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레슬러 조경호가 기억하는 최고의 슈터는?
1970년대까지만해도 프로레슬링은 국내에서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스포츠 중 하나였다. ‘박치기 왕’ 김일의 인기는 전 국민적이었으며 장영철, 천규덕, 안명길, 이석윤 등 쟁쟁한 프로레슬러들이 한시대를 누볐다. 텔레비전이 귀한 시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경기가 있는 날은 만화가게, 동네회관에 삼삼오오 모여 함께 응원하며 환호했을 정도다.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연령층에 관계없이 모두가 즐겼던 흔치않은 종목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들어 인기를 폭락하기 시작했고 현재는 일부 매니아들만의 볼거리로 전락한지 오래다. 그마저도 국내선수들의 경기보다는 WWE 등 해외단체 경기에 집중되어 있다. 고 이왕표 등의 원로 프로레슬러들이 사망하는 그 순간까지 고군분투했으나 한번 식어버린 열기는 좀처럼 살아나지않고있는 분위기다.
그런 가운데서도 ‘아직 국내 프로레슬링은 죽지않았다’고 외치는 이들이 있다. 남들이 알아주던 알아주지않던 간에 프로레슬러에 대한 자부심을 버리지않고 좀 더 멋진 경기를 만들어내기위해 쉴새없이 링바닥을 향해 몸을 날리고 또 날린다. 이들에게 프로레슬링은 꿈이자 인생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3time PWS 챔피언 출신이자 전천후 테크니션으로 불리는 '언터처블' 조경호(36·한국프로레슬링연맹) 역시 그러한 인물중 하나이다. 그런 그에게 프로 농구에 대해 물었다.
“솔직히 많이 부럽죠. 농구 인기가 줄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지만 프로레슬링에 비하면 완전 메이저 스포츠입니다. 동네만 가더라도 근처 농구 골대에서 즐기는 이들은 쉽게 찾아 볼 수 있잖아요. 그게 바로 농구의 인기가 밝다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프로레슬링은 유명한 선수가 누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이들이 태반입니다”
어린 시절 우연히 TV에서 WCW 전설의 선수들인 골드버그와 브렛하트의 경기를 보면서 프로레슬링에 빠지게된 그는 이후 직접 선수로 뛰면서부터는 숀 마이클스나 크리스 제리코, AJ 스타일스 같은 선수들에게 많은 영감을 받았다. 처음에 열광했던 선수는 골드버그다. 큰 체구에서 뿜어나오는 압도적 파워가 동경심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이후 자신처럼 크지않은(프로레슬러 기준) 사이즈에도 가지고있는 무기를 잘 활용해 경기를 펼쳐나가는 선수들에게 매력을 느끼게 됐다.
그런 점에서 비록 종목은 다르지만 '캥거루 슈터'라는 별명으로 한시대를 풍미한 조성원(51‧ 180cm) 전 창원 LG 감독 또한 그에게는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스포츠 스타다.
“지금은 여유가 줄어들었지만 어린 시절에는 프로농구도 곧잘 챙겨봤어요. 특히 현대(현 전주 KCC)의 팬이었던지라 꽤나 많은 관심을 가지고 응원했던 기억이 납니다. 자로 잰듯한 패스와 특유의 센스로 게임을 조율하던 컴퓨터 가드 이상민, 제가 볼때는 정말 여기저기서 요란하게 게임에 관여하는데 언론에서는 소리없이 강한 남자라 불렸던 추승균 등 매력적인 선수가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저는 4쿼터의 사나이라고 불리던 조성원을 정말 좋아했어요”
프로레슬러들에게는 이른바 각자를 대표하는 필살기라는게 존재한다. 난적을 만나 고전을 거듭하다가도 필살기로 경기를 뒤집어버리면서 팬들을 열광시키는 경우도 자주 찾아볼 수 있다. 조경호같은 경우 공중에서 몸을 앞으로 회전해서 등으로 상대를 강타하는 ‘스완턴 밤’이라는 공중기를 데뷔초부터 내세웠으나 이후 국내에서 경기할 당시 링 상태가 좋지못하고 체중도 불어나기 시작하면서 허리와 발목에 무리가 오자 ‘샤이닝 위쟈드'라는 스텝업 니킥과 '문설트'로 필살기가 바뀐 상태다.
“종목을 떠나 위기상황에서 한순간에 흐름을 바꿔버리는 퍼포먼스는 누구라도 열광하지 않을까 싶어요. 조성원이 당시 어린 저에게 그런 존재로 다가왔어요. 사실 정교한 슛을 가진 슈터는 적지않지만 그중에서도 특별한 슈터가 있어요. 만화 슬램덩크에서 ’불꽃 남자‘라고 불리던 정대만처럼 조성원 또한 그랬어요. 저 상황에서 슛이 들어가네. 아닛! 저걸 성공시켜! 그런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죠. 응원팀 선수라서 엄청 듬직했지만 상대팀 선수라면 정말 얄미웠을 듯 싶어요”
조성원은 2번으로 주로 뛰었지만 사실상의 포지션은 스몰포워드다. 일반적인 슈팅가드와는 움직임이나 플레이스타일이 다소 달랐다. 무엇보다 포지션 대비 사이즈가 너무 작은지라 키 큰 선수들의 집중공략 대상이 되기도했지만 특유의 스피드와 운동능력 거기에 폭발적인 3점슛 능력을 앞세워 실보다 많은 득을 가져갔다.
“프로레슬러들도 크지만 농구선수들도 사이즈하면 각 종목을 통틀어서 최상위권이잖아요. 그런 거인들 틈속에서 자신만의 필살기를 앞세워 경기를 지배하는 조성원은 흡사 작은 거인같았어요. 경기를 지고있는 가운데 종료가 얼마 남지않았어도 조성원이 있기 때문에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않았어요. 왠지 그라면 뭔가 해줄 것 같았거든요. 실제로 그런 경우도 많았고요. 과거 이충희, 문경은부터 최근 핫한 전성현까지 역대급으로 불리는 슈터는 여럿 있어왔지만 저에게 최고는 단연 조성원입니다”
조경호는 무한도전 프로레슬링 특집, 태권도 대표선수 출신 배우 이동준과의 킥복싱 친선경기 등 프로레슬링 인기 회복을 위한 활동을 쉬지않고 있다. 다소 지칠만도 하지만 에너지는 여전히 끓어오른다. 현역 시절 3점슛 한방으로 승부를 바꿨던 조성원이 그랬듯 프로레슬링 또한 터닝포인트가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KBL 제공,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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