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덕스런 윤 대통령, 한동훈·이상민 빼면 ‘검찰 계장’ 취급?

김양진 2023. 1. 19.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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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한겨레21]
한동훈·이상민 ‘운명 공동체’는 무한 감싸기
반면, 정치인·관료 출신에겐 ‘이랬다저랬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새해 첫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2022년 12월23일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반도체 대기업의 세액공제율을 6%에서 8%로 높이는 내용이 뼈대다. 기획재정부(기재부)는 “세계 최대 수준의 세제 지원”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7일 뒤 임시 국무회의를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은 “반도체 세제 지원 추가 확대”를 지시했다. 기재부는 부랴부랴 법안을 수정해 조만간 국회에 제출한다고 발표(2023년 1월3일)했다. 아무런 사정 변경이 없는 상황에서 대통령 말 한마디에 어렵게 여야 합의로 국회를 통과한 개정안이 휴지통에 던져졌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재개정안 통과 가능성은 매우 낮다.

 “잘 당기다가 조져서… 눈치 많이 본다”

‘책임 장관제’를 표방하지만 윤석열 정부 장관들의 운신 폭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게 하는 장면이다. 추경호 기재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는 엘리트 관료 출신의 재선 의원이다. 추 부총리는 2022년 6월에도 윤석열 정부의 정책 기조에 맞춰 ‘근로시간·임금체계 개편’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가, 윤 대통령이 약식 기자회견에서 “정부 공식 입장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바람에 한껏 체면을 구겼다.

윤석열 대선 후보 캠프 출신인 한 여권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잘 당기다가도 갑자기 조지는 스타일이라 당에서 정치인으로 있다가 장관으로 간 사람들이 ‘(대통령 심기가)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는 생각에 자신 있게 일을 벌이지 못하고 눈치를 많이 본다”고 전했다.

윤석열 정부가 집권 2년차를 맞았다. 1년 가까이 되는 기간에, 윤 대통령이 누구를 발탁했는지, 장관급 인사를 어떻게 대했는지 살펴보면 몇 가지 특징이 눈에 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 등 검찰 시절부터 만나 10~20년씩 인연을 이어온 최측근 인사를 유독 챙기는 반면, 2021년 6월 정계 입문 뒤 알게 된 정통 관료나 정치인 출신의 장관급 인사를 홀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대표적이다.

윤석열 대통령 내외가 2022년 11월15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환영 만찬에 참석했다. 유튜브 영상 갈무리

장관급으로 윤석열 정부에 합류한 나경원 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2023년 1월5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자녀를 3명 낳으면 대출금 원금을 탕감해주는 아이디어’를 언급했다. 하지만 다음날부터 대통령실은 브리핑 등을 통해 “정부 정책과 무관하다” “납득하기 어려운 부적절한 처사다”라고 정색하며 나 전 부위원장의 아이디어를 공개 비판했다.

나 전 부위원장은 국민의힘 제주도당 당원 특강이 취소되는 등 당내 비판 여론까지 커지자, 기자간담회 닷새만인 1월10일 쫓겨나듯이 사의를 밝혔다. 그 직후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중앙일보>에 “나 전 의원에 대한 윤 대통령의 애정이 여전히 크다”며 은근히 ‘당기다’가, 나 전 의원이 끝내 뜻을 굽히지 않자 사표를 수리하는 대신 ‘전격 해임한다’고 발표(1월13일)하며 그를 공개적으로 내쳤다.

이와 관련해 라디오와 텔레비전 인터뷰 등에서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나경원이) 개인적 의견을 낸 걸 (대통령실이) 그렇게 격렬하게 반응하는 자체가 잘 이해가 안 된다”고 했고, 유승민 전 의원은 “대통령실 대응을 보면 너무 폭력적이고 과하다. 집단린치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최측근 장관들과 관련한 일에는 대통령이 지나치게 감싸는 태도를 보인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집을 찾아가 인터넷 생중계한 <더탐사> 취재진에 대해 윤 대통령은 “법을 지키지 않으면 어떤 고통이 따르는지 보여줘야 한다”며 수사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하다시피 했다.

이태원 참사 ‘주무장관’인 이상민 장관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다. 이 장관은 윤 대통령의 충암고, 서울대 법대 4년 후배다. 이 장관은 이태원 참사 다음날 “경찰, 소방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문제가 아니었다”는 등 무책임한 발언으로 논란에 휩싸였지만, 윤 대통령은 “(법적 책임은 물론) 정무적 책임도 책임이 있어야 묻는 것”(<조선일보> 1월2일치 인터뷰 기사)이라고 감쌌다.

