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사람에게 온 16만원, 그리고 계좌 정지… 사기인가요?
며칠 뒤 전 계좌 지급정지…발 동동”
‘지급정지’ 조항 악용해 수백만원 요구
금융사 중재 하에 피해자들 합의해야
국민 인식 개선 등으로 대포통장을 구하는 일이 어려워진 탓에 보이스피싱 조직 범죄가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 본인들이 해킹한 1차 피해자 계좌로 불특정 다수에게 소액을 송금해 2차 피해자의 전 계좌 지급정지를 유발한 뒤 이를 빌미로 돈을 뜯어내는 방식이다. 금융회사가 보이스피싱에 연루된 계좌를 지급정지할 때 명의인의 모든 계좌를 정지하는 관행을 악용한 수법이다.
19일 금융소비자연맹은 이 같은 보이스피싱 사기가 최근 성행하고 있다며 소비자주의보를 발령했다.
우선, 사기는 보이스피싱 조직이 1차 피해자 금융정보를 탈취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들은 문자나 메일, 소셜미디어(SNS) 등으로 악성코드를 보내 이를 클릭한 이들의 계좌번호와 비밀번호 등을 알아낸다. 이 상태가 되면 보이스피싱 조직은 1차 피해자의 계좌에서 자유롭게 송금을 할 수 있다.
조직은 이후 인터넷 등을 통해 2차 피해자를 물색한다. 개인사업자여서 계좌번호를 인터넷에 올려놓는 이들이 주 타깃이다. 대부분의 개인사업자는 대출이 있기에 추후 통장이 정지됐을 때 협박이 용이하단 점도 고려된다.
이들은 1차 피해자 계좌로 2차 피해자 계좌에 5만~20만원가량의 소액을 입금한다. 이후 즉시 1차 피해자인 척 금융기관에 ‘나도 모르는 새 송금이 됐다’며 지급정지를 신청한다. 지급정지를 요청받은 금융기관은 사기이용 계좌로 의심할 만한 사정이 있다고 판단하면 계좌를 정지한다. 현행법상 피해금을 송금한 계좌를 관리하는 금융기관에도 이를 알려야 해 이를 안내받은 금융기관도 통상적으로 지급정지를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1·2차 피해자의 모든 계좌가 지급정지가 되는 것이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모든 계좌가 지급정지돼 난감해 하고 있을 2차 피해자에게 연락해 “지급정지를 풀어줄테니 200만원을 달라”는 식으로 이들을 협박한다. 이기동 한국금융범죄예방연구소장은 “돈을 보내더라도 보이스피싱 조직이 계좌 정지를 풀어줄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금융소비자연맹 강형구 사무처장은 “2차 피해자에게 최대 300만원까지 요구한 사례도 있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런 사기 수법으로부터 빠져나오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금융기관 중재 하에 송금인(1차 피해자)과 수령인(2차 피해자)이 합의를 하는 것이다. 정체불명의 소액이 입금되면 금융기관에 전화해 상황을 설명한 뒤 담당자를 연결받고, 범죄 연루 정황이 없는 걸 입증하면 된다. 이 경우 비교적 빠른 시일 내 계좌 정지를 풀 수 있다.
보이스피싱 조직의 이 같은 사기는 ‘지급정지’를 명문화한 현행법을 악용한 것이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014년 개정된 통신사기피해환급법엔 보이스피싱 조직이 범죄수익금을 빠르게 인출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지급정지 조항이 포함됐다. 이후 지급정지 제도가 활발히 활용돼 범죄수익금 인출이 어려워지자 이를 악용해 또 다른 사기를 벌이는 것이다.
금융소비자연맹은 “지급정지 제도는 1차 피해자인 송금인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반면에 선의의 2차 피해자에게는 금융거래의 불편을 초래한다”며 “전 계좌 지급정지보다 신고된 액수만큼을 지급정지하고 (나머지에 대해선) 금융거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희진 기자 he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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