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법 1년] 시행 첫돌에 수술대로…전문가들 "규정 명확히"
일각서 '처벌 강화' 주장도…노동부, 6월까지 개선방안 마련
(서울=연합뉴스) 이영섭 홍준석 기자 = "법 제정 이후 사회적 경각심은 매우 높아졌지만, 적용 대상인 50인 이상 기업에서 중대재해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오는 27일 시행 1년을 맞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 권기섭 고용노동부 차관이 내놓은 평가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으로 상시 근로자 50인 이상(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원 이상) 사업장에서 중대한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와 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이런 규정은 상시근로자 50인 미만 사업장과 공사금액 50억 미만 공사장에는 2024년부터 적용된다. 5인 미만 사업장은 적용대상 밖이다.
여기서 중대산업재해란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하거나, 같은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를 받아야 하는 부상자가 2명 이상 나오거나, 동일한 원인으로 직업성 질병에 걸린 자가 1년 이내에 3명 이상 발생하는 경우다.
'일하다 죽지 않는 세상'을 만들 거란 기대를 받으며 중대재해처벌법은 닻을 올렸다. 법 시행으로 사업주와 경영자가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안전 문제에 공을 들일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그러나 경영계는 우려스러운 표정을 보였다.
처벌 대상인 '경영책임자'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볼지 명확하지 않고 '안전보건 관리체계의 구축·이행'처럼 기업의 의무를 추상적으로 설정한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노동부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사업주와 경영책임을 처벌하기보다는 사고를 예방하는 데 초점을 둔 법이라고 강조했다.
노동계는 노동계대로 불만스러웠다.
상시근로자 50인 미만 사업장과 공사금액 50억 미만 공사장에서 법 시행을 유예하고 5인 미만 사업장은 아예 적용 대상에서 빠져 빈틈이 많다는 지적이다.
시행령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직업성 질병'에 과로사 등의 원인으로 꼽혀온 뇌·심혈관계 질환을 포함하지 않아 법률의 취지를 더 후퇴시켰다는 비판이 나왔다.
1년 동안 중대재해처벌법을 시행한 결과도 반쪽이었다.
법 적용 대상인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작년 발생한 사망사고는 230건으로 전년(234건)보다 불과 4건(1.7%) 감소했다. 사고 사망자는 같은 기간 248명에서 256명으로 8명(3.2%)이 오히려 늘었다.
노동부 관계자는 이런 결과에 대해 "안전보건 관리체계를 입증하기 위한 서류 작업이 많다 보니 (사고) 예방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평가가 있다"며 "작년 같은 경우 대형 사고가 잦았던 영향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빠르게 기소되고 판결이 나는 사례가 나왔다면 기업에 주는 메시지가 컸을 텐데 그런 게 없었다"면서 "처음 법이 시행될 때보다는 긴장도가 떨어진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노동법 전문가들은 강력한 처벌로 기업 스스로 안전조치를 강구하게 만든다는 법 취지를 살리기 위해 규정을 명확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법무법인 대륙아주의 송규종 중대재해 전문 변호사는 "현재는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가 처벌 대상인지 파악할 수 없다"라며 "형사처벌을 하려면 문제 되는 행위의 기준이 명확해야 당사자로서도 예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정원진 서울지방변호사회 중대재해처벌법 대응 태스크포스(TF) 위원장은 "입법을 서두르는 바람에 (처벌 관련) 규정이 명확하지 않다"라며 "형벌 법규는 명확해야 한다는 대원칙이 있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그러나 처벌한다고 해서 안전사고로 인한 사망이 유의미하게 줄진 않고 있다"며 "안전사고를 방지할 시스템을 마련한 기업에는 당근을 주고 그러지 않는 기업엔 페널티를 주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부도 지난 11일 중대재해처벌법령 개선 TF를 띄우고 오는 6월까지 ▲ 처벌요건 명확화 ▲ 상습·반복 다수 사망사고 형사처벌 ▲ 제재방식 개선 ▲ 체계 정비 등을 중심으로 개선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시행한 지 1년밖에 안 된 중대재해처벌법을 평가하기엔 시기상조란 목소리도 나온다.
중대재해 사건을 여러 차례 맡은 한 변호사는 "법 시행 효과가 없다고 하기엔 이르다. 아직 제대로 된 판례도 안 나오고 있다"면서 "(안전 문제 개선을 위해) 대표에게 책임을 물리자는 법 취지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했다.
그는 "안전보건 조치에는 매우 큰 비용이 드는데, 사고 대응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다고 하면 안전보건 조치를 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부에 따르면 작년 한해 동안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를 적용한 사건 229건 가운데 11건(4.8%)만 기소됐다. 판결은 아직 한 건도 나오지 않았다.
honk0216@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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