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은 소송에서 이겨도 지는 셈" 롯데와 힘든 싸움 시작한 정지원 알고케어 대표
투자차 만난 롯데헬스케어에서 비슷한 기기 개발해 '아이디어 도용'으로 법적 소송 준비
법학전문대학원을 나와 국내 최대 법무법인 김앤장에서 4년간 변호사로 일한 정지원(39) 알고케어 대표는 2019년 11월 디지털로 건강을 관리하는 신생기업(스타트업)을 창업했다. "변호사도 재미있지만 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인공지능(AI)과 연예오락, 건강관리 3가지를 놓고 고민했는데 AI와 연예오락 분야에서 구글과 디즈니를 이기고 1등이 될 수 없고, 건강관리라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건강관리를 위해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대표적 일이 두 가지, 운동과 영양제 복용이다. "그동안 운동은 피트니스센터 등 많이 발전했지만 영양제는 예전과 다름없이 똑같은 약을 같은 방식으로 먹고 있어요. 이를 바꾸고 싶었죠."
정 대표는 창업부터 하고 두 달간 무엇을 할지 고민했다. 그러다 2020년 1월 TV에서 다큐멘터리를 보고 영감을 얻었다. "노부부가 수십 종 영양제를 사놓고 매일 분량을 조절하며 먹는 것을 보고 디지털 자동화를 통해 사람들의 시간과 비용, 수고로움을 덜어주는 사업을 구상했어요."
개인 건강 체크해 자동으로 영양제 배합해 주는 기기 개발
그것이 특허를 받은 개인 맞춤형 영양제 공급기 '뉴트리션 엔진'이다. 이 제품은 앱으로 개인정보를 등록하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데이터 3법으로 허용한 개인 의료 정보만 불러와 건강 상태에 적합한 영양제를 매일 조합해 준다. 병원에 다녀오면 서버에 갱신된 의료 데이터를 불러와 여기 맞는 영양제를 다시 배합해 준다. "비타민, 멀티 미네랄, 철분, 칼슘, 유산균 등 시중 영양제의 90% 성분을 기기에 꽂는 8가지 카트리지를 통해 매일 공급받을 수 있어요."
내용물이 변질되지 않도록 밀봉된 카트리지는 쌀알만한 4㎜ 크기로 만든 영양제를 제공한다. "약대 출신 직원들 및 제약사들과 상의해 용량을 조절하기 가장 좋은 용량인 4㎜로 영양제 크기를 결정했어요."
3월 출시 예정인 이 제품은 세계 최대 정보기술(IT) 박람회인 미국 CES에서 올해 포함 3년 내리 혁신상을 받았다. "가정용과 기업용 두 가지로 나와요. 판매 가격을 60만~70만 원대로 검토 중인 가정용은 정수기처럼 월 3만 원씩 받고 대여도 해 줄 예정입니다."
기기는 3년 2개월 만에 완성됐다. “약사, IT 개발자 등으로 구성된 34명 직원이 1년 동안 개발했어요. 그런데 국내 외주업체를 선정해 양산 제품을 제조하는 데 오래 걸렸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물류가 차질을 빚어 부품 공급이 어려웠어요."
"스타트업은 소송에서 이겨도 지는 셈"
그런데 2021년 9월 롯데벤처스와 롯데헬스케어가 투자 협상차 찾아오며 일이 꼬였다. "롯데헬스케어에서 회사 설립을 앞두고 무슨 사업을 할지 계획이 없다며 같이 해보자고 찾아왔어요."
정 대표는 절대 따라하거나 사업을 빼앗을 생각이 없으니 얘기해 보라는 롯데헬스케어 측 말을 믿고 뉴트리션 엔진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그런데 한 달 뒤 롯데에서 라이선스 비용을 내고 제품을 만들겠다며 말을 바꿨어요. 그때 롯데는 알고케어 제품을 보고 사업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했죠."
이에 대해 롯데헬스케어 관계자는 "정 대표의 설명을 듣고 기기 가격이 비싸고 대량 생산이 힘들어 사업성이 없다고 판단했다"며 "그래서 알고케어와 다른 방식의 자동 영양제 공급기를 개발했다"고 반박했다. 롯데헬스케어가 만든 '캐즐'은 알고케어처럼 카트리지에서 여러 가지 영양제를 조합해 공급하는 방식은 같지만 카트리지를 밀봉해 제공하는 알고케어와 달리 이용자가 다양한 영양제를 선택해 담을 수 있도록 개방형 카트리지를 제공한다.
하지만 정 대표는 핵심 아이디어를 롯데헬스케어가 도용했다고 주장했다. 정 대표 사업의 핵심은 여러 약을 섞어 제조 판매하는 것을 금지한 건강기능식품법을 개별 카트리지로 조합해 공급하는 기발한 방법으로 피해 간 아이디어다. 식약처에서도 법 위반 여부를 묻는 그의 문의에 문제없다며 유권 해석을 했다. "롯데헬스케어도 기발한 방법이라며 똑같이 감탄했어요. 그러면서 아이디어를 베끼지 않겠다고 계속 강조해 그 말을 믿었죠."
롯데헬스케어는 캐즐을 5월부터 판매할 예정이다. 롯데헬스케어 관계자는 "캐즐은 사물인터넷(IoT)을 이용한 장치일 뿐 건강 관련 제품과 정보를 총망라한 헬스케어 플랫폼이 핵심"이라며 "헬스케어 플랫폼은 4월에 시험 서비스를 시작해 8월에 정식 개설한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아이디어 도용에 대해 항의하고 사과를 요구했지만 롯데헬스케어에서 제품 개발을 강행하자 법적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부정경쟁방지법에 아이디어 도용을 금지한 조항이 2년 전 신설됐어요. 부정거래방지법에 따라 아이디어 도용과 영업비밀 침해로 소송을 제기하고 공정거래법상 사업활동 방해로 공정위 신고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변호사이기도 한 그는 롯데와 힘든 싸움을 예상한다. "스타트업은 소송에서 이겨도 지는 셈이에요. 스타트업의 1시간과 100만 원이 대기업과 같을 수 없죠. 그만큼 힘든 싸움이 될 것으로 보지만 대놓고 아이디어를 훔쳐가고 무리하게 사업하는 롯데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죠."
롯데헬스케어도 맞대응을 예고했다. 롯데헬스케어 관계자는 "알고케어의 아이디어가 무엇이 특별한 것인지 모르겠다"며 "문제없이 가고 싶지만 알고케어에서 소송한다면 똑같이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연진 IT전문기자 wolfpa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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