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란 듯’ 건설노조 대대적 압수수색···진짜 ‘채용강요’ 때문일까?

경찰이 전날 국가정보원과 함께 민주노총 본부를 압수수색한 데 이어 19일 양대노총의 건설업 노조 사무실에도 압수수색에 들어갔다. 경찰은 ‘건설현장 불법행위’ 혐의를 이유로 들었는데 건설업계의 특수성 상 통상적인 노조활동에도 불법 딱지를 붙일 수 있어 노동계에서는 ‘노조 탄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화물연대 파업 이후 건설노조로 과녁을 돌린 정부가 본격적으로 ‘노조 때리기’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는 19일 서울 영등포구 민주노총 전국건설노조 서울경기북부지부 등 8개 노조의 사무실 14곳을 압수수색했다. 한국노총 한국연합건설노조와 한국노총에서 제명된 건설산업연맹 사무실 3곳 등도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됐다. 경찰은 건설노조가 건설현장에서 조합원 채용을 강요하고 각종 명목의 돈을 요구했다고 보고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상 공동공갈·강요 등 혐의를 적용했다.
정부는 건설노조가 채용·월례비(급여 외에 별도로 지불하는 돈) 강요 등 불법행위를 저지른다며 꾸준히 탄압해 왔다. 특히 지난해 겨울 화물연대 파업을 강경 제압한 뒤로 건설노조를 향한 압박은 더 심해졌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화물기사처럼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되는 건설노동자를 ‘사업자’로 보고 조사했다. 국토교통부도 실태조사 등으로 적극 가세했고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연일 강경 발언을 이어갔다. 경찰이 압수수색에 나선 날 국토부는 건설사 118곳이 노조에 1686억원의 월례비·노조전임비 등 지급을 강요당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도 최근 경기 김포의 한 신축공사 현장을 찾아 4월부터 건설현장의 ‘채용강요’ 집중 점검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수사기관이 말하는 ‘채용강요 불법행위’는 건설업 노조들이 여러 건설현장에서 조합원을 채용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을 말한다. 정해진 사업장이 없이 현장마다 계약을 맺는 건설노동자 특성상 건설노조들도 ‘초기업 노조’ 형태로 운영된다. 수시로 바뀌는 현장마다 조합원의 고용을 보장하는 것이 가장 큰 의제다. 단체협상도 개별 사업장이 아니라 업계 협회 등을 상대로 이뤄지며, 조합원 채용 관련 내용은 법적으로 강제조항을 둘 수 없어 ‘최대한 노력한다’ 등 양해조항으로 협약서에 담곤 한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건설현장이 개설되면 노조가 조합원 고용을 요청하고 임금 조건 등을 협의한다”며 “이 같은 모든 행위들을 다 불법으로 몰아세우는 것”이라고 했다. 채용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협박이나 위화감 조성이 없었더라도 주관적으로 불법행위라는 굴레를 씌울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주장하는 ‘월례비 강요’ 등 행위도 업계 전체의 관행이라 건설노동자만의 잘못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월례비란 타워크레인이 하지 않아도 될 작업을 건설사가 시킨 뒤 얹어주는 돈이다. 건설사가 새 장비를 섭외하는 대신 현장마다 1대씩은 있는 타워크레인 기사에게 작업을 부탁하면서 월례비 관행이 생겼다는 게 노조 측의 설명이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관계자는 “돈을 더 벌기 위해 월례비를 높게 요구하는 일부 일탈행위가 있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노조는 오히려 월례비를 안 받는 대신 하지 않아도 될 작업을 시키지 말라고 요구하며, 과도한 일탈은 자체 징계하고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건설사가 공사 이윤을 남기기 위해 시작한 관행인데, 일부의 일탈을 이유로 모두 다 노조의 불법이라고 부르는 것은 무리수”라고 했다.
수사기관의 전방위적 압수수색과 정부의 여론전이 전형적인 ‘노조 때리기’라는 지적도 나온다. ‘건설노조 불법행위’ 문제는 지난 정부에서도 있었던 일이지만, 이번처럼 대대적인 여론전을 펼치는 일은 흔치 않다는 평가다.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건설노동자의 고용안정 활동은 노조의 기본적 책무이자 초기업적 노조의 필수 불가결한 활동”이라며 “안정된 고용을 위한 제도적 장치에 대한 논의가 없는 불법행위 근절 조사와 강압적 압수수색은 노조만을 대상으로 한 공안탄압”이라고 했다.
이지현 한국노총 대변인은 “건산연맹은 지금 한국노총에서 제명됐지만, 소속과 상관없이 이번 압수수색은 노조를 비리집단으로 몰고 정부로 향한 비난의 화살을 노조로 돌려 반사이익을 취하려는 다분히 의도적인 행위”라며 “건설현장에서 일어나는 대형 재개발·재건축비리, 수억원대의 부정청탁과 불법재하도급 등 토착비리엔 눈감으면서 만만한 노동자 때리기나 하는 정부의 꼴이 볼썽사납다”고 했다.

노동계는 지난 18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본부 압수수색에 이어 이틀째 이어지는 전방위적 압수수색은 “공안탄압” 이라고 규탄했다. 국정원과 경찰은 18일 민주노총 간부 1명의 신체와 사무실 자리 등을 압수수색하겠다며 경찰 700여명을 동원해 건물 전체를 포위하고 출입을 통제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19일 오전 민주노총 교육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경찰은 확성기로 압수수색 사실을 동네방네 떠들고, 신분을 드러내길 꺼려온 국정원은 국가정보원이라고 적힌 옷을 입고 홍보하듯 들이닥쳤다”며 “대통령의 외교참사 등 실책을 덮기 위한 목적이며 정권에 쓴소리를 멈추지 않는 민주노총의 입을 막으려는 공안탄압 색깔공세”라고 했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윤석열을 파면한다’ 문자 노출한 치킨점에 이행강제금 부과···인천 남동구 “옥외광고물
- “일 홋카이도에서 규모9 지진 발생 임박···400년 만의 초대형 지진”
- 금 3000돈 들고 잠적한 금은방 업주 지인 구속···“증거인멸·도주 우려”
- ‘실물 교도소’ 보존 공간 둘러본 시민들 77%가 “사형제 찬성”
- ‘윤어게인’ 외친다는 전한길 음악회···태진아·이재용 이어 소프라노 정찬희도 “불참”
- 유시민 “미친 짓” 비판 ‘공소취소모임’, 민주당 의원 65% 참여 출범…“국정 조사 추진”
- ‘전쟁 4년’ 우크라 인구 1000만명 감소 분석···“최악의 인구 위기”
- ‘이재명 정부 비판’ 이학재 인천공항 사장, 인천시장 출마···25일 사직
- 경찰, 김성훈 전 경호처 차장 ‘해군 선상파티’ 피의자 조사
- 이 대통령, “영원한 동지” 룰라 최고 예우…포옹 환대로 시작해 ‘치맥 회동’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