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후 “히어로즈는 나에게 ‘로또’…우승 안기고 빅리그 간다”
이정후(25·키움 히어로즈)는 만족을 모른다. 시즌 때 높은 타율을 기록하는 중에도 타격 연구를 하고 또 한다. 지난해 타격 5관왕에 오른 뒤 “이제는 나를 믿을 수 있게 됐다”고 했지만 잠시 뒤 “시즌 첫 프리배팅 때 안 맞으면 또 나를 못 믿고 걱정할 것 같다”고 말한다. 해가 바뀔 때마다 더 나은 타자가 되기 위해 더 노력하는 이정후를 지난해 12월 중순 만났다. 열쇳말로 그의 인터뷰를 풀어본다.
히어로즈
이정후는 “히어로즈에 안 왔다면 절대 이만큼 성장을 못 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히어로즈는 “선배 밑에서 야구만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준다고 한다. 이정후는 “어린 시절 선배들이 ‘운동장이 놀이터인 듯 놀아라’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서건창, 김민성, 박병호, 김하성 같은 선배들이 앞장서서 후배들에게 더 많이 알려주고 도와주려고 했다. 나한테만 그런가 했는데 (김)혜성이에게도, 다른 선수들에게도 똑같이 했다”면서 “나도 그래서 지금은 후배들을 아낌없이 도와주려고 한다. 우리 팀에서 어린 선수들이 기 안 죽고 자기 능력을 보여주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했다.
히어로즈는 화수분 야구를 한다. 선수가 떠나도 어느새 다른 선수가 그 자리를 채운다. 대부분 전문가가 하위권을 예상했는데도 지난해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일궈낸 힘이다. 이정후는 “히어로즈에서는 내가 잘하면 언제든 주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2군에서 올라와도 무조건 주전으로 쓴다”면서 “나에게 히어로즈는 어떤 면에서 ‘로또’였다. 고마운 것밖에 없는 은인이다”라고 했다.
기본기
이정후는 아마추어 시절에 대해 “체격이 엄청 말랐는데 그때부터 풀스윙하는 타자였다. 출루하기 위해 그냥 툭툭 치고 싶지는 않았다”고 돌아본다. 당시 그를 지도한 코치는 이정후에게 “너는 프로에 가서 곧바로 3할을 치고 신인왕까지 할 능력이 있는 선수다. 고교 때 잘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고교는 프로를 가기 위한 과정으로 생각하고 준비하라”는 조언을 해줬다. “타격한 뒤 곧바로 말고 2초 후에 뛰어라”는 특별 지시도 내렸다.
‘3할’, ‘신인왕’ 같은 말이 당시에는 꿈처럼 느껴졌지만 이정후는 코치의 말을 따랐다. ‘타격 2초 뒤 뛰기’는 점점 몸에 뱄다. 그리고, 프로 지명 뒤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살을 찌우고 힘을 키워서 스프링캠프에 참여했는데 타격의 질이 달라져 있었다. 이정후는 “타격폼을 바꾼 것도 아닌데 불과 2~3개월 전만 해도 펜스 앞에서 잡혔던 공이 다 넘어갔다. 그래서 ‘기본기가 중요하구나’ 했다”고 밝혔다.
WBC
이정후는 이강철 케이티(kt) 위즈 감독이 이끄는 2023 세계야구클래식(WBC) 대표팀에 뽑혔다. 2020 도쿄올림픽 4위의 아쉬움을 털어낼 기회다. 이정후는 “올림픽은 잊었다. 세계야구클래식은 제일 큰 대회이고, 6년 만에 열리는 대회니까 무조건 이겨야 한다”며 “단기전이니까 결과는 모른다. 온몸을 다해서 이겨보겠다”고 했다. 이정후는 세계야구클래식 준비를 위해 지난 9일 같은 에이전시를 둔 이의리(KIA 타이거즈)와 함께 미국 엘에이(LA)로 출국했다. “항상 프리배팅을 스프링캠프에서 시작하고 쳤는데 이번에는 프리배팅을 다 치고 팀 훈련(오는 2월1일 애리조나서 시작)에 참여할 것”이라고 했다.
