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에 최신 탱크 지원…독 “미국이 하면”, 미 “우린 어려워”
[러, 우크라 침공]
해를 넘긴 전쟁의 향방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될 것으로 보이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주력 전차’(탱크) 지원과 관련해, 독일이 “미국이 하면 우리도 하겠다”는 조건을 걸었다. 미국은 “우리는 어렵다”면서 독일 설득에 나서는 등 두 나라 간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이번주 예정된 양국 국방장관 회담에서 해결 가닥이 잡힐지 눈길을 모은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최근 비공개회의 등에서 여러차례 “독일이 레오파르트2 탱크의 지원을 허용하려면 미국도 에이브럼스 탱크를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18일 익명의 독일 당국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독일 언론 <쥐트도이체 차이퉁>도 숄츠 총리가 전날 이뤄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같은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현재 동부 돈바스에서 러시아와 격전을 벌이고 있는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군의 공세를 막고 반격에 나서려면 탱크가 필요하다며 서방에 지원을 강력 요청하고 있다. 폴란드·핀란드·덴마크 등이 자국의 레오파르트2를 지원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지만, 제작국인 독일의 승인이 있어야 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이 14일 자신들의 주력인 챌린저2 탱크의 지원을 약속하며 결단을 압박하는 모양새를 연출하자, 독일이 미국의 ‘동시 지원’을 조건으로 걸면서 대서양 저쪽 편으로 공을 넘긴 것이다. 숄츠 총리는 16일 시작한 올해 다보스포럼에서 탱크 지원을 머뭇거리는 까닭에 대한 질문을 받고 ‘우크라이나 전쟁이 전세계의 대재앙으로 전이될 수 있다’는 우려를 감추지 않았다.
미국은 현재로선 에이브럼스를 지원할 뜻이 없다는 입장이다. 콜린 칼 미 국방부 정책차관은 이와 관련해 “미국은 아직 거기까지 안 갔다”고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그는 “에이브럼스는 매우 복잡하고 비싸다. 훈련하기 힘들고 제트 엔진이 장착돼 있어 유지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미국은 지난달 21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미국 방문에 맞춰 브래들리 장갑차 지원을 약속한 바 있다. 보병 수송 등에 사용되는 브래들리는 에이브럼스보다 장갑의 두께나 화력 등에선 뒤지지만, 25㎜ 기관포와 토(TOW) 미사일 등을 장착하는 등 경전차급 전투 역량을 지녔다. 미국 당국자는 “다음에 추가 지원할 장비로 캐나다에서 미 육군용으로 생산하는 스트라이커 장갑차가 예상된다. 에이브럼스는 아직 지원 계획에 없다”고 말했다.
미국은 독일이 레오파르트2 지원에 나서도록 설득할 방침이다. 이날 독일 방문길에 오른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은 19일 독일의 신임 국방장관 보리스 피스토리우스를 만난다. 이튿날인 20일엔 독일 람슈타인에 자리한 미군 공군기지에서 미국이 이끄는 ‘우크라이나 국방연락그룹’(UDCG) 회의가 예고돼 있다. 우크라이나 국방연락그룹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 등 약 50개국이 참여하는 협의체다. 이 자리에서 탱크 지원 문제 등이 중점 논의될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군의 주력인 T-72 탱크는 1970년대 초반 옛소련에서 생산된 낡은 모델로 이라크 전쟁과 체첸 내전 등에서 여러 약점을 노출했다. 반면, 독일의 레오파르트2는 세계 최고 수준의 성능을 자랑하는 탱크로 꼽힌다. 두꺼운 장갑을 둘러 무게가 60t에 이르며 120㎜ 활강포를 장착해 5㎞ 거리의 적을 제압할 수 있다. 독일의 자체 지원 여력은 15대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유럽 전체에서 대략 2천여대가 운용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교착상태를 보이는 동부와 남부 전선에서 돌파구를 마련하려면 최신예 탱크가 필요하다며 서방에 300여대의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다보스포럼 화상연설에서도 탱크의 조속한 지원을 촉구하며 “서구의 탱크 지원이 러시아 탱크의 추가 진격에 앞서서 이뤄져야만 한다”고 말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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