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메모]시민 참여와 투명 절차 무시된 고양시청사 이전 발표

이상호 기자 2023. 1. 19.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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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100만명 경기 고양특례시가 시청사 이전 문제로 진통을 앓고 있다. 행정 불신, 시민갈등, 의회 반발, 소송전 등 시끄러운 계묘년이 불가피해졌다.

현 고양시청사는 구도심인 원당 지역에 1983년 군청사로 지어진 건물이다. 건물 안전진단에서 D등급을 받은 데다 낡고 좁아 주차난 등 민원이 많다.

신청사 계획은 20년 전부터 본격 추진됐고, 2020년 일부 시유지가 포함된 현 청사 인근에 새 청사 부지가 확정됐다. 당시 고양시는 신·구도심 균형 발전을 고려해 신청사를 구도심에 남기기로 했다고 밝혔다.

행정안전부 타당성 조사 용역과 경기도 도시계획심의를 거쳤고, 국제공모로 청사 디자인까지 확정했다. 신청사 부지에 포함되는 일부 개발제한구역도 해제했다. 이 과정에서 고양시 예산 60여억원이 집행됐다. 신청사 건립기금 1700억원도 적립했다.

행정절차가 사실상 마무리되고 오는 5월 착공 예정이었던 이 계획은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국민의 힘 이동환 시장이 당선되면서 최근 백지화됐다.

‘신청사 재검토’를 공약했던 이 시장은 당선 직후 건립 일정을 전면 중단했다. 이후 지난 4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건설업체가 기부채납한 일산신도시 백석동 지하 4층 지상 20층 업무 빌딩으로 이전하겠다는 계획을 ‘깜짝’ 발표했다.

이 계획은 시민, 고양시의회, 지역구 국회의원은 물론 시청 직원 대부분조차 사전에 알지 못했다. 이 시장이 다음날 시청 홈페이지 등에 ‘여건상 미리 알려드리지 못한 점을 양해 바란다’라는 글을 올릴 정도였다.

이 시장은 기존 계획의 백지화 배경으로 건립 비용 부담을 꼽았다. 기부채납된 곳으로 이전하면 2900억원 예산을 절감할 수 있으며 적립된 건립 기금을 미래 산업에 투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구도심 시민들은 “구도심 퇴보가 가속화될 것”이라며 이 시장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고양시의회 일부 의원들은 항의하며 삭발에 나섰다.

반발이 확산하자 고양시는 이른바 ‘구도심 지역 재창조 프로젝트’를 발표했지만 성난 민심은 이어지고 있다. 신도시 일부 시민들이 백석동 이전을 반긴다는 분위기가 전해지면서 신·구도시 시민 갈등도 불붙는 양상이다.

구도심 시민들은 장기간 논의를 거쳐 이미 확정됐던 신청사 이전을 시장이 독단적으로 바꾼 것에 의혹과 불신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기부채납된 건물은 얼마든지 다른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데다 2900억 원이라는 예산 절감 선전은 일방적 주장이라는 것이다. 건립기금을 다른 용도로 사용한다는 것도 법적으로 실현성이 희박하다고 지적한다.

이 시장의 은밀하고 전격적인 발표는 시민 반발과 함께 신청사 부지 인근에서 ‘시청사 이전’을 홍보하며 오피스텔 등을 분양한 건설업체와 이를 믿은 분양자들의 소송전도 예상된다.

지방자치법은 ‘대한민국을 민주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1조에 명시하고 있다. 민주사회의 기본은 시민 참여 보장과 투명한 절차다.

이 시장은 백석동 이전에 대한 당위성 여부를 떠나 민주사회의 뼈대인 이 기본을 지키지 않았다는 비판은 면할 수 없다.

이상호 선임기자 sh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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