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UAE 적' 발언에 ‘뿔난’ 이란, 압박 수위 높였다 [뉴스+]
석유대금 동결·핵개발 발언도 언급…“문제 확대시킬 듯”
“특사 파견 등 적극 행동 보이면 기회로 전환할 수 있어”
윤석열 대통령의 “이란은 아랍에미리트(UAE)의 최대 위협” 발언 논란이 구설수를 넘어 외교 위기로 확산했다. 정부는 이란측에 외교채널을 통해 설명했다고 밝혔지만, 이란은 주이란 한국대사를 초치해 경고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며 좀 더 성의 있는 자세를 요구하는 모양새다. 이에 대해 이번 사건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닌 ‘위기’이며 더 적극적으로 해결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해외 순방 때마다 각종 ‘실수’로 구설에 올랐지만 그 때마다 국내 정치권 논쟁으로 그치곤 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이란이 윤 대통령 발언을 공식적으로 문제 삼고 나선 것이다.
논란은 지난 15일 UAE를 방문한 윤 대통령이 국군 아크부대를 찾아 장병들을 격려하면서 시작됐다. 윤 대통령이 “UAE의 적은, 가장 위협적인 국가는 이란이고 우리 적은 북한”이라고 언급한 사실이 알려지자 이란은 한국 정부에 설명을 요구했다.
이란은 당초 민감한 표현을 최대한 자제했다. 이란 외무부는 16일 홈페이지 성명에서 나세르 카나니 외무부 대변인의 입을 빌려 문제를 제기했는데, 그는 “한국 당국자가 말한 것으로 인용된 발언이 그가 UAE를 포함한 페르시아만 연안 국가들과 이란의 역사적이고 우호적인 관계, 이런 면에서 급속하게 일어나고 있는 긍정적인 전개를 전적으로 모르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을 지목하는 대신 당국자로 완화한 것이다.
또 사과나 입장 정정을 요구하지 않고 “한국 정부의 설명을 기다리고 있다”며 완곡하게 표현했다.
문제가 불거지자 정부는 “장병 격려 차원이다”, “이란과의 관계 등 국가 간의 관계와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또 외교부 기자단에 “불필요하게 확대 해석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조현동 외교부 1차관은 17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해 이란 측에 우리 입장을 전달했다며 “(이란도) 일단 저희 설명을 이해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오판으로 드러났다. 이란 외무부가 주이란 한국대사를 초치해 강한 어조로 항의한 것이다.
18일(현지시간) 이란 반관영 ISNA 통신에 따르면 레자 나자피 법무·국제기구 담당 차관은 이날 윤강현 한국대사를 불러들여 “한국 대통령의 발언은 이러한 우호적 관계를 방해하고 지역(중동) 평화와 안정을 해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한 즉각적인 설명과 입장 정정이 필요하다”고 강경한 입장을 나타냈다.
나자피 차관은 더 나아가 한국이 이란에 지불해야할 석유대금이 동결된 상황을 언급하면서 “분쟁해결을 위해 유효한 조처를 하지 않는다면 양국 관계를 재검토할 수 있다”고도 밝혔다. 또 최근 윤 대통령의 핵무기 제조 가능성 거론에 대해서도 핵확산금지조약(NPT)에 어긋나는 것이라면서 해명을 요구했다.
나자피 차관의 이런 항의는 ‘설명을 기다린다’던 당초 대응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강도 높은 반응이다. 한국이 이란 제재에 동참하면서 양국이 불편한 관계를 이어가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말실수’에 대해 대외적인 사과나 유감표명을 하지 않고 변명성 해명을 한 것에 대한 불만으로 해석된다.
국내 최고 이란전문가인 유달승 한국외국어대학교 중동연구소장(페르시아·이란어과 교수)는 이번 일에 대해 “이란은 점차 수위를 높이며 문제를 확대시킬 가능성이 높다”면서 “특사 파견 등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2020년 저서 ‘이란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를 펴낸 유 교수는 한국인 최초로 이란에서 유학했으며 1979년 이란혁명 이후 탄생한 첫 외국인 박사다. 테헤란 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미국 하버드 대학교 중동연구센터(1999∼2000년), 이란 알라메 타바타바이 대학(2019∼2020년)에서 활동했다.
유 교수는 18일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이란이 윤 대통령의 발언을 짚고 넘어가려는 이유로 두 가지 요인을 꼽았다.
한 가지는 대외적 상황이다. 이란은 2018년 트럼프 대통령 시절부터 미국 주도의 국제사회 제재를 받고 있다. 바이든 정부 들어 미국과 다시 협상 분위기가 조성됐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진행된 것이 없다. 이에 이란은 이웃 걸프국가와 외교 관계를 확대하고 교류를 강화하며 최근 출구를 모색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제 3국 정상이 최대 경제협력국인 UAE에 이란을 ‘위협’이라고 정의하자 이를 부인하며 UAE와 이란의 우호적 관계를 적극 홍보하고, 나아가 국제사회 고립 돌파의 계기로 삼으려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국내 요인이다. 유 교수는 “현재 이란은 반정부 ‘히잡 시위’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국제적으로 지탄받는 상황이다. 국민들의 불만 등 내부 문제를 대외 정책으로 전환시킬 필요가 있다”면서 “이 때문에 이번 윤 대통령의 발언을 확대 해석하고 정치 이슈화 해나가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유 교수는 이란 외무부의 한국대사 초치 사실이 알려지기 전에도 “설명을 요구한다는 이란의 말은 결코 가볍지 않다”면서 “대내외적 상황을 고려할 때 이란 정부는 언론을 통해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확대시킬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제국의 역사를 가진 국가들의 정치·외교 특징 중 하나는 즉각 강한 반응을 하지 않고, 상대의 반응을 보며 점차 강도를 높이는 것이다. 그리고 끝내는 보복한다”면서 “2021년 이란혁명수비대가 한국 유조선을 나포했던 사건도 명분은 환경오염이었으나 한국 내 이란 자금 동결에 대한 보복 성격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유 교수는 다만 현 상황이 ‘위기’라면서도 이란이 문제를 키우기 전에 한국이 빠르게 대응한다면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사 파견 등 보다 적극적인 방법을 통해 이번 논란을 해명하고 기존에 있던 여러 불협화음에 대해서도 우리 정부의 의지와 입장을 피력해야 한다”면서 “한국이 적극적인 관계 개선 행동을 보이면 이란이 언론을 통해 이를 홍보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번 일이 한·이란 관계가 새로운 발전 전망 가능성을 내다볼 수 있는 중요한 기회로 전환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과 이란이 불편한 관계라고 해서 눈치볼 필요는 없다”며 “바이든 대통령이 이란과 관계 정상화 의지를 밝힌 상황에서 우리가 발빠르게 이번 일에 대응하면 이후 미·이란 관계의 중재자 역할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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