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시장은 지금 '셀러스 마켓'…"수주 둔화, 오히려 좋다"
(서울=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 K배터리 업계의 수주 성장세 둔화가 오히려 배터리 업체들이 '갑'의 입장에서 자동차 회사를 고르는 '셀러스 마켓'(seller's market) 시대의 신호탄이라는 분석이 증권가에서 잇달아 나오고 있다.
최근 SK온이 튀르키예 투자를 사실상 철회한 것으로 알려진 데 대해서도 '투자 재배분'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좋은 소식"(KB증권)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은 1조7천억원 규모의 미국 애리조나 투자를 재검토 중이고 SK온의 튀르키예 수주 역시 사실상 불발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고금리에 따른 자금시장 위축이 2차전지 시장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국내 배터리 업체들의 수주량은 최근 둔화세를 보이고 있다. 성장세는 여전히 가파르지만 지난해 초반과 같이 수주 잔고가 60%씩 늘어나지는 않고 있다.
전우제 KB증권 연구원은 이를 두고 "오히려 2차전지 업체들이 유리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LG에너지솔루션은 애리조나 투자 재검토 이후 더 큰 규모의 혼다 미국 합작법인(JV) 설립을 공식화한 데 이어 도요타 공급까지 추진하고 있고, SK온 역시 현대차와 미국 JV를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SK온의 경우 최근 SK이노베이션 유상증자 등으로 2조8천억원 조달에 성공한 만큼 튀르키예에 투자할 예정이었던 금액(1조2천억∼1조6천억원)이 감당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었다는 점도 이런 해석을 뒷받침한다.
전우제 연구원은 "(튀르키예) 수익성이 우수했다면 투자(가 예정대로) 가능한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정경희 키움증권 연구원도 튀르키예 투자 계획 철회에 대해 "최근 업계에서 투자 계획에 더 신중한 재검토가 연이어 발표되고 있어 SK온만의 사례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2차전지 시장이 이미 수요가 공급보다 많아 판매자에게 유리한 '셀러스 마켓'으로 전환하고 있기 때문에 배터리 업계의 수주 계약은 더 유리해질 전망이다.
배터리 업체들의 수주 둔화는 2030년까지 잔고가 이미 꽉 차 있어 당연한 수순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배터리 업계 후발 주자인 SK온은 2021년 3분기 기준 LG에너지솔루션에 버금가는 수주잔고(1천600GWh)를 발표했다. 이미 최대한 증설이 결정된 상황이어서 향후 투자는 수익성 위주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시점이다.
LG에너지솔루션도 최근 2년간 수익성이 우수한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JV를 확정한 혼다를 비롯해 도요타, 포드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과의 첫 계약을 추진하고 있다.
SK온이 투자를 철회한 튀르키예 건은 LG에너지솔루션을 대체할 배터리 업체가 없는 상황이라 LG에너지솔루션이 포드와의 협상에서 우위에 서서 더 좋은 조건으로 JV 설립을 끌어낼 가능성이 크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한국 배터리 업체로서는 수익성이 담보된 북미 지역을 우선순위에 둘 수밖에 없다.
미국 내 2차전지 수요는 지난해 64기가와트시(GWh)에서 2025년 453GWh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2025년 말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2개사의 목표 생산능력은 350GWh로 북미 시장의 77%를 차지하게 된다.
작년 8월 발효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르면 첨단제조 생산세액공제(PTC)를 통해 국내 배터리 업체가 가장 큰 수혜를 입을 수 있는 구조다.
K배터리 업체들이 미국 투자에 집중하고 있어 신규 유럽시장 수주는 고수익성을 담보받은 국내 업체 또는 유럽이나 중국 업체가 담당하는 구조로 양분될 것으로 보인다.
전우제 연구원은 "현재 (배터리 업체들의) 이익 보호를 위해 수주에 전가하는 원소재 가격과 환율 외에도 전력비, 인건비 등을 (완성차 업체들과의) 판가 계약에 연동시킬 수 있을 것"이라며 "원가 전가 후 마진 확대도 가능해져 장기적으로는 수익성이 개선될 전망"이라고 진단했다.
정경희 연구원 역시 "지정학적 이슈 외 공급발 호재가 지속하며 올해 배터리 업계의 마진 호조세는 지속될 것"이라며 "SK온도 이를 기반으로 대규모 투자 계획 재원의 상당 부분을 내부 수익에서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hanajj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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