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 빠진 北 최고인민회의…경제 강조하면서도 한 발 물러선 김정은(종합)
김정은 불참에 대외 메시지 발신 없어
국방비 지난해처럼 15.9%, 실제로는 소폭 증가
국가세금 징수미흡 간부 질책 "사상적 각오 부족"
평양문화어보호법 채택으로 한류·외부문물 차단
최룡해 대신 김덕훈 총리 주석단 정중앙에 자리
내각에 힘 실어주며 경제성과 독려
북한이 지난 17일부터 이틀 동안 최고인민회의를 개최했으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참석하지 않았고 대외 메시지 발신도 없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9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8차 회의가 1월 17일부터 18일까지 만수대의사당에서 진행됐다"며,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인 최룡해 동지가 개회사를 했다"고 전했다.
북한이 예고한 대로 김덕훈 총리의 올해 내각사업보고, 고정범 재정상의 국가예산보고에 이어 평양문화어보호법 채택, 중앙검찰소의 사업정형, 조직문제 등을 논의한 뒤 회의를 마쳤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번 최고인민회의에 참석하지 않았으며, 진행된 회의에서도 대외메시지 발신 없이 대내문제만을 다뤘다.
대내문제도 경제발전과 민생안정을 위한 새로운 조치는 보이지 않았고, 평양문화어 보호법 채택을 통한 한류·외부문물 차단, 검찰조직 등을 통한 전반적인 사회 통제 강화에 비중을 뒀다.
먼저 김덕훈 총리는 올해 추진할 내각사업 보고에서 "당 대회가 결정한 정비보강계획을 기본적으로 끝내는 것을 중심과업으로 틀어쥐고 경제작전과 지휘"를 하겠다며, "인민경제 각 부문들에서 달성하여야 할 경제지표들과 12개 중요 고지들"의 점령 계획을 강조했다.
국가예산은 올해 지출을 전년 대비 1.7% 늘리고, 경제 분야 예산은 1.2% 증액하기로 했다. 국방비 예산은 총액의 15.9%로 지난해와 같았다. 다만 올해 전체 지출이 1.7% 오르는 만큼 국방비 지출액도 소폭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국가예산의 보고 과정에서는 우리의 법인세에 해당하는 국가기업이득금의 징수 미흡, 경제지도간부들의 사상적 각오 부족 등 지난해 '국가예산집행 과정에서의 결함'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고정범 재정상은 "국가예산수입계획을 순별, 월별, 분기별로 무조건 수행할 데 대한 당의 정책적 요구를 철저히 관철하지 못한 데로부터 일부 단위들에서 국가납부계획을 미달"했고, "일부 성, 중앙기관들에서 국가예산수입의 기본원천인 국가기업이득금을 최대로 늘일 데 대한 당의 방침을 철저히 관철하지 못했다"며, "(이런)결함들의 원인은 경제지도일군들이 국가적인 입장에서 과학적인 타산 밑에 자기 단위의 새로운 발전국면을 열어나가겠다는 사상적 각오가 부족한데 있다"고 지적했다.
평양문화어보호법은 그동안 법 초안에 대한 연구 및 협의회 논의가 진행됐으며, 해당 논의 내용을 반영한 뒤 이번 회의에서 전원 찬성으로 채택했다.
강윤석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은 평양문화어보호법 채택 관련 보고에서 "평양문화어보호법은 우리 언어생활 영역에서 비규범적인 언어 요소들을 배격하고 평양문화어를 보호하며 적극 살려나갈데 대한 조선노동당의 구상과 의도를 철저히 실현하는데서 나서는 중요한 문제들을 규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고인민회의는 "(평양문화어보호법 관련) 연구 및 협의회에서 제기된 의견들이 우리의 사상과 제도, 문화를 굳건히 수호하기 위한 강력한 법적담보를 마련하는데서 실천적 의의가 있다고 인정하고 법 초안의 해당 조문에 반영하기로 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평양문화어보호법은 상대를 부르는 호칭에서 '동지', '동무' 대신 '오빠', '자기야' 등 남한 식 말투와 호칭을 사용하는 것을 배격하는 한편 내부로 유입되는 외부 문물에 대한 통제를 더 강화하려는 차원으로 해석된다.
중앙검찰소 사업에 대해서는 "국가 전반에 혁명적 준법 기풍을 확립하기 위한 법적 감시와 통제의 도수를 높여나가는데서 나서는 실천적 문제들과 중앙검찰소의 사업에 대한 의견들"이 제기됐으며, 이에 대한 대책 안이 발표됐다.
'혁명적 준법 기풍'은 곧 법 적용과 처벌을 통해 주민 통제를 강화하고 사회 기강의 고삐를 강하게 죄겠다는 뜻으로 분석된다.
조직 인사 문제에서는 최고인민회의 의장으로 박인철 조선직업총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이, 부의장에 맹경일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서기국장 겸 의장이 보선됐다. 맹경일은 지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 남북관계 개선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북한 대남 라인의 핵심 인물이다.
이날 최고인민회의에서는 상임위원장인 최룡해 대신 김덕훈 내각총리가 주석단 가운데에 앉아 눈길을 끌었다. 김 위원장이 경제발전과 인민생활 안정을 위해 내각에 힘을 실어주는 조치로 풀이된다. 김덕훈 총리 자신도 김 위원장이 "내각이 국가경제의 사령탑으로서의 역할을 다해나가도록 수십 차례의 귀중한 가르침을 주셨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이 이처럼 최고인민회의에 불참하면서도 내각을 독려하는 것은 경제회생과 인민생활 안정과제가 현 시점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지만 성과를 내기가 쉽지 않다는 점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90년 전후 고난의 행군 시기에 경제문제에 대해서는 일정한 선을 그은 바 있다. 최고지도자로서 책임 문제가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은 올해 국방력 강화와 경제발전, 인민생활 안정 등 3가지 과업에 주력할 것이지만 김덕훈 총리보고에는 사실 새로운 내용이 없다"며, "대북제재와 코로나19 지속, 현재와 같은 남북·북미 대립 구도에서는 국방력 분야를 제외하고 성과를 내기 쉽지 않다는 것을 북한도 잘 알고 있고, 이런 점이 반영된 회의"라고 분석했다.
임을출 경남대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경제발전과 민생안정을 위한 새로운 조치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지만 사실 매번 새로운 조치를 내놓는다는 것은 북한 경제의 여력이나 제재, 보건 위기 속에서는 쉽지 않은 것"이라며, "8차 당 대회가 제시한 정비보강 계획을 올해 어느 정도 마무리하고 경제 분야의 12개 중요 고지들을 점령해 중장기 경제 전략으로 이어지게 하겠다는 것도 상당히 공세적인 경제 정책 목표"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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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김학일 기자 khi@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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