세계야구클래식은 3월에 열리는데, 통상 자신의 3월 성적이 안 좋았던 것은 마음에 걸린다. 이정후의 통산 시범경기 성적은 타율 0.266, 출루율 0.321다. 그의 통산 성적(타율 0.342, 출루율 0.407)가 꽤 차이가 있다. 이정후는 “시범경기 기간에 베스트로 경기를 치러야 하는 격인데 나는 시범경기 때 항상 못했다”면서 “매해 불안해서 시범경기 때부터 잘하고 싶었는데도 성적이 안 났다. 이 또한 핑계이기에 이번에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방법을 연구해서 세계야구클래식 때 잘하도록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우승
이정후는 초등학교 때 일기를 쓰면서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고는 했다. 버킷리스트에는 ‘최고 유격수 되기’(당시 포지션이 유격수였다), ‘프로 가서 타격왕 되기’, ‘엠브이피(MVP·최우수선수) 되기’ 등이 적혔다. 최고 외야수에게 주는 골든글러브를 5년 연속 탔고 타격왕(2021년, 2022년)에 이어 정규리그 최우수선수상(2022년)까지 받았으니 그의 버킷리스트는 얼추 완성된 셈이다.
이정후는 “개인적으로 프로에 와서 이루고 싶은 것은 다 이뤘다. 그런데 지금껏 우승, 단 하나만 못 이뤘다”면서 “내가 그렇게 우승을 바라는 선수인지 몰랐는데 지난해 한국시리즈 치르면서 내가 참 간절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엄청나게 힘든 과정이 있어야만 우승 기회가 오는구나 싶어” 더욱 우승을 갈구하게 됐다. “아마추어 선수를 뽑아서 프로야구 선수를 만들어준 구단에 우승 선물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다.
이정후는 아버지(이종범 LG 트윈스 코치) 얘기도 곁들였다. “아버지가 한 번은 ‘나는 한국시리즈 가서 진 적도 없고 못한 적도 없어서 네 기분을 잘 모르겠다’고 놀리셨다. ‘그럼 아버지가 모르는 것을 나는 알고 있는 것 아니냐’고 말씀드렸다.” 이정후는 부자 타격왕, 부자 정규리그 엠브이피 수상 등의 새 역사를 만들었지만 부자 한국시리즈 엠브이피는 아직이다.
메이저리그
초등학교 시절 버킷리스트에 하나 더 추가한다면 ‘메이저리그 진출’이다. 그는 작년 말 2023시즌 직후 메이저리그 포스팅 시스템(비공개 입찰)에 도전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팀은 이를 허락했다. 강정호, 박병호, 김하성의 길을 잇는 셈이다. 이정후는 “6년 전 이맘때로 돌아가 ‘6년 후 뭐 하고 있을까’ 하고 물었을 때 ‘메이저리그 진출을 노릴 것’이라고 답했으면 모두가 비웃었을 것이다. 하지만 히어로즈여서 꿈꿀 수 있었고, 룸메이트였던 (김)하성이 형도 할 수 있다고 늘 말해줬다”면서 “형들(박병호, 김하성)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눈이 높아졌고 목표가 커지면서 행동도 달라졌다. 하성이 형이 미국 가기 전 1년 동안 어떻게 준비했는지 보면서 자연스럽게 따라 했다”고 밝혔다.
이정후의 마지막 말은 이랬다. “3년 차 때는 한국시리즈에서 져서 울었는데 지난해는 안 울었다. 너무 열심히 했고 잘했기 때문이다. 후배들에게도 ‘고개 숙인 2등이 되지 말자’고 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더 나은 성적으로 진짜 (우승해서) 고개 당당히 들고 마음껏 울겠다. 그 뒤에 메이저리그로 가겠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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