 “최측근 그룹은 검사, 나머지 인사는 계장”?

2022년 8월 윤 대통령이 “신속하게 추진하라”고 했던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한 살 낮추는 방안과 관련해 큰 논란이 일자, 박순애 전 교육부 장관에게 정무적 책임을 물어 장관 취임 한 달 만에 사실상 경질한 것과도 전혀 다른 태도다.

이재근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윤 대통령은) 자기 경험에 의존해서 검사 때부터 알던, 경험상 믿을 수 있는 사람과 정치인·관료 출신의 그렇지 않은 사람을 나눠서 전혀 다르게 취급하는 것 같다”며 “조금이라도 다른 목소리를 내는 걸 극단적으로 싫어하는, 자신이 터득한 ‘상명하복’의 검찰 정서 속에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도 “이상민 장관을 덮어두고 편드는 것도 ‘상민이가 나가면 내가 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라며 “모든 사안을 승부로 보는 특별수사부 검사 시절 습관이 남아 있어 ‘정치’를 하기보다는 매사 상대가 항복할 때까지 승부를 거는 것 같다”고 풀이했다. 그는 “한동훈, 이상민 등 최측근 그룹은 ‘검사’, 비서실장이든 국무총리든 나머지 인사는 ‘계장’(검찰수사관)으로 나눠서 보는 것 같다”고도 꼬집었다.

이런 태도는 ‘윤석열식 정치’에서도 나타난다. 한동훈 장관을 통해 구축한 검찰 친정체제를 앞세워 ‘야권에 대한 사정 수사’에 집중하는 것이 ‘윤석열식 정치’의 핵심축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뒤 검찰은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북한 선원 강제 북송 사건’ 등 문재인 전 대통령을 겨냥한 수사와 ‘대장동 개발 비리’ ‘성남FC 후원금 의혹’ 등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표적으로 한 양 갈래 수사에 가장 많은 인력과 자원을 투입하고 있다. 이원석 검찰총장,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 고형곤 서울중앙지검 4차장검사 등 ‘윤석열 사단’으로 불리는 검사들이 이들 사건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반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등 김건희 여사 관련 사건이나 윤 대통령과 가까운 박영수 전 특별검사가 연루된 ‘대장동 50억 클럽’ 등의 수사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윤석열 대통령은 경험상 믿을 수 있는 사람과 정치인·관료 출신의 그렇지 않은 사람을 나눠서 전혀 다르게 취급한다. 대통령 되기 이전부터 알던 한동훈 법무부 장관. 연합뉴스

 정치인, 검사 시절 조사실에서 만났으니

“윤 대통령은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 크다. 야당과 협력하기보다 사정 수사로 돌파하는 것도 그런 점 때문이다. 특수부 출신 중에서도 윤석열, 한동훈은 수사할 때도 정무 감각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근 노조와 시민단체를 때리면서 지지율을 끌어올린 것으로, (윤 대통령이) 자신이 맞다고 더 확신하게 된 것 같다.” 한 검찰 간부의 해석이다. 한 검찰수사관은 “정치인, 관료도 다 (윤 대통령이 검사 시절) 조사실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거짓말하는 모습을 보고 안 좋은 인식이 생겼을 것이다. (그러니 야권에) 굽히고 들어가는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정치인, 특히 야당 정치인을 ‘부패 세력’으로 인식한다는 점은 윤 대통령의 평소 말과 행동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윤 대통령은 2022년 9월 이재명 대표의 여야 영수회담 제안을 거부했다. 그해 11월 국회의 첫 예산안 심사를 앞두고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에 “(다수당인) 야당에 구걸하지 말라”고 따로 주문하기도 했다.

이러한 대통령의 뒷배를 믿기 때문인지, 최측근 장관들이 국회 질의답변 과정에서 의원들을 상대로 큰소리치는 상황도 종종 연출됐다. 2022년 12월27일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상민 장관은 참사 당일 ‘늑장대응’을 지적받자 “이미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넘겼으니 늑장대응이 아니다”라며 질의한 야당 의원에게 화내다시피 답변했다. 이 장관은 이후 유가족들의 항의를 받고 자신의 발언에 대해 사과했다. 윤 대통령이 미국 순방 때 ‘이 새끼’라는 발언을 했다는 논란과 관련해,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묻자 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본인만 그렇게 옳다고 생각하세요?”라고 되받아치며 “(이 새끼가 아니라) 세모세모라고 한 겁니다”라고 소리쳤다.

