심을 얻을 것이고, 더 많은 재원이 모일 것이다. 이 제도가 가진 세 가지 특징 때문이다.
첫째로 이 제도는 기부자에게 분명한 혜택을 준다. 고향사랑기부제의 기부자는 10만원까지 전액 세액공제가 된다. 사실상 내야 할 세금으로 기부하는 제도로 자부담이 없다. 여기에 기부금액의 30% 수준의 답례품을 받는다. 사실상 10만원을 내고 13만원을 돌려받는 제도인 셈이다. 10만원 이상의 기부금에는 나중에 ‘세금 감면으로 돌려받는 비중’(세액공제율)이 16.5%로 줄어든다.
고향사랑기부제는 10만원까지 전액 세액공제가 된다는 점에서 정치기부금 제도와 유사하게 설계돼 있다. 이 점이 이 제도의 모태가 된 일본의 고향납세제도와의 차이점이다. 2008년에 도입된 일본의 고향납세제도는 중앙정부의 개인소득세와 지방정부의 개인주민세에서 공제하는 제도다. 쉽게 표현하면 일본은 중앙정부와 자신이 거주하는 지자체에 낼 세금으로 기부하는 데 반해 한국은 중앙정부에 낼 세금으로만 기부한다. 이는 일본에 비해 한국의 지방재정이 더 열악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국세와 지방세 비중이 55 대 45인 반면, 한국은 75 대 25 수준이다. 일본처럼 거주 지역에 내는 주민세를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면 이 제도 도입을 둘러싸고 지역 간 갈등을 유발한다는 점도 기부금 세액공제를 활용한 이유다.
여기서 또 의문이 생긴다. 과연 10만원까지 전액 세액공제되는 정치후원금은 활성화됐을까. 국세통계연보를 보면 2020년 정치기부금 공제세액은 251억원이고, 공제를 받은 인원은 28만5000명이다. 근로소득세와 종합소득세를 납부하는 2400만명의 인원 가운데 지극히 일부다. 한마디로 흥행 참패다. 그렇다면 정치후원금보다 고향사랑기부제가 더 흥행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건전한 경쟁과 민간 참여가 성공 불러 그게 이 제도의 두 번째 특징과 관련 있다. 고향사랑기부제는 지자체 간에 건전한 경쟁을 유도한다. 정치후원금은 정치인의 개인 경비로 사용된다. 물론 이 경비로 정책 개발도 하는 등 의미 있게 사용되고, 궁극적으로 정치후원금은 정치가 이권이 개입된 검은돈으로 혼탁해지는 것을 막는다. 그래도 사용 주체가 정치인 개인인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반면 지자체가 모금한 기부금은 지자체장의 개인 경비로 사용되지 않는다. 지자체의 공적 재원으로 공공의 목적을 위해 사용된다. 따라서 지자체장이 기부금을 많이 모금할수록 지역 주민들에게 혜택이 되는 정책을 더 많이 펼 수 있고, 더 유능하고 효과적인 행정을 펼칠 수 있다. 4년마다 선출되는 지자체장들에게 기부금 모금액은 일종의 성적표가 되는 셈이다. 게다가 기부금으로 더 좋은 정책을 펼수록 다시 더 많은 기부를 받는 선순환이 생기기 때문에 더욱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이 제도가 화제를 모을 수 있는 세 번째 특징으론 민간이 활발하게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꼽고 싶다. 중앙정부나 지자체가 아무리 좋은 정책을 만들어도 정작 필요한 사람들에게 가닿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다. 자신에게 필요한 정책이 이미 존재하는데도 알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런 실태는 어쩌면 공공주도 정책의 한계다. 하지만 정책에 민간 주체가 참여하도록 설계돼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고향사랑기부제는 일단 기부자와 답례품 생산자가 민간 주체다. 지역의 특산물이나 사회적 가치가 있는 제품을 생산하는 이들은 고향사랑기부제를 알릴 유인이 생긴다. 지역 주민도 중요한 주체다. 이들은 거주 지역에 기부할 순 없지만, 지역의 문제를 전국에 알려 타지역 주민들의 기부를 유도할 수 있다. 지자체가 모은 기부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감시하고 견제하며 제대로 사용되도록 하는 핵심 주체이기도 하다.
사실 기부금이 잘 사용되면 그걸 경험하는 주민의 존재 자체가 기부를 유도한다. 고향납세로 큰 성과를 거둔 일본 홋카이도의 작은 마을 홋카이도 가미시호로는 기부금으로 보육과 교육에 집중 투자했고, 임대주택을 짓고 운동하면 현금을 주는 건강포인트 제도를 도입하는 등 말 그대로 좋은 행정을 펼쳤다. 전국 최초로 무료 보육서비스를 시행한 게 전국 신문 1면에 등장하는 등 좋은 행정을 경험한 주민의 존재 자체가 기부를 유도했다. 그 결과 인구 5000명에 불과한 이 마을에 2020년 총액 17억엔의 기부금이 들어왔고, 인구는 다시 늘기 시작했다. 인구 2만여명에 불과한 홋카이도 최북단 도시 몬베츠엔 지난해 고향납세 기부금만 1530억원이 들어와 지자체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이 지자체는 오호츠크 바다 위를 떠다니는 빙하인 유빙을 보호하자는 캠페인을 벌인 것으로 유명하다.
