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이하늬 "'천만 배우'되면 많은 게 바뀔 줄 알았죠" [인터뷰]
[스포츠투데이 서지현 기자] 결혼과 임신, 출산을 겪은 배우 이하늬가 돌아왔다. 촬영 당시와 개봉 현시점에서 이하늬의 삶은 넓어졌다.
18일 개봉한 영화 '유령'(감독 이해영·제작 더 램프)은 1933년 경성, 조선총독부에 항일조직이 심어 놓은 스파이 '유령'으로 의심받으며 외딴 호텔에 갇힌 용의자들이 의심을 뚫고 탈출하기 위해 벌이는 사투와 진짜 '유령'의 멈출 수 없는 작전을 그린 영화다.
이하늬가 '유령'을 만난 계기는 특별하다. 이해영 감독이 애초에 시나리오 작업 당시 '박차경' 역할에 이하늬를 일찌감치 점찍어둔 덕분이다.
이에 대해 이하늬는 "처음에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주셨다. 너무 감사하게도 '차경이라는 역할인데 한 번 읽어봐 줘. 너를 염두에 두고 썼어'라고 하시더라"며 "그게 배우로서 굉장히 영광스러운 말이었다. 사실이든, 아니든"이라고 말했다.
이어 "배우가 작품을 선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작품이 되게 운명적으로 오는 게 많다고 생각한다"며 "이해영 감독님의 프라임타임 안에, 제가 액션을 소화할 수 있는 나이대에, 그 모든 종과 횡이 만나서 '유령'을 하게 된 것 같았다"고 이야기했다.
극 중 이하늬가 연기한 박차경은 총독부 통신과 암호문 기록 담당이다. 동시에 유력한 '유령' 용의자다. 박차경은 자신의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응축된 인물이다.
이하늬는 박차경에 대해 "1차원적이지 않다. 슬픔이나 기쁨, 분노를 1차원적으로 쏟아내지 않는 인물이다. 감정을 깊고, 깊게 눌러서 표현한다"며 "슬픔조차 깊은 동굴 100층까지 뚫려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제가 살아가고 있는 21세기 현재에 겪는 슬픔과는 차원이 다른 슬픔을 겪고 있는 인물일 테다. 그 부분에 집중했다. 찰랑찰랑한 잔에 꽉 채워진 슬픔을 쏟아내지 않고, 그 찰랑이는 감정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조금 고통스럽긴 했다"고 털어놨다.
특히 박차경은 긴 대사로 감정이나 상황을 표현하는 인물이 아니다. 표정으로, 몸짓으로 감정을 드러내지만 그마저도 폭이 넓지 않다. 그런 박차경이 뱉는 대사는 '살아. 죽어야 할 때, 그때 죽어'다.
해당 대사와 관련해 이하늬는 "대단히 슬픈 이야기다. 저는 삶을 노래하면서 '삶이 찬란하다'고 하는데, 죽음을 항상 생각하는 삶은 어떤 삶일까"라며 "찰랑찰랑한 감정들을 갖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그 선을 유지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이하늬는 "이번에 연기하면서 느낀 건 제가 어쩔 수 없는 감정들도 있더라. 유리코(박소담)와 대면하는 장면에서 찍으려고 하면 자꾸 눈물이 났다. 울음이 날 대사가 아닌데 자꾸만 '또르륵' 흘렀다. 이걸 마른 눈물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며 "실제 제 성격이면 슬플 때 목놓아 울거나 뛰어다녔을 거다. 그런데 참고 참고 참아서 나중엔 '비장이 끊긴다'는 표현처럼 속이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울고, 깊이 있는 연기를 해도 이런 건 처음이었다"고 고백했다.
이하늬와 박차경은 감정의 폭부터 이를 표현하는 방식부터 다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른 두 인물은 '유령'을 통해 하나가 됐다.
이하늬는 "박차경은 대사로 푸는 캐릭터가 아니다. 시퀀스 하나하나가 굉장히 소중하고 압축적이었다. 어떻게 보면 무모할 수도 있는 싸움을 본인도 알면서 계속한다. 고민하지 않고 그냥 하는 것이 박차경이다"라고 해석했다.
'유령' 촬영 당시와 개봉 시점까지 '인간 이하늬'에겐 많은 순간들이 지나쳐왔다. 결혼부터 임신, 출산, 육아를 모두 경험한 시간이었다. '배우 이하늬' 타이틀에 더해 '아내 이하늬' '엄마 이하늬'가 따라붙었다.
동시에 삶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이하늬는 "저는 예전부터 책임감이 많아서 죄책감도 그만큼 컸다. 누군가를 보면 책임지고 싶어 하는 성향이 강해서 그에 반해 제 마음이 그만큼 해주지 못했을 때 너무 미안했다"며 "이젠 '인간 이하늬'한테도 숨통을 주고 싶다. 선택을 할 땐 이왕이면 좀 신나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한 이하늬는 "제 감정은 제가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을 할 땐 신나게 감사하게 하고, 집에 돌아갔을 땐 아이를 보며 경이로워 진다"며 "이건 49와 51의 싸움이다. 제가 51%의 기쁨을 갖는다면 49%의 슬픔이 완전히 없어지진 않더라도, 제가 그 방향을 선택할 순 있을 거다. 그래서 모든 걸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이야기했다.
이와 함께 이하늬는 "전 제가 '천만 배우'가 되면 많은 게 바뀔 줄 알았다. 엄청난 연기력을 가진 독보적인 배우가 될 줄 알았다"며 "근데 똑같다. 너무 감사하지만 '극한직업'도 제가 잘해서 된 것이 아니다. 심지어 동료들이 잘해서도 아니다. 그건 그냥 기적과 선물이다. 신의 영역은 신에게, 인간의 영역에서 제가 할 일은 그저 최선을 다해서 사는 것뿐"이라고 덧붙였다.
동시에 자신의 배우 인생도 돌아봤다. 이하늬는 "아이를 낳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진 않다. 전 정말 열심히 살았다. 그렇기 때문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어 "저에겐 돌이 굴러서 이끼가 끼는 시간이 필요했다. 배우에겐 삶의 시간도, 경험도, 연륜도 필요하다. 단순한 스킬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가 익어야만 나오는 연기가 따로 있다"며 "제가 30대 초반에 스스로 '10년만 버티자'고 다독였다. 일단 굴러보기로 했다. 이제 거의 10년 정도 지나니까 '이끼가 조금 꼈나' 싶은 정도"라고 웃음을 보였다.
그렇다면 향후 '배우'이자 '엄마'인 이하늬는 어떤 모습일까. 이에 대해 그는 "전 굉장히 초보 엄마다. 마흔이 코앞이고, 그동안 굉장히 많은 경험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생각하는데 한 인간을 키우는 건 매일이 처음"이라며 "'이렇게 처음인 게 계속 있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다시 한번 깨달으면서 너무 신선하고 좋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하늬는 "(엄마와 배우 사이) 밸런스에 대한 두려움이 있지만 굉장히 재밌다. 새로운 프로젝트 같다"며 "작품 선택에도 변화가 있을 것 같다. 어떤 부분에 대해선 포용력이 생긴 것 같다. 성인이 된다는 건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을 무기력하지 않게 내려놓을 수 있게 된다는 것 같다. 제 의지대로 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이건 무기력함이 아니라 어찌 보면 당연한 부분이다. 제 스스로 여유가 생긴 것 같다"고 인사했다.
[스포츠투데이 서지현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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