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칼럼] 헌법 44조 불체포특권, 남용하라고 준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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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헌법은 기본적으로 모든 국민의 평등권을 보장한다.
다만 평등권의 한계를 일부 규정해 놓은 대목이 있는데,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헌법 제44조)과 면책특권(헌법 제45조)이 대표적인 예다.
얼마 전 만난 헌법 전문가는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의 남용을 막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는 데 적극 동의했다.
헌법으로 보장된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 자체를 박탈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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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헌법은 기본적으로 모든 국민의 평등권을 보장한다. 다만 평등권의 한계를 일부 규정해 놓은 대목이 있는데,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헌법 제44조)과 면책특권(헌법 제45조)이 대표적인 예다.
불체포특권이란 현행범이 아닌 국회의원이 회기 중 국회의 동의 없이 체포나 구금되지 않는 특권을 말한다. 회기 전에 체포 또는 구금된 경우라도 국회의 요구가 있을 시 회기 중 석방될 수 있다. 17세기 초 영국의 의회 특권법에 처음 명문화됐다. 의회의 자주적 활동과 입법부에 대한 행정부의 부당한 탄압을 방지하는 데 의의를 둔다.
중요한 것은 불체포특권이 범법 행위에 대한 형사상 책임의 면제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수한 신분 덕에 회기 중에만 체포를 ‘일시적으로’ 유예 받는 특권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일시적 특권의 남용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2003년 여야 의원 7명의 체포동의안이 무더기로 본회의에 상정됐으나 전부 부결됐다. 국회가 정치적 이해관계를 우선시해 동료 의원들의 방탄 기관을 자처한 단적인 사례다. 최근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체포동의안이 올라왔을 때도 민주당은 다수당의 이점을 내세워 부결시켰다. 이재명 대표가 처음으로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자 민주당은 아예 단독으로 임시국회를 열었다. 당 대표를 지키겠다는 거대 야당의 속내가 드러난 예다.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은 의회의 자주성을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필수불가결하다. 그러나 남용으로 인한 폐해가 지속적으로 반복될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독일의 법학자 칼 라렌츠는 “법치국가에서 입법기관의 우위를 인정하는 법률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경우를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법률의 불가피한 흠결도 보충하고 법체제 내부 규범 사이의 모순과 가치평가상의 모순도 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의 경우, 남용된다면 평등권과 비례성의 원칙을 위배하는 모순을 낳을 수 있다.
얼마 전 만난 헌법 전문가는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의 남용을 막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는 데 적극 동의했다. 불체포특권은 의회 제도가 태동한 영국에서 유래한 것인데, 이 원칙이 다른 나라에 왔을 때 얼마 만큼의 타당성을 가지느냐, 그리고 그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취지로 도입된 법안이라도 우리 정당정치에 적용했을 때 여러 문제점과 부작용이 발생한다면 제도 보완은 불가피하다.
헌법으로 보장된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 자체를 박탈할 수는 없다. 다만 부분적인 보완은 위헌으로 보기 어렵다. 지난해 5월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하겠다고 했던 국회법 개정안을 대안의 하나로 꼽을 수 있다. 체포동의안 표결 시한을 72시간에서 48시간으로 대폭 단축하고, 표결 방식을 무기명 투표에서 기명 투표로 바꾸자는 내용이다. 이러면 적어도 다수당의 이점을 악용한 ‘묻지마 부결’은 방지할 수 있다. 체포동의안 의결정족수의 하향 조정도 하나의 보완책이 될 수 있다.
17세기 영국의 정치인 존 릴번은 저서 ‘영국에서의 생득권의 정당성’에 이렇게 썼다. “우리 국민들이 저 의원들을 선출할 당시, 그들에게 법을 무시하는 무제한의 권한을 부여하고, 그들 스스로 만든 법률과 규정들을 제멋대로 위반하는 것을 허용했다고 볼 것인가?” 입법부의 일시적 특권은 무제한 누려도 되는 권한은 아니다.
[노자운 법조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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