지역 문제에 대한 진정성으로 감동을 줘야 필자는 <고향사랑기부제 교과서>(농민신문사 발간·2022)의 공동 저자인 신승근 한국공학대학교 교수와 고향사랑기부제를 지역 문제 해결과 결부하는 방안을 논의하다가 인상 깊은 이야기를 들었다. 신 교수는 “한날한시에 친한 친구 세 명이 동시에 결혼한다면 누구의 결혼식에 가겠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어서 그가 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부분은 자신이 신세 진 적이 있거나, 자신에게 감동을 줬던 친구의 결혼식에 갈 거예요. 고향사랑기부제도 마찬가지예요. 세액공제 혜택이 있다, 이런저런 답례품을 준다는 것도 중요하죠. 그런데 대부분은 전액 공제받는 10만원을 한 지역에만 기부할 거잖아요. 답례품도 3만원 한도로 비슷비슷할 거고요. 그렇다면 기부할 한 곳을 어떻게 정하겠어요. 자신에게 감동을 주는 지역으로 정하겠죠.”
어떤 지역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까. 필자는 위의 가미시호로 마을의 사례처럼 지역이 처한 문제에 제대로 천착하고 잘 풀려고 하는 지자체와 지역 주민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이왕이면 그 문제가 지역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호소력이 있으면 더욱 좋다. 일본의 경우엔 인구가 소멸하는 지역이 늘어나면서 그에 성공적으로 대응하는 사례들이 크게 조명을 받았다. 몬베츠의 경우엔 기후위기를 상징하는 ‘유빙’이 주목을 끌었다.
필자가 거주하는 제주도란 지역을 상정해보면 전국 공급량의 25% 이상을 차지하는 밭작물이 무, 당근, 메밀, 양배추, 참다래 등이다. 비트와 콜라비, 브로콜리 등의 생산량도 전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 반면에 농약 사용량도 전국 평균의 4배를 상회한다. 제주에서 농약 사용량을 줄이는 게 전국 소비자의 건강에도 도움이 될 뿐더러 제주의 토양과 지하수를 지키는 길인 셈이다. 하지만 농약 사용량은 자연스레 줄지 않는다. 농약을 사용하지 않을 경우의 비용을 정부가 보전해야 줄일 수 있다. 이처럼 에너지전환, 폐기물 처리, 돌봄과 보육 정책, 취약계층 보호 등 그동안 지자체가 자체 재원으로, 자체 동력으로 풀려고 했지만 풀지 못한 문제들을 고향사랑기부제와 결합시킬 수 있다. 이 경우 기부자는 단순한 후원자가 아니다. 지역 문제의 개선 과정을 지켜보고, 직접 방문해서 관찰도 하는 ‘관계인구’로 거듭난다. 고향사랑기부제도 과도한 경쟁 유발, 답례품 선정 과정의 이권 개입, 기부금을 통한 정치적 이권 쟁취 등의 여러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지만, 잘만 활용하면 먼저 도입된 일본보다 더 역동적인 정책이 될 수 있다. 어쩌면 최근 도입된 그 어떤 제도보다 ‘상상력’이 필요한 정책이라고 볼 수도 있다.
끝으로 이 제도를 운영하는 지자체에 몇 가지 팁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기부금으로 조성되는 기금을 투명하게 운용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식으로 내역을 공개해야 한다. 둘째, 답례품 선정과 기부금 사용 등 이권이 개입될 수 있는 과정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운영해야 한다. 셋째, 답례품 선정의 경우 기업뿐 아니라 개인사업자 등의 참여를 보장하고, 계절별·시기별 수요에 대응하도록 유연성이 있어야 한다. 넷째, 이 제도의 설계와 운영에 참여하는 공무원들의 창의성을 독려하고, 상당 부분의 재량권을 보장해야 한다. 일본의 몇몇 성공 사례들을 보면 혁신적 공무원의 창의성이 민간의 활발한 참여를 유도했다. 국내 지자체 중엔 어느 곳에서 창의적인 접근이 나올지 기대해본다.
윤형중 LAB2050 대표
Copyright © 주간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윤, 완주 쉽잖을 것” 대세…“지금 구도 계속” 관측도
- [박성진의 국방 B컷] (19) 병사 월급 뒤에 숨은 ‘표퓰리즘’으로 무너진 징집·모병체계
- 달라진 정부…우크라에 ‘살상무기 지원’ 가능할까
- [전성인의 난세직필] (32) 이재명 대표의 금투세 폐지 결정, 즉각 철회해야
- [정봉석의 기후환경 이야기] (21) 기후위기, 숲이 주는 해답
- [메디칼럼] (43) 의료개혁, 국민만을 위한 ‘새판’ 짜야
- “명태균 관련 거짓말에 캠프서 있었던 일 공개하기로 결심”
- [꼬다리] 수능 듣기평가 시간에 모기가 날아다닌다면?
- [오늘을 생각한다] 전쟁을 끝내자!
- 법원, 이재명 대표에 징역 1년 집유 2년···의원직 상실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