한동훈 장관은 야당 의원들을 무시하는 듯한 말투를 구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2022년 8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장관이 대통령의 권한을 넘어설 수 있습니까. 너무 심플한 질문입니다”라고 말하자 “너무 심플해서 질문 같지 않다”고 말꼬투리를 잡는가 하면, 김남국 의원에게 발언을 제지당하자 “(내 말) 들으세요”라고 맞섰다. 윤 대통령의 아낌없는 신뢰에 거침없는 답변 태도까지 겹쳐 한 장관은 여권 지지층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한국을 이끌 정치 지도자’를 묻는 여론조사(한국갤럽, 2022년 12월)에서 한 장관은 10% 지지율을 기록했다. 이재명 대표(23%)에 이은 전체 2위, 여권에선 1위다. 전체 3위 홍준표 대구시장(4%)과의 격차도 제법 크다.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평가(한국갤럽 조사 기준)는 2022년 7월 둘째 주 이후 6개월째 ‘국정운영 잘 못한다’는 부정평가가 50%를 넘고 있다. 다만 2023년 1월 첫째 주 긍정평가는 37%로 국민의힘 지지율(35%)을 넘어섰다. 윤 대통령이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대표가 바뀌니 당이 달라졌다”는 문자메시지를 권성동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에게 보내 논란이 된 8월 첫째 주(24%)와 미국 순방 때 ‘이 새끼’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9월 다섯째 주(24%)에 견주면 긍정평가가 13%포인트 상승한 것이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윤석열식 정치’의 핵심축이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대통령 국정수행 긍정평가 > 국민의힘 지지율

긍정평가 상승의 배경에는 화물연대 총파업에 강경대응한 것이 보수 지지층 결속으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2023년 1월 첫째 주 긍정평가 이유 1위는 ‘노조 대응’(14%), 2위는 ‘국방·안보’(10%)였다. 윤 대통령은 <조선일보>와의 2023년 신년 인터뷰에서 “귀족노조와 타협해 연공서열 시스템에 매몰되는 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차별화하겠다”고 밝혔다.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은 “귀족노조 문제는 지금의 이중(정규직-비정규직) 임금체계와 이로 인한 노동자의 노동자 착취 문제다. 이를 풀자는 것은 노동계도 같은 입장이다. 그런데 정말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논의는 없고, 정부가 노동조합만 적대화하고 있다. 역대 어느 정부가 이렇게 균형을 잃은 적이 있느냐”고 비판했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은 “그간 국민의힘 지지층의 지지조차 받지 못하다가 2022년 11월21일 도어스테핑(약식회견) 중단으로 윤 대통령의 말실수가 줄어들고 이른바 ‘진보 때리기’로 지지율이 정상화된 수준”이라며 “대선 땐 이준석 전 국민의힘 당대표로 대표되는 젠더 이슈로 (젊은) 세대(유권자)와 연합했다면 이번엔 노동조합·시민단체 때리기 등 86세대(1960년대 출생, 1980년대 학번 세대) 때리기로 지지층 확장을 추구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2023년 1월5일 국민의힘 최고위원에 출사표를 던진 ‘윤석열 청년참모 1호’ 장예찬 청년재단 이사장이 △‘86 운동권’의 퇴장 △민주노총 해체 △가짜 보수 청산 등을 내건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은 보수언론과 보조를 맞춰가며 강경 일변도가 됐다. 2022년 12월26일 북한 무인기 영공침범 이틀 뒤 윤 대통령은 “1대가 내려오면 2대, 3대를 올려보내라”고, 2023년 1월4일엔 문재인 정부 때 작성된 ‘9·19 남북 군사합의’에 대해 “효력 정지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국민의 안전·생명을 위협하는 전쟁 상황이 초래될 수 있음에도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 등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

 “겉으로 강해도 굉장히 소심한 스타일”

미국 핵전력 공유 등 보수언론이 먼저 운을 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대통령실이 이를 받아들이는 모양새를 띠기도 한다. 윤 대통령은 <조선일보> 신년 인터뷰에서 “미국 핵전력을 한-미 공동으로 기획·연습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윤 대통령의 이 발언에 ‘아니다’(No)라고 부인해 머쓱한 상황이 연출됐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 중 민주당의 도움이 필요한 법 통과 사안이 많은데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건 결국 국민의힘 핵심 지지층을 의식한 전략적 판단으로 보여요. 왜 같은 편을 대상으로 한 정책만 내놓을까? 겉으론 강해 보여도 사실은 굉장히 소심한 스타일인 거 같아요. ‘국민의힘하고 분리되면 나는 끝난다’ 그런 불안감을 느끼는 거 아닐까요.”(김수민 시사평론